누구에게나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소소교육 두 번째 이야기

by 소소 반디

첫째가 다섯 살 때쯤, 오랜만에 조리원 동기들과 점심 약속을 잡고 모임을 했다. 첫 아이가 누워서 기어 다니기 시작했을 때부터 서로서로 번갈아 집에 초대하며 힘든 육아기를 버티게 해 준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그중 동기 두 명은 첫째들이 모두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학교 교육과 사교육에 막 관심이 많았을 때였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엄마들 안부, 아이들 안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교육'에 대한 주제가 나왔을 때 대화는 더 뜨거워졌다.


학교 들어가면서부터 보통 사교육을 어느 정도 많이 시키는지, 아이들이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할 때마다 스티커를 하나씩 받는데 서로 많이 받으려고 경쟁하다 보니 책을 더 읽게 된다는 이야기, 주변에서 아이들 교육하는 것 보면 벌써 주눅이 든다는 고민 등등. 아이들은 아직은 마음껏 뛰어놀아야 하지 않을까, 왜 우리 교육 현실은 어릴 때부터 아이들도 부모들도 이토록 학업에 대한 부담을 느끼게 만들고 경쟁하게 만드는 것인가 한창 고민하던 때였다. 동기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 현실이라는 게 더 답답하고 안타깝게 느껴져 자꾸 한 마디씩 끼어들게 되었다.


"책은 재미있어서 읽는 건데 어릴 때부터 너무 성과 위주 아닐까?" "그렇게 선행학습을 하면 정작 학교에서 공부가 재미있을까?" "몇 년이나 앞당겨 선행학습을 하면 아이들이 힘들어하지는 않으려나" "엄마들은 아이들 공부만 신경 쓰느라 정작 자기 자신을 돌볼 시간이 없잖아" "왜 아이 성적 때문에 엄마들까지 평가받는 기분이어야 할까" 등등.


그렇게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하다가 아이들 하원 시간 때문에 부랴부랴 마무리하고 집에 왔다. 아이들과 남은 하루를 정신없이 보내고 밤에 한숨을 돌리는데 낮에 모임에서 했던 이야기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육아하면서 '다른 사람의 육아에 대한 평가 혹은 조언에는 항상 신중하자, 아이들은 다 다르니까, 육아 환경은 모두 다르니까' 다짐해왔으면서 나와 다른 교육관에 대해 무작정 "그건 틀렸어, 그렇게 하는 건 아닌 거 같아"라고 말한 꼴이었다. 뒤늦게 후회와 미안함이 몰려왔다.


아이들의 교육에 대한 내 소신을 단단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신 있게 다른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의 생각과 그 배경을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나는 나와 다른 교육관을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면 늘 이렇게 싸움닭처럼 "그건 아닌데"하고 감정적으로 대응할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하자면, 다양한 방식을 인정하지 못한 채, 교육관이 다르다는 이유로 혹시나 나 스스로 마음의 벽을 쌓는 건 아닐까 그게 제일 걱정스러웠다.


얼마 전 <알로하, 나의 엄마들> 책을 읽다가 이 구절에 밑줄을 그었다.



공부할 수 있다는 희망이 사라진 버들은 아직 생기지도 않은 자식을 두고 미래를 꿈꾸며 아쉬움을 달랬다. 자식을 낳으면 내가 못다 한 공부까지 시켜야지... 사람들은 나라가 힘이 없는 거이 백성들이 못 배우고 무식해서라고 생각했댔어. 기래서 남의 자식이라도 공부시킨다는 데는 너 나 할 것 없이 힘을 보탠 거이지.

<알로하, 나의 엄마들 p153>




배우고 싶은 열망과 희망은 가득했으나 옛날에는 공부하기도 힘들었으니 교육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컸을까 싶었다. 못 배워서 나라가 힘이 없는 것이라는 생각에 자식이라도 열심히 공부시켜야겠다는 바람을 가졌던 부모들.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자식 교육에 대한 열망은 대한민국 사람들의 DNA에 새겨진 본능 같은 것이 아닐까.


책 <사람, 장소, 환대>에서는 한국 사회의 뜨거운 교육열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적어도 1987년까지 육체노동자에 대한 신분적인 차별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한국 사회의 특유한 교육열을 설명하는 중요한 요소이다...한국 사회의 비정상적인 교육열은 따지고 보면 이러한 설움을 자식에게만큼은 물려주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선택의 결과인 것이다.

<사람, 장소, 환대 p152>



지금까지도 높은 교육열이 사그라지지 않는 상황이 조금은 이해된다. 수십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노동자에 대한 인식이나 노동 조건은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많다. 그리고 자녀가 성인이 되어서 좀 더 대우받고 인정받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두 비슷할 것이다. 나와 완전히 다른 교육관을 가진 동생과 이야기할 때도 나는 늘 반박부터 했었다. 아니 이해하지 못했다. 왜 저렇게까지 아이들 어릴 때부터 교육에 올인해야 하는 걸까 하고. 어느 날 동생은 이렇게 말했다. "오빠 동창들 만나면 정말 왜 이름 난 대학교 보내려고 하는지 이해가 되더라. 다들 괜찮은 학교 나와서 괜찮은 직장 구하고 잘살고 있는 모습 보면 아이들 공부시킬 수밖에 없다니까".


자녀 교육에 신경 쓰는 부모들의 선택에는 제각각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다만 아직도 사회적인 인정이나 사람됨을 인식하는 배경에 '학벌'이 중요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또 씁쓸할 뿐이다.

이렇게 다름을 조금씩 인정하고 나니, 또 사람마다 살아가는 방식은 다양하다는 것을 이해하려 애쓰니 좀 더 마음이 편해졌다. 내 교육 소신에 대해 모두의 동의를 얻을 필요도, 다수의 의견을 따라갈 필요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책에서도, 주변 사람들도 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당연하게 자녀 교육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교육 소신을 지키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일까 고민하게 되었다. 그건 책 육아도 아니고 엄마표 학습도 아니었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아이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까' 육아를 하는 분들이라면 마음속에 늘 담고 있는, 때로는 심각하게 툭 터져 나오는 질문 같습니다. 8살, 6살 남매를 키우고 있는 저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항상 어렵기만 합니다. 가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교육에 대한 제 소신을 조심스레 밝힐 때면 "아이들이 어릴 땐 나도 그랬지..."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첫째가 학교에 입학하며 '진짜 교육 현장'에 한 발짝 발을 딛게 됐습니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지만, 아이들과 내 소신을 믿는 마음으로 걱정을 덜어 내어 봅니다. 앞으로 아이들과 함께 할 교육에 '소소 교육'이라는 이름을 지어보았습니다.

'소소하다'는 작고 대수롭지 않다는 뜻도 있지만, 밝고 환하다는 뜻도 갖고 있어요.

그렇게 소신을 갖고, 작은 움직임으로, 아이와 밝고 환하게 교육 제도의 긴 터널을 지나가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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