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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여행자 Nov 25. 2020

아침마다 선명해진다

아주 오랫동안 스스로를 밤의 인간이라 여기고 살았다.

밤은 확실히 매력적이다. 고단한 존재를 쉬게 하고 숨 막히는 밥벌이나 내 맘 같지 않은 현실에서 도망치게 해 준다. 나 역시 이런 밤의 수혜자다. 밤의 나는 도망친 와중에도 활기차다. 밤에 밀린 글을 쓰고 밤에 먹고 마신다. 때로는 나처럼 밤과 어울리는 누군가를 만나거나 긴 통화를 한다. 낮의 전화벨과 카톡 소리가 대개 반갑지 않은 호출이라면 밤에 오는 연락은 쓸모없지만 은밀한 안부일 때가 많다.

원치 않는 부름에 답하지 않을 수 있는 밤에만 내가 나다울 수 있다고 믿었다. 낮의 내가 타인에 반쯤 매인 존재라면 밤엔 온전히 나로만 있을 수 있었다. 자정 무렵부터 짧게는 두세 시, 길게는 서너 시까지 아무도 방해할 수 없는 그 시간 덕분에 나는 망가지지 않을 수 있었다.      


밤과는 달리 시체처럼 늘어져 있거나 기계처럼 몸만 바쁜 아침이 많았다. 길고 고단한 밤을 보냈으니 당연한 결과다. 아침엔 밤에 비워버린 술잔을 닦거나 밤에 내뱉은 말들을 수습하기에도 에너지가 부족했다. 아예 아침을 도둑맞고 정오 즈음부터 살아지는 날도 있었다. 아침부터 차곡차곡 쌓였을 부재중 전화와 카톡 목록을 훑으며 시작하는 하루는 내 것이기 어려웠다. 다급함이 느껴지는 요구부터 떠밀리듯 해결하다보면 어느덧 나른한 오후. 다시 나로 숨 쉴 수 있는 밤이 되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이렇듯 밤의 인간인 내가 아침을 사랑하게 된 건 글을 쓰면서부터다. 글쓰기란 깊은 밤이나 이른 새벽처럼 뭔가 영험한 시간에 번뜩이는 내면의 산물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글을 쓰기엔 “대체 뭘 하느냐, 왜 쓰느냐” 아무도 묻지 않는 밤이 안전하고 유리했다.

방해 받지 않는 시간에 글이 잘 써지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풍성한 글감은 사람에 치이고 부딪히는 낮과 또렷이 깨어있는 아침에서 나왔다. 특히 기분 좋은 아침의 긍정적인 에너지는 쓰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었고 쓸 수 있을 거라는 예감을 주었다. 비범한 무엇이 아닌 그저 평범한 일상에서 글감을 찾는 내게 밤이 생각하고 기획하는 시간이라면 아침은 움직이고 느끼기 좋은 시간이다.

아침을 예찬하는 글을 많이 남긴 시인 메리 올리버는 “동사들의 근육을, 형용사들의 엄정함을 추구하라”고 말했다. 나는 이 말을, 움직이고 실행하는 동사를 의지하되 그 움직임을 꾸며주는 형용사를 엄격하게 사용하라는 뜻으로 이해한다. 내게 밤이 모호하지만 화려한 형용사의 시간이라면 아침은 선명한 동사와 명사의 시간이다.      


이른 아침엔 그저 고요히 깨어만 있어도 부지런한 새들과 밤을 뚫고 밀려드는 빛의 리듬감과 역동성을 느낄 수 있다. 그 살아있음 가운데서 나도 하루를 시작한다. 밤의 계획이 주로 상상에 그친다면 아침엔 그냥 살게 된다. 미뤘던 할 일 리스트를 만들고 동료들과 처리 과정을 공유한다. 카톡을 받는 대신 먼저 하기로 한다.

살아갈 날 만큼의 밤들이 있는 한 나는 날마다 조금씩 깊어질 것이고, 그만큼의 아침들이 있는 한 나는 날마다 더 선명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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