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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양연화 Jun 19. 2024

스텝이 엉키면 그게 바로 탱고.

창밖은 가을, 장편 소설

겨울에 기획했던 봄의 왈츠 음악회가 다가왔다. 현악 4중주 팀이 우리에게 익숙한 클래식뿐 아니라 친숙한 영화 음악까지 들려줄 예정이다. 소풍 야외 정원에서 공연되고, 입장료는 물론 없다. 대신 1인 1 음료로 아무나 와서 즐기는 공연이다. 초대권이 필요 없는 음악회지만 연재는 한 사람을 위한 초대권을 만들었다. 소풍의 대소사에 늘 신경 써준 해종을 위해서다. 아마 ‘괜너괜’ 커피 테러 사건 이전이었다면 해종의 의도를 알자마자 그의 작품을 돌려줬을 테지만, 지금의 연재는 상대의 배려와 호의를 받을 만큼의 여유가 생겼다. 그렇다고 연재가 그를 남자로 받아들인다는 건 아니다. 인간 대 인간으로 보겠다는 뜻이다. 여자와 남자의 모든 관계가 남녀관계로 귀속되는 것은 아닐 테니까. 어떤 시간을 통과한 관계는 그 이상의 성숙한 단계에도 이를 수 있다고 연재는 생각했다. 예쁜 엽서에 정성껏 손으로 적었다.


“5월 25일 금요일 밤 7시, 현악 사중주 연주회에 초대합니다”

봉투에 담아 그의 작업실로 향했다. 불은 켜져 있지만, 문은 잠겨 있어 문틈에 엽서를 꽂았다. 그리고 사진을 찍어 그에게 전송했다. 돌아오는 길, 그에게 답이 왔다.     

“네! 가고 말고요,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대로 집에 들어가기 아쉬운 연재는 호수를 크게 한 바퀴 돌았다. 벚꽃은 지고 새잎이 올라와 호숫가 길은 연둣빛으로 물들었다. 초록으로 가기 전 단계인 연한 연두가 대책 없이 싱그럽다. 연두 길을 느리게 걸으며 저녁 바람과 햇살을 온몸으로 느껴보았다. 연재 옆으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젊은 남녀가 보였다. 자전거를 보니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그의 얼굴이 떠오르자 갑자기 사무치게 그리웠다. 지금 민재가 있는 그곳은 어디고, 몇 시일까? 

핸드폰을 꺼내 데이터로 통화 가능한 SNS 통화를 눌렀다. 신호가 여러 번 울리도록 받지 않자 살짝 초조함이 올라왔다.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걱정하던 그때 연결음이 들렸다.

“엄마?” 

“어, 엄마야. 지금 어디야? 잘 지내는 거지? 통화할 수 있어?” 

그동안 어떻게 참은 건지 질문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방금 터키 국경 넘었어요. 잘 지냈는지는 모르겠고 어쨌든 살아있어요. 통화는 가능하고요” 민재의 목소리에 힘이 넘쳤다.

“엄마도 살아있다고, 생존 신고하려고 전화했어.” 

“다행이네요. 어제 민준이 하고 통화했는데, 살아 있더라고요. 우리 다 살아있네요”

“언제 와?”

“한 달 반은 있어야 갈 거 같아요. 달리면서 목표가 생겼거든요.”     


일 년이 넘게 모자가 헤어져 있었기에 할 말이 쌓여 있었다. 통화하면서 걷다 보니 버드(Bird) 나무가 정면으로 보였다. 새들의 분비물로 고사하던 나무가 살아나고 있었다. 나무에 약을 뿌린 건지, 새들을 포획한 건지 알 수 없으나, 나무를 괴롭게 하던 새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그 많던 새들이 어디로 갔을까? 걱정도 되었지만, 살 곳을 찾아갔으리라 싶으니, 나무가 살아나고 있음에 안도감이 들었다. 한 시간을 넘게 통화하다가 터키 국경을 넘은 동행이 기다린다며 민재가 전화를 끊었다. 앞으로 한 달 반이면 민재와 민준, 두 아들을 볼 생각 하니 가슴이 벌써부터 뛰었다.  

   

집에 돌아온 연재는 노트북을 열었다. 그리고 ‘연수에게’ 폴더를 열었다. 윤희 작가의 전시를 앞두고 연수에게 편지를 썼으니까 실로 다섯 달이 다 되어갔다. 새 페이지를 연 연재는 연수에게 두 번째 편지를 썼다.  

   

연수에게.     

우리가 어렸을 땐, 괜히 사계절이 있어 쓸데없이 낭비가 심하다고 했잖아.

여름만 있으면 여름옷만 있으면 되는데, 겨울까지 있어서 사계절 옷이 다 필요하다고 말야.

근데 지금은 돈이 좀 들더라도 사계절이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안 그랬다면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몰랐을 테니까.   

  

오랜만이다. 신연수! 잘 있었니? 

사실 그동안 네게 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어.

내게 너무 큰 상처라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는데, 이제부터 그 얘기를 하려고 해.

네가 전에 했던 말 “모멘트 오브 트루스” 말이야. 그 뜻을 이젠 알 것 같아. 내게 그게 찾아왔었거든. 나도 모르게 내 입을 통과해 나와 버린 진실의 순간.


그날 아침, 왜 하필 그 사람이 떠올랐는지 몰라. 

지리산 천왕봉에 올라 그가 청혼했던 일, 

종주하고 내려와 느꼈던 그 근자감에 관해 말이야. 아마 그게 화근이었지 싶기도 해.      

민준 아빠가 차 사고가 났다는 전화를 받고 달려간 병원, 나보다 먼저 달려온 사람이 있었어. 민준 아빠 회사 경리 지현 씨. 지현 씨는 민준 아빠가 처음 회사를 시작할 때부터 같이 일했잖아. 언니가 지현 씨 아니었으면 민준 아빠 사업 유지 못했을 거라고 말할 정도로 지현 씨는 야무진 직원이었어.


민준 아빠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난 지현 씨 품에 안겨 울었어.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몰라. 다정한 지현 씨는 나보다 더 많이 울어줬어. 내가 울면 지현이 울고, 지현이 울면 내가 울었지. 무슨 슬픈 돌림노래 같았어. 그런데, 장례식장에 지현이 10살 딸을 데리고 왔어. 그리고 말했지.

“아빠에게 작별 인사해” 난 무슨 말인지 내 귀를 의심했어. 지현은 눈물을 글썽이며 뻘쭘하게 서 있는 딸을 향해 

“아빠한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해” 덤덤히 말했어. 그제야 알았어. 지현의 딸이 남편과 닮았다는 것을. 그리고 남편의 사고도 지현과 밀월여행 중 났다는 사실을. 지현은 나보다 먼저 온 게 아니라 사고 현장에서 같이 온 거였지. 꿈을 꾼 것 같았어. 지독한 악몽을. 그런데 악몽이 끝이 아니었어. 거듭되는 충격에 장례가 어떻게 끝났는지도 모르겠는데, 집에 지현이 찾아왔어. 남편이 작성해 줬다는 유언장을 들고. 그건 재산의 반을 지현에게 넘긴다는 공증 문서였어.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지현이 딸을 낳았을 때 만들어 준거라고. 남편 사망에 대한 슬픔은 분노와 증오로 덮여버렸어. 내 삶이 통째로 부정당하고 농락당한 처참함에 미칠 것 같았거든. 


갈기갈기 찢어진 마음은 너덜너덜해져서 자식이고 친구고 다 필요 없다고 느꼈지. 죽어야 끝나는 고통이었지만 이런 이유로 죽는 건 죽기보다 싫었어. 아이들도 나만큼 큰 충격을 받았을 텐데, 그걸 포용할 무엇도 내게 남지 않았어. 지현에게 재산을 나눠줘야 했기에 집을 팔아야 했어. 내가 지현을 상대로 상간녀 소송을 한다 해도 내가 받을 수 있는 돈은 최대 삼천만 원밖에 안 돼. 그게 법이고 현실이더라. 지급 명령이 떨어지고 빨리 지급하지 않으면 고금리 이자까지 붙는대. 

대체 법은 누구 편인 거니?

그래서 결국 집을 팔았어. 

지현이도 딸하고 살려면 돈이 필요했겠지. 근데, 그 사정까지 알고 싶지 않았어.   

  

집이 팔리고 제일 먼저 행동을 취한 건 둘째 민재야. 그때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민재가 대학 원서도 쓰지 않고 군대에 지원했어. 평소 제일 게으르고 태평했던 민재가 속으로 얼마나 부대꼈으면….

서울역에서 기차를 탄 민재를 향해 난 허수아비처럼 영혼 없이 손을 흔들었어. 민재와 함께 훈련소까지 동행해 준 건 군에서 말년 휴가 나왔던 민준이야. 이럴 땐 민준이 나보다 낫지? 


분해 떨다가, 울다가, 술에 취해 겨우 잠이 들길 반복하면서 점점 더 무너졌어. 집을 비워줘야 할 때가 다가왔는데도 난 이사 갈 집도 구하지 않았어. 제대해 집에 머물던 민준이 돌연 자전거를 하나 사서 집을 나갔어. 민재도 민준이도 집을 나가버리자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진짜 죽을 것 같더라고. 그래서 찾은 곳이 여기 춘하야. 매매로 나온 펜션을 덜컥 사버린 거야. 서울에선 주변 사람들 보기 창피해 도저히 살 수 없었거든.

내 잘못은 아닌데, 일이 그 지경이 되도록 눈치 못 챈 내가 미련퉁이 같아서 자책했어. 그렇게 자기혐오에 빠져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춘하에 왔는데, 막상 정신을 차리니까 내가 여기서 살 수 있을지 겁이 나더라. 태어나 한 번도 혼자 살아본 적도, 서울을 떠난 적도 없었으니까. 여기서 뭘 할 수 있을까, 고민 끝에 네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말했던 게 떠올랐어. 복합문화 공간 만들자고 했던 말, 네 옆에서 문화 예술 관련 기획을 하도 많이 들어서였는지 가장 익숙했고, 또 잘할 수 있을 것도 같았어. 못다 이룬 네 꿈을 내가 이룬다는 명분까지 생기니까 다시 살아갈 힘이 생기더라. 펜션을 사서 수리하는 동안 결심했어. 오직 사는 것에만 집중하겠다고. 사실 망하면 대안이 없기도 했거든. 늘 두려웠지만, 네가 옆에 있어 견딜 수 있었던 것 같아.    

 

그리고 그날, 

한바탕 난리를 겪고 내 마음이 평온해진 이유에 관해 생각해 봤어. 남편과 지현, 둘이 나만 빼고 행복했다고 생각했어. 나만 불행한 것 같아 더 억울했던 거야. 

그런데 그날, 혜진이 했던 모든 말이 모두 지현의 말처럼 느껴지더라고. 이십 년 가까운 시간을 난 껍데기로만 존재한 것 같아 미치도록 좌절했는데, 혜진과 그 남자를 보니, 남편과 지현도 모두 껍데기로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어. 혹시라도 들킬까 봐 불안에 떠는 인생이 마냥 행복한 인생일 수 없을 테니까. 모두 껍데기뿐이란 사실에 위로받는 인생이라니…. 

진짜 헛웃음이 난다.   

  

근데, 연수야. 

그걸 깨닫고 나니 이제부터 난, 진짜 내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 같아. 물론 또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좌절하겠지만, 이런 일을 겪고도 다시 일어선 내가 겁날 게 뭐가 있겠니? 설사 더한 일을 겪는다 해도 내가 잘 이겨낼 수 있도록 네가 옆에서 응원해 줘. 알았지? 

보고 싶다는 말은 하지 않을게. 그립다는 말도 생략.

그럼, 이 밤도 안녕!   

  

편지를 끝내고 연재는 노트북을 닫았다. 빗소리에 문을 열어보니 소나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가로등으로 쏟아지는 비가 불빛에 반사되어 섬광 같은 빛을 내뿜다가 아래로 떨어지며 꺼져가는 모습이 흡사 불꽃놀이처럼 보였다. 연재의 새 출발을 응원하는 비가 불꽃이 되고 빗소리는 박수 소리로 연재의 세상에 울려 퍼졌다. 쏟아지는 우렁찬 불꽃 쇼가 끝날 때까지 연재는 한참을 그대로 서 있었다.   

  

                                 *     

음악회가 열리는 저녁, 무대로 쓸 공간에 4인의 연주자가 앉을 의자를 놓고, 마당에도 관객을 위한 의자를 깔았다. 그 옆으로 특별히 초대한 사람들을 위한 테이블을 하나 놓았는데, 해종과 윤희, 제하와 연재, 그리고 얼마 전 대관 사진전을 열었던 사진작가를 위한 자리다. 지난가을 수찬 씨의 공연 때처럼 뒤늦게 구경 온 사람들을 위해 빈 곳 여기저기에 매트도 깔았다.    

  

가장 먼저 도착한 이는 윤희다. 연재가 공연 초대 메일을 보내긴 했지만, 전시가 끝나고 얼굴을 보는 건 처음이다. 윤희는 자기 때문에 마지막 날을 망쳤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연재도 작품 철거할 때 나타나지 못했던 것에 관해 사과했다. 윤희가 손을 내밀며 “그럼 내년에도 제 전시 맡아주시는 거죠?” 물었고, 연재는 영광이라며 윤희의 손을 잡았다. 윤희는 연재의 얼굴에서 빛을 봤다. 옥죄어 있던 어떤 것에서 풀려난 해방의 빛처럼 느껴졌다.      


해종은 무척 신경 쓴 듯 정장을 입고 왔는데, 그 모습이 어색하면서도 어울렸다. 관객들 자리를 배정하던 수찬이 딴 사람 같다고 추켜세우자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어 연주자들도 도착해 각자 악기를 튜닝했다. 제하도 왔는데 혼자가 아니다. 남자친구와 같이 왔다. 연재는 반갑게 그를 맞았고, 연재가 앉으려고 했던 자리에 그를 제하와 나란히 앉게 했다. 인상 좋은 그는 자리에 앉더니 누군가를 찾는 듯 주변을 쓱 보았다. 연재는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의 주문을 받아 카페로 들어갔다.     

 

현이도 밀린 음료를 만드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보였다. 연재가 다섯 잔의 음료를 만들어 현에게 테이블로 가져다 달라고 했다. 현은 만들던 음료를 연재에게 부탁하고 음료가 든 쟁반을 들고 정원으로 나갔다. 연재가 유리문을 통해 보니 제하의 남자친구가 현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그의 미소에서 왠지 모를 안도감이 느껴졌다. 금세 배달을 마친 현이 들어와 연재에게 제하가 남자친구랑 왔다며 저 성깔에 남친이 있는 거 보면 남친이 보살이란다. 여전히 투덕거리는 모습에 연재의 입가에도 미소가 흘렀다. 그사이 연주 시간이 다가왔다. 수찬이 마이크를 잡고      

“소풍 음악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며 공연 시작을 알렸다.      

현이 나머지는 자기가 만들 테니 연재에게 나가 있으라고 했다. 수찬이 마이크를 잡았으니, 이후 도착한 관객을 도와줄 진행요원이 적어도 한 명은 바깥에 있어야 했다. 서둘러 연재가 바깥으로 나왔다. 막 도착한 사진작가가 윤희와 아는 사이인지 자연스럽게 그 옆으로 가서 앉았다. 수찬은 무대에 많이 서 본 사람이라서 매끄럽게 사회를 잘 봤다. 아재 개그 퀴즈로 산만한 분위기를 금세 집중시켰고 주위가 조용해지자,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연주자들이 서로 눈짓을 교환하더니 엘가의 ‘사랑의 인사’로 문을 열었다. 바이올린 2대, 비올라와 첼로 한 대씩으로 이뤄진 팀으로 ‘이무지치’ 실내악단이 부럽지 않았다. 연주가 시작되고 뒤늦게 도착한 사람들은 연재가 착석을 도왔다. 이어지는 곡은 ‘쇼스타코비치 왈츠 2번’으로 첫 음부터 심장이 녹았다.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왈츠가 아닐 수 없다.     


연수에게 연재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얘기 중 하나가 국내 연주자들의 연주 실력이 상향 평준화되어 굳이 월드클래스가 아니더라도 엄청난 실력자들이 많다는 거였는데, 오늘 소풍에 초대된 팀이 딱 그랬다. 처음엔 연재도 클래식이라 하면 음악이 고급스럽다 보니 섭외 비용에 부담을 느꼈는데, 막상 그리 비싸지도 않았다. 무엇보다도 현이 시민들을 위한 공연 기획 신청서를 냈었는데, 신청이 받아들여져 시의 지원도 받았다. 시에서 주는 지원금에 소정의 금액을 더해 이렇게 멋진 공연을 같이 즐길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이어 피아졸라의 ‘리베르 탱고’ 김연아의 피겨 곡으로 유명한 ‘오블리비언’ 그리고 ‘여인의 향기’가 소풍에 울려 퍼졌다. 흥을 감추기 어려웠는지 수찬이 앙상블과 잼(즉흥연주)을 제안했고, 연주곡은 ‘미션 임파서블’이다. 아무리 전문 연주자들이지만, 즉석에서 연주가 된다고? 걱정하는 사람은 연재뿐, 사람들의 눈동자는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기타와 현악 4중주가 어떻게 미션을 파서블하게 할 것인가 싶었는데, 수찬은 기타를 뒤집어 드럼처럼 사용했다. 서로 눈빛을 교환하면서 접신이라도 한 듯 수찬은 기타를 두드렸다. 사람들은 흥분하기 시작했고, 수찬이 입 모양으로 따라 부르라고 수신호를 주자 관객들 모두 그 유명한 부분을 입으로 따라 불었다.      

빰빰 빠밤, 빰빰 빠밤. 빰빰 빠밤. 빰빰 빠밤. 빠라밤~~~     


연주곡에 떼창은 상상도 못 했는데, 소름이 돋았다. 저렇게 끼가 많은 사람이 먹고살기 위해 음악 하고는 상관없는 일을 한다니 진심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미션을 클리어한 연주자들이 가까스로 흥분을 가라앉히고 크라이슬러의 ‘사랑의 슬픔’을 연주했고, 마지막 곡으론 헨델의 ‘파사칼리아’까지 봄밤에 벚꽃처럼 흩날렸다. 헨델이 왜, 무엇 때문에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십수 년 전 연재가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때 소름이 돋았었다. 격정적이고 비극적이고 뭔가 강렬한 서사를 품은 듯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파사칼리아가 연재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그동안 애썼다고, 인제 그만 길을 가라고, 아픔은 두고 가벼이 길을 떠나라고 등을 밀어주는 것 같다. 바이올린이 격정적으로 흐르는 마지막 지점에 이르자 뜨거운 뭔가가 아래에서부터 올라와 위로 솟구치듯 강렬하게 터졌다. 연재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곡이 끝나고도 아무도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자, 연주자 리더는 마지막 앙코르곡을 고르라며, 대신 그 곡에 맞춰 모두 춤을 출 것을 제안했고, 모두 콜! 을 외쳤다. 쇼스타코비치 왈츠와 여인의 향기 탱고의 격돌, 관객들은 탱고를 택했고, 바로 바이올린이 음을 시작했다.      


수찬이 현의 손을 잡고 탱고 같지 않은 탱고를 시작했고, 제하도 남자친구와 손을 잡았다. 사진작가가 윤희에게 손을 내밀자, 홀로 남겨진 해종이 어색하게 서서 춤추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연재가 해종을 향해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해종이 어색한 미소로

“제가 다 잘하는데 춤은 영….” 

연재는 다른 사람들을 보라는 손짓을 했고, 춤추는 사람들 모두 제 맘대로 춤추며 즐거워하고 있다. 이에 해종이 용기를 내 영화에서 본 것처럼 연재의 손을 잡고 앞으로 쭉 뻗으며 전투적으로 나아갔다. 따라가던 연재가 발을 삐끗하자, 해종은

“스텝이 엉키면 그게 바로 탱고!” 

어설픈 알파치노 흉내를 냈고, 말한 사람도 듣는 사람도 민망해 크게 웃고 말았다. 


뺨을 스치는 바람에서 여름 향기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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