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예전엔 완벽하지 못하면서도 완벽하길 스스로 끊임없이 원하는 미달된 완벽주의자였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자신을 괴롭혔고 힘들었어요. 예를 들어 커튼 하나를 사면서도 나는 싸면서도 품질도 괜찮은 완벽한 커튼을 사야 했기 때문에 매일매일 검색하느라 정작 커튼은 사지도 못했습니다. 완벽한 커튼을 찾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무슨 일을 해도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시작하기 전에 불안하고, 하면서도 불안하고 다 끝내고 나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불안할 때가 많았습니다. 게다가 일을 완벽하게 시작해야 한다는 불안감에 미룰 때가 많았고 시작하고 나서도 계속 점검하는 통에 시간에 쫓길 때가 많았지요. 마감 전날 밤을 새우기로 일쑤였고요.
제가 왜 이런 완벽주의에 사로잡혔을까요? 생각해보면 어릴 때 실수를 자주 지적당하면서 내가 무엇을 잘하지 못한다는 선입견이 생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계속 자신이 한 일이 못 미더운 것이지요. 내가 이렇다는 사실도 모르고 나는 나 자신을 계속 야단치면서 살아왔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서 나는 나 자신을 야단치는 일을 그만하고 좀 더 편하게 살고 싶어졌습니다. 완벽주의에서 벗어나고 싶어진 거지요.
이 글에서는 그랬을 때 내게 도움이 된 것들을 몇 가지 소개하겠습니다. 일단 무슨 일을 미루면서 안 하는 버릇을 고치고 싶어서 완벽하지 못 해도, 시작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완벽하게 하려고 미루다가 마감을 어기는 것보다는 조금 미흡하더라도 시작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이 방식은 효과가 있어서 글을 쓸 때 도움이 되었습니다. 완벽한 원고가 아니라도 일단 쓰기 시작한 후에 조금씩 고치는 방식으로 했더니 마감도 어기지 않고 완성도도 괜찮았습니다. 어렵겠지만 결과를 생각하며 두려워하며 계속 미루지 말고 조금은 가볍게 시작해보시길 권해요.
두 번째는 저의 책 <살아있으니까 귀여워>에서도 한 말이지만 너무 잘 하려고 하지 말고 지금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려고 마음먹은 거였습니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줄어들면 마음이 편해져서 오히려 좀 더 잘하게 되기 마련이지요. 그러면서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말들을 덜 하도록 노력했습니다.
‘왜 이렇게 못 해! 빨리 해! 이것밖에 못 했니?’ 등등 나는 너무 자신을 야단치는 말들을 많이 해왔습니다. 그러지 말고 자신을 상냥하게 대하면서 할 수 있는 만큼만 지금 차근차근히 하는 버릇을 들이는 게 중요합니다. 완벽주의 시작의 뿌리가 자신을 야단치는 버릇에서부터 일 때가 많다는 걸 기억하세요. 뿌리를 없애는 게 중요합니다.
세 번째로 덩어리가 큰일은 잘게 쪼개어 그것들을 각각 언제까지 할지 계획을 세워서 했습니다. 그러면 마음의 부담감도 쪼개져서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지요. 물론 이것도 버릇이 될 때까지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연습을 계속해야 하는 일이지요.
네 번째로 내게 도움이 된 말은 책 <우울할 땐 뇌과학>에 나온 '최선의 결정이 아니라, 그럭저럭 괜찮은 결정을 내려라'라는 문장이었습니다. 완벽하게, 잘, 최선을 다해, 라는 말들에 지쳐있던 내게 '그럭저럭 괜찮아도 괜찮다'라는 말은 마음속에 해방감을 주는 문장이었습니다.
그 뒤로 완벽주의가 발동하려고 할 때마다 저는 마음속으로 '그럭저럭 괜찮아도 괜찮아'를 되뇌이곤 합니다. 예를 들어 예전엔 인터넷 쇼핑이 너무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나는 아주 완벽하게 싸고 가성비 좋은 물건을 사야 했기 때문에 모든 쇼핑몰을 다 보고 검토해야 했지요. 시간이 오래 걸리고 힘들고 바보 같은 일이었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럭저럭 괜찮은 것만 사면 되지, 이런 맘을 먹으려고 계속 노력해서 몇 개 힘들지 않을 정도로만 검색하고 결정해서 삽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서 물건을 받았을 때 뭔가 맘에 안 드는 점이 있으면 예전엔 내가 잘 안 찾아봐서 그렇다고 자책감이 심했는데 요즘은 사람이 어떻게 모든 걸 다 알 수가 있겠어, 이러면서 그냥 그러려니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마음을 글을 쓸 때도 적용하게 되면서 막혔던 글이 다시 조금씩 열리고 있습니다. ‘나는 세기의 작품을 쓰려고 하는 게 아니고 그냥 내 마음을 표현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럭저럭 괜찮게만 쓰면 된다고 생각해 조금씩 다시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쓰는 에세이글들이 다 그런 마음으로 쓰고 있는 것들이지요. 완벽한 에세이를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아마도 한 글자도 쓰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럭저럭 괜찮고 구독자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걸 쓰면 된다고 생각하자 한 자 한 자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혹시 여러분에게 도움이 될까 해서 <완벽주의자를 위한 행복 수업>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그것에서 완벽주의자에 반하는 ‘최적주의자’라는 개념을 발견했습니다. 최적의 의미는 ‘어떤 상황에서 가장 적정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이라고 하지요.
완벽주의자는 결코 만족할 수 없다. 현실적으로 달성할 수 없는 기준과 목표를 세우기 때문에 처음부터 성공할 가능성을 거부하는 셈이다. 학교 성적이 아무리 좋고 직위가 아무리 높이 올라가더라도 무엇을 달성하든지 기쁨을 느낄 수 없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훌륭한 배우자를 만나도 동료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도 충분하지 않다. 완벽주의자의 삶에는 성공이란 있을 수 없다. 객관적인 성공과는 상관없이 스스로 성공했다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적주의자 역시 높은 기준을 정한다. 하지만 그는 성공의 기준을 현실에 바탕을 두기 때문에 달성할 수 있다. 따라서 최적주의자는 완벽주의자와는 달리 목표를 달성할 때 성공에 대한 진정한 만족과 자부심을 느낀다. (전자책 30쪽)
이 문장을 보면 최적주의자는 그럭저럭 괜찮은 목표를 세우고 그걸 달성하며 기쁨을 느끼는 걸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우울한 때 뇌과학>에서 본 한 문장에서 느낀 것이 바로 최적주의자를 말하는 것이죠.
이 세상에서는 너무 열심히, 최선을 다해, 완벽하게 이런 것들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그럭저럭 괜찮게, 살살, 적당히 해도 웬만한 일들은 그냥저냥 굴러갑니다. 자신을 완벽주의에 가두고 자책하고 괜히 혼내지 말고 그럭저럭하면 괜찮은 세계로 오세요.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