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바다는 많이 봐왔지만, 혼자 바다를 보러 간 건 처음이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를 하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버스 터미널로 갔다.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티켓을 선택하면서, 3시간 30분이란 걸 알았다. 한 5초 정도 고민했다.. 더 가까운 다른 곳을 갈까 하고.
일주일 전 강릉을 가겠다고 자기 전에 결심해놓고 그 다음날 카페에서 커피나 마시고 있었던 내가 떠올라 눈 질끈 감고 티켓을 끊어 버리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예상한 시간과는 달리 총 4시간 30분이 걸려 가까스로 강문해변 쪽에 도착했다. 심각하게 배가 고파왔다. 바로 근처에 초당 순두부마을이 있었다. 순두부 킬러인 나는 숨쉬기도 버거운 땡볕 더위를 뚫고 먹겠다는 의지 하나로 지도 어플을 켰다. 초당마을 초입에 들어서니 생각보다 많은 순두부집이 있어 당황했다. 침착하게 맛집일 거 같으면서도 사람이 없는 곳을 물색했다.
무엇보다 당일치기 여행에서는 시간을 잘 써야 하기 때문에 기다리는 시간은 줄여야 했다. 쭈욱 둘러보다가 주차장에 차도 적당히 있고, 건물도 커서 내부 자리가 많을 것 같은 짬뽕 순두부집 한 곳이 눈에 띄어 여러 생각 없이 바로 들어갔다. 다리가 아프고, 발도 너무 답답했다. 둘러보니 좌식 자리가 있길래 신발을 홀랑 벗고 다리를 쭉 펴고 앉았다.
앉자마자 찬물을 한 컵 들이키고 "이모~ 짬뽕 순두부 하나 주세요~"주문을 했다.
큼지막한 그릇에 여러 가지 해산물이 올려져 나온 짬뽕 순두부는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웠다. 빠르게 인증샷을 찍은 후 먹기 시작했다. 그 즈음부터 사람들이 몰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4인상에 앉아있던 나는 (모두 4인상으로 다닥다닥 붙어 있었음)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고, 숟가락질도 점점 빨라졌다.
얼른 뚝딱하고 일어나 계산을 하고 나왔다. 신발을 고쳐 신고 지도 어플을 다시 보며 바닷가를 향해 걸었다. 벌써부터 짠 내가 나기 시작했다. 줄지어 있는 건물들을 지나, 마지막 건물의 모퉁이를 돌아 나오니, 초록빛 푸른 바다가 나타났다. 혼자 온 게 감동인 건지 바다가 감동인 건지 무엇 때문인지 모르는 감동에 북받쳐 눈물이 찔끔 나올 뻔했다. 꾹 참고 신나는 마음으로 파도가 치는 바다를 향해 동동동 걸어갔다.
이왕 간거 몇 군데 볼 계획이었으나 바다를 본 순간, 모든 계획은 사라졌다. 마냥 바다만 보는 시간을 갖자고 결심한 것이다. 바다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이리저리 동공 지진이 왔다. 먼저 모래를 밟기 전에 등대가 있는 곳으로 올라갔는데, 좀 위에서 보는 파도는 방파제와 한판 하고 있는 듯이 몰아쳤다. 파도가 얼마나 세게 몰아치던지 위에 있는데도 물이 다 튈 정도였다.
이제 바다 쪽으로 모래를 밟으러 내려가는데 바로 앞에 이름 모를 작은 새 두 마리가 모래 위를 총총 거리고 있었다. 작은 부리 사이에 먹이를 물고 있었는데, 그게 움직이는 건지 부리가 작은 건지 자꾸 놓칠 뻔하다 이내 파도에 휩쓸려 보내 버렸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엽게 느껴져 영상으로 찍고 싶었지만 카메라를 켜는 동안 작은 새는 먹이를 놓치고 훌쩍 날아가 버렸다.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하고 최대한 바다 가까이로 다가갔다. (최대한 모래가 신발 속으로 들어가지 않게 엉거주춤 걸으면서)
바닷물 끝으로 다가가니 내 발아래서 잘게 부서지는 파도가 젖은 모래 위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왜 사람들이 파도에 발을 닿을 듯 말 듯 있다가 도망가는 장난을 치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이게 은근히 재미가 있구나. 진짜 왜 저래 했었는데 말이다.
어쨌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 다리가 아파져 앉을 곳을 찾아 헤맸다. 벤치는 안 보이고 뒤쪽으로 도로와 해변 사이를 나누어 주는 낮은 돌담길이 보여 단숨에 걸어가 걸 터 앉았다. 멀리 보이는 수평선과 그 위로 떠 있는 분홍빛 구름을 바라봤다. 예전에 티브이에서 그림 그려주시던 밥 아저씨가 생각났다. 그 아저씨가 그렸던 바다와 구름 같았다. 그러니까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푸른 물결에 하얀 띠들이 우르르 몰려왔다가 힘 없이 반복해서 부서진다. 넓고 큰 바다는 거대했고 파도들은 쉼 없이 운동을 하는 듯이 움직였다. 거대한 바다를 한참 응시하고 있다가 내 머리 위에 하늘을 바라봤다. 새파란 하늘에 떠있는 뭉게구름들이 보였다. 더할 나위 없이 맑고 화창한 날이었다. 이렇게 바다만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건 처음인데, 이 시간들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그냥 거기서만큼은 무한한 여유를 부리고 싶었다. 모든 생각을 일시정지시키고 '바다만 정성스럽게 보고 가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지금 이 바다는 오랫동안 기억되겠구나 생각했다. 이렇게 혼자 바다에 온 적이 있었던가. 이렇게나 자세하게 바다만 구경한 적이 있었나. 혼자 여러 곳을 가봤지만 딱 한곳만을 위한 여행은 해 본 적이 없었다. 모든 여행에는 계획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바다여행을 통해 온전히 내가 원하는 한 가지만 해도 나쁘지 않다는 걸 알았다. 딱 한 가지만을 위한 여행.
난이도 ★★
버스에서 읽을 책 한 권을 챙겼습니다! 가끔 멀미를 하긴 하지만 버스 안에서 흘려보낼 시간이 아까웠거든요. 무릎을 가슴 앞쪽으로 굽히고 무릎 위에 책을 곧추세워 눈 높이를 맞춰 읽었더니, 다행히 멀미를 하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왕복 8시간을 심심하지 않게 보냈습니다.
바다에서 한참 앉아있다 보니 저처럼 혼자 혼 사람들이 간혹 보였어요. 그분들은 어떤 고민으로 어떤 것들을 흘려보내기 위해 왔을까 생각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응원을 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