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에는 동생이 병원에 입원해 있었고, 수술을 앞둔 상황이었다. 동생을 간호할 때는 침대에 나란히 누워 동생이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영상을 보거나, 재밌는 얘기를 해주곤 했었다. 그리고 난 후, 동생이 잠든 시간은 내게 휴식시간이었다.
그 시간에 인스타그램에 돋보기를 눌러 사람들 이야기를 보다 보면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그날도 역시 돋보기를 눌렀다. 한참 구경하다 눈앞이 환해질 만큼 멋진 절경이 담긴 사진 한 장을 보게 되었다. 바로 남해 <금산 산장>이었다.
사진인데도 마음이 후련해지고, 그 속으로 들어가고 싶을 만큼 넋을 잃고 바라봤다. 어딘가 위로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서 여긴 꼭 가야겠다 결심을 하고, 그렇게…10개월을 흘려보냈다. 그리고 11월. 올해를 넘기면 안 될 것 같은 이상한 강박이 생겨 갑자기 급해졌다. 되도록이면 사람이 없는 평일로, 가능한 빠른 날짜를 정해 버스, 게스트 하우스를 예약했다. 그렇게 급 떠나게 된 남해.
버스로 5시간 가까이 걸려 도착했고, 터미널에서 다른 마을버스로 갈아타고 30분은 더 이동해야 게스트 하우스로 갈 수 있었다. 마을버스를 타고 혹시나 내려야 할 곳을 지나칠까 봐 기사 아저씨 바로 뒤에 앉았다.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등도 기대지 못하고 앉아 있는데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이 버스는 안내방송도 없고, 벨이 있어도 아무도 누르지 않았다. 한마디면 되었다.
“내려요~”
모두 할아버지, 할머님들이셨고 "내려요" 한마디면 달리던 버스도 멈췄다. 불안하던 나는 기사 아저씨께 내려야 할 정류장 이름을 말하며
"죄송하지만 이곳에서 내려주시면 안 될까요? "하며 부탁드리는데 기사 아저씨,
”지났는데? 아까 지났는디?”....
이 말을 들었을 때 느꼈던 감정을 생각하면, 지금도 심장이 발바닥으로 내려갈 것만 같다. 안 봐도 하얗게 질렸을 내 얼굴을 옆에 앉으셨던 할머님들이 보시고는 "아이고 호호호" 하고 웃으신다. 이게 무슨 상황일까 물음표를 장착한 내 눈을, 어떤 할머님이 보시고선,
“아이고 ~ 아직 한참 멀었어 ~ 장난치는거여” 라고 말해 주셨다.
‘아……아저씨…미워…진짜 미워…나빠…”라고 속으로 생각했고, 진짜 울고 싶었다.
그렇게 한 할머님에 도움으로 내려야 할 정류장에 내렸고, 쿨한 할머님의 뒷모습을 보며 몇 번의 폴더 인사를 드린 후 게스트 하우스로 향했다.
남해는 차 없이 다니기 힘든 곳인데, 나는 차도 없고 운전도 못해 렌트도 못했다. 오직 다른 사람의 힘을 빌려 여행을 해야 했는데 찾아보니 원하는 관광지까지 픽업해주는 서비스가 마련된 게스트 하우스를 찾을 수 있었다. 아 물론 유료다.
그 픽업 서비스를 이용해, 첫날 간 곳은 다랭이 마을.
생각보다 작았고 금방 둘러볼 수 있었다. 잠깐 들른 게스트 하우스에서 같은 방을 쓰시는 분이 추천해 준 된장찌개 집에서 이른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근처에 위치한 배우 박원숙 님이 하신다는 카페에 들어가 아메리카노를 시켜놓고 경치를 바라보며 감탄한 시간 4시 30분. 마감시간이라며 직원이 안내해주던 시간 5시. 카페가 5시에 닫는다니.
당황한 나는 게하 사장님께 바로 연락을 하고, 길에 있는 벤치에 앉아 사장님 차가 오길 기다렸다. 금방 오실 줄 알았던 사장님은 오시지 않고, 그동안 해는 급속도로 져버렸다.
온 사방이 캄캄해지고, 어디에서 산짐승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어둡고 무서워졌다. 불이 켜진 가로등 아래 전방 1미터 남짓을 벗어나지 않고, 계속 회전하며 사방을 경계했다. 그렇게 30여 분이 흐르고 저 멀리 사장님의 차가 보였다. 거의 울뻔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차 안으로 순식간에 뛰어 들어갔다.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해 따듯한 물로 샤워를 한 후 맥주 한 캔을 들고 식당에 앉았다. 책을 읽으려고 나왔지만 한두 줄 읽고 덮었다. 그리고 맥주만 홀짝홀짝 마셨다. 꼭 우리나라 같지가 않았다. 밖에는 고요했고 잠깐잠깐 바람소리만 들렸는데, 그 순간이 나 빼고 모든 게 잠시 멈춰있는 기분이었다. 더 오래 있고 싶었지만, 내일의 일정을 위해 아쉬움을 뒤로하고, 일찍 잠자리로 들었다.
그리고 둘째 날.
드디어 금산 산장에 가는 날이다. 서둘러 준비를 한 후, 역시나 사장님 차를 얻어 타고 8시쯤 금산 매표소 앞에 도착해 입장권을 끊었다. 어쩐지 스산했다.
평일이라 그런지 보이는 사람이 없었고, 올라가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등산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서, 어떤 위험 요소가 있는지 몰랐다. 그래서 더 용감했던 것 같다.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점점 더 겁쟁이가 되었던 건 바로 까마귀, 거대 까마귀 덕분이다.
까마귀가 그렇게 클 줄 몰랐다. 가까이에서 본 것도 처음이었고, 계속 나무와 나무 사이로 나를 따라오는 듯 느껴져(까마귀는 가던 길 가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발걸음이 다급했다.
그렇게 쭈구리 상태로 힘겹게 올라 3-40분 만에 겨우겨우 도착한 금산 산장.
그렇다. 문을 열지 않았다. 아무도 없었다. 소름 돋을 정도로 조용한 적막 속에서 까마귀만 울어댔다. 꼭 나에게 말을 걸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하마터면 까마귀랑 대화할 뻔.
어쨌든 그렇게 원하고 갈망하던 금산 산장에 왔다. 그것도 나 혼자 이 먼 곳까지. 쫄보지만 용감하게 도착한 것이다. 첩첩산중이 만든 절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날이 흐렸고 해무가 잔뜩 끼어 있었지만, 그 때문인지 산신령이 불쑥 나올 것만 같았다.
내가 앉아 있는 곳이 땅 위 인지, 아니면 잠시 하늘 위로 올라와 앉아 있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그곳은 비현실적인 곳이었다. 올라오기까지 너무 힘들고, 나 따위 신경도 안 쓰는 거대 까마귀에 겁도 먹었지만 올라오길 잘했고, 찾아오기 정말 잘 했다며 스스로를 칭찬했다.
의자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한참 넋을 놓고 절경을 보고 있었다. 한참을 있었는데도 금산 산장은 문을 열지 않았다. 여기서 라면, 부침개, 막걸리가 먹고 싶었는데… 사실 그러려고 온 건데 말이다. 진짜 그 인증샷 찍어서 올리면 다 날 부러워할 텐데… 아침도 굶었더니 더 서러웠다.
금산 산장을 보고, 보리암을 거쳐 내려갈 계획이었던 나는 올라오는 길에 체력을 다 썼다. 그래서 깔끔하게 보리암을 포기하고 내려갈 준비를 했다. '왔던 길로 다시 가면 되겠지'라고 쉽게 생각하고 왔던 길을 찾으려는데 당혹감이 찾아왔다. 이 길이 그 길인지, 저 길이 그 길인지 헷갈릴 정도로 비슷했고, 올라올 때 다 쓴 체력 덕에 다리까지 후들후들거렸다. 기억을 더듬으며 신중하게 내려갔지만 나는 길을 잃었고, 가다 보니 어느덧 깔끔하게 포기했던 보리암에 도착해 있었다.
황당함에 웃음이 먼저 나왔다. 이렇게 된 거 보리암에 왔었다는 흔적을 남기자! 사진을 찍었지만, 솔직히 영혼이 없었다. 사진 몇 장을 억지로 찍다시피 한 후 잠시 앉아서 숨을 골랐다. 어떻게 하면 빨리 내려갈 수 있을까 생각했다. 집에 가고 싶어졌다. 갑자기 엄마의 따듯한 밥이 그리워졌다. 어떻게든 빨리 내려가보자 결심하고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나가는 곳이라며 팻말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 걸었다. 위쪽으로 뻗은 계단이 나왔다. 나는 내려가야 할 것 같은데, 위로 올라가는 계단에 잠시 망설여졌다. 때마침, 저 멀리 아주머니들이 계단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어디서 난 힘인지 두, 세계단 씩 올라가 아주머니들께 하산하는 길이 이쪽이 맞는지 여쭈었다. 맞다고 하셨다.
가르쳐주신 길을 따라 한 10분 정도 걸었더니, 내가 올라오던 길이 나왔다. 눈에 익은 길을 따라 쫓기듯 우다다 내려왔다. 드디어 처음 출발했던 매표소에 도착했다. 그때 저 멀리 주차장 앞쪽에 한 택시에서 손님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양옆은 보지도 않고 '저 택시는 내가 타야 해'라며 냅다 달려가 기사님께 승차해도 되는지 여쭙고 바로 뒷자리에 탔다.
‘“터미널로 가주세요 기사님”
그렇게 터미널에 도착한 시간 아침 10시. 겁보 고혜정은 만만하게 봤던 산행에 완전 코가 깨졌고, 올라오는 4시간 동안 휴게소 화장실도 안 가고, 잠만 자다가 서울에 도착했다. 그리고 1시간 더 전철을 타고 집에 돌아와, 따듯한 밥을 허겁지겁 먹으며 눈물을 훔쳤다고 한다.
내게 최고의 힐링이 될 거라 믿었던 사진 한 장 덕분에 5시간이나 걸리는 남해를 무작정 다녀왔다. 좋아 보이는 것, 딱 그 한 가지만 생각하고 그 뒤에 따르는 혹독함 들을 보지 못한 것이다. 떡하니 금산에 있는 산장(식당)인데 산에 올라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니. 바보 아닌가. 자책을 하긴 했지만, 알았다면 더 많은 시간을 망설였을 수도 있었겠지? 그렇지만 위험 요소는 제대로 알아봐야지? 눈물…
★★★★
저질체력 뚜벅이 여행자로써 너무 힘든 산행이었습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무릎이 너무 아팠거든요. 정말 데굴데굴 굴러서 내려오고 싶었어요… 우리 동네 뒷동산부터 차근차근 시작해야겠습니다… 산은 정말 조심해야 하고 체력도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