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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Kim Nov 05. 2019

천안문에서 자금성 찾기

 인터넷이 번창하기 이전의 여행은 도전이었고 모험이었다. 그곳에 가기 전에 취할 수 있는 정보란 그곳에 가본 사람들의 자기 해석이 섞인 이야기와 진위여부를 알 수 없는 떠도는 소문들이 전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비게이션 없이 길을 찾는 것처럼 이루 말할 수 없이 불편한 여행이었지만,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묘한 흥분이 있었다.
 꼬맹이 시절에 했던 해 질 무렵의 학교 운동장 탐험이 그러했다. 학교 동상에는 으레 시시한 괴담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던 겁쟁이 꼬맹이에게 해 질 무렵의 학교 탐험은 호기심과 모험심을 불사르기에 충분했다. 며칠을 벼르다 드디어 나선 발걸음은 조심스러웠고, 가슴은 두근두근하다 못해 찌릿찌릿했다. 책 읽는 소녀의 눈에서 피가 흐르고 있는지 살피기 위해 한 걸음씩 내딛을 때의 오싹한 기분은 족히 삼십 년은 지난 지금까지도 바래지 않은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탐험을 통해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소문이 증폭되는 메커니즘이다. 다음날 나는 동네 친구들에게 나의 대단했던 용기를 과시하기 위해 각색된 이야기를 마구 퍼트렸다. 한결 무서워진 새로운 버전의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은 한결같이 진짜인지 물었고 나는 더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진짜라고 답했다. 진지함이 가미된 나의 허풍 섞인 이야기는 날개를 달고 교내를 훨훨 날아다녔다.
 
 나는 지금 자금성 옆이라 추측하고 예약했던 jade 호텔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언젠가 잔뜩 인터넷 검색을 하고, 관련 여행 프로그램 몇 편을 시청한 후 떠난 여행에서 나는 큰 실망을 받았다. '사진과 같군, 여기는 사진빨이었네, 방송에서 나온 그 음식이군, 블로거는 분명 5달러라고 했는데 유명세를 타고 그새 올렸나 보군.' 이런 식의 여행은 모름지기 있어야 할 흥분이 1도 없는 빈 껍데기와 다를 바 없었다. 이 깨달음을 얻은 이후로는 숙소의 위치를 정하기 위한 최소한의 정보만 알아본다. 이번에도 그랬다. 23시간 스탑오버 여행지인 베이징의 숙소를 예약하기 위해 아고다 창을 열고 베이징 지도 한가운데 보이는 큰 성곽을 유명한 자금성이라 생각하고 예약을 했던 것이다.

 오늘 자금성이라 추측한 장소에 도착해 돌아보다 티엔안멘이라 적혀있는 표지판을 발견하고 한참을 들여다보고서야 내가 서있는 곳이 천안문이란 것을 알았다. 천안문을 둘러본 소감은 '매우 컸다.' 정도로 해두겠다. 돌아가는 길에 놀라운 파이 맛집도 발견했지만 말하지 않겠다. 또 다른 누군가의 탐험을 위해 더 이상의 정보는 생략한다. 다만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단 하나의 정보를 특별히 줄 테니 잘 듣기 바란다. 사람이 북적이는 낮과 대조적으로 해 질 무렵이 되면 광장에 인적이 드물어져서 무척 스산한 분위기가 된다. 이때 절대 혼자 가면 안된다. 만약 어쩔 수 없이 혼자 가야 한다면 절대 광장 한가운데 있는 사진의 눈을 보면 안 된다. 그 이유는...

 



 매일 한 편의 글을 쓰는 것을 신년 목표로 세우고 처음으로 쓴 글이다. jade라는 작가명도 이날 묵었던 호텔 이름에서 따왔다. 뭐 거창한 이름이 필요한가 싶어서.

 보고 싶었던 자금성은 찾지 못하고 천안문만 보게 된 안타까움을 담아서 글의 제목을 '천안문에서 자금성 찾기'로 달았는데 우연한 계기로 오늘에서야 나의 무지를 깨닫게 됐다. 광화문 뒤에 경복궁이 있듯이 천안문 뒤에 있었던 큰 성이 자금성이었던 것이다! 어쩐지 이름 없는 성이 커도 너무 크다 싶었다.  세상 다 안다는 듯 떠들어대지만 실상은 이렇게나 허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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