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de Kim Nov 05. 2019

마른오징어 엑기스를 뽑듯이 직장의 즐거움을 찾아보자

 퇴근이라는 단어는 참 근사한 반면 야근이라는 단어는 듣기만 해도 미간이 찌푸려진다. 그렇다고 회사 생활이 늘 괴로운 건 아니다. 회사 생활에도 나름의 기쁨이 조금은 있다는 말이다. 물론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게 좋겠지만 생계를 위해 피할 수 없으니 남아있는 선택지는 누릴 수 있는 기쁨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쪽쪽 빨아먹는 거다. 마른오징어에서도 엑기스를 뽑아내겠다는 다부진 결의로 회사에서의 기쁨을 찾아보자.

사내 메신저

적막한 사무실에서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무미건조하게 퍼진다. 그런데 가끔은 그 타자 소리가 리드미컬 해지는 순간이 있다. 글자로 표현이 될지 모르겠지만 '타다닥 탁탁 타라락 티티티' 뭐 이런 흥겨운 리듬을 만들어 내는 순간이 있단 말이다. 그 경쾌한 타격음을 만들어내고 있는 이의 표정을 슬쩍 훔쳐보면 대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안면근육으로 애써 누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김대리와 정대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만들어내는 타자 치는 소리가 묘하게 합을 이룬다. 한쪽에서 '타다닥 탁탁'하면 곧이어 다른 쪽에서 '타다닥타다닥 탁 탁 티티티' 뭐 이런 식이다. 둘은 표정도 비슷하다. 입꼬리를 연신 씰룩씰룩거리다 동시에 벌떡 일어나 바깥으로 나간다. 남자들끼리 화장실에 같이 가는 경우는 거의 없으므로 담배 타임으로 추측해본다. 그렇다면 '타다닥타다닥 탁 탁 티티티'는 '담배타임 고고 ㅋㅋㅋ'였을까? 모르긴 해도 마지막 '티티티'는 'ㅋㅋㅋ'가 틀림없다.


점심시간

점심시간을 쪼개어 누군가는 시에스타를 즐기고(낮잠), 누군가는 아아를 즐긴다(아이스 아메리카노). 그 짧은 시간에 쇼핑을 하기도 하고, 헬스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기도 한다. 맛있는 식사 만으로는 충분한 보상이 되지 않는 건지 길지도 않은 시간을 각자의 방법으로 하얗게 불태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친구는 시에스타 파였는데, 특이하게도 회사 옥상 데크에 엎드려 햇살을 즐겼다. 태생이 소심한 나는 부러워만 할 뿐 도저히 따라 하지 못하다 어느 날 집 베란다에서 해봤는데, 따뜻한 햇살이 등판을 데워주는 기분이 퍽 좋았다. 커피를 마시지 않고, 쇼핑과 운동에 흥미가 없으며, 남들 시선 신경 쓰지 않고 옥상 데크에 몸을 누일 만큼 대범하지 않은 나는 주로 글을 끄적이며 시간을 보낸다. 지금처럼.


출장

가기 전에는 가기 싫다 징징대지만, 다녀오면 피로에 정신이 몽롱해지고 삭신이 쑤시지만, 출장은 분명 즐거움이 있다. 날씨 좋은 날 회사의 바운더리를 벗어나 자유의 햇살을 즐기며 내딛는 발걸음은 늘 가볍다. 예상보다 사무가 일찍 끝나 여유를 부리며 복귀할 때, 아아 한잔의 여유와 회사에 속박되지 않은 민간인(?)들을 바라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즐거움은 해외출장에 있다!

 해외 출장을 가면 술과 밤문화의 즐거움을 모르는 나는 주로 초저녁부터 잠을 청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기 위해서다. 발리에 출장 갔을 때에는 오전 일정이 시작되는 10시 전에 자유시간을 누리려고 5시에 일어나 고양이 세수를 하고 서둘러 호텔방을 나섰다. 5시간짜리 초단기 여행이 시작되는 그 순간, 나는 몹시 흥분되어서 달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촉박해서가 아니다. 마음이 들떠서 도저히 느긋하게 걸어갈 수가 없어서다. 목적지는 꾸따 비치! 달리는 동안에도 고개를 상하좌우로 돌려가며 패션피플, 길고양이, 날아가는 새, 보도블록의 모양, 상인들의 모습 등 그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으려 부단히 탐색했다. 동시에 돌아갈 때를 대비해서 랜드마크를 기억해 두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해가 떠오르며 급속하게 기온이 상승해 땀이 비 오듯 흘렀지만 두 다리는 멈추지 않았다. 그 날의 기쁨, 아니 기쁨을 넘어선 흥분은 지금도 생생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