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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태리 Sep 06. 2020

여는 글

있는데 없다고 할 수 없다

#01 여는 글


어린시절 우리집에 코끼리가 있었다. 방안에 코끼리가 있는데, 코끼리에 대해 이야기하는게 금기였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아무도 명확히 코끼리를 이해하지 못해 말하지 못했다. 


어릴때는 코끼리만 우리집에 없었다면, 다른 친구들처럼 나는 행복하게 살수 있었을거야라고 상상하곤 했었다. 부모님은 코끼리가 사고를 치면 싸우셨다. 부모님도 코끼리를 어떻게 다뤄야하는지 모르셨다. 특히, 아버지는 코끼리를 무서워했다. 코끼리가 우리집에 있는걸 엄마탓이라고 하며 코끼리와 눈마주치는걸 두려워했다.


아무도 왜 우리가 코끼리와 살게 되었는지, 코끼리는 우리와 다른 행동을 하는지 가르쳐주지 않았다. 물어볼 엄두도 못 내었다. 어른들은 진실을 말해주지 않았고, 나는 이유도 모르고 우울했고, 어떤 질문을 해야하는지조차 생각나지 않았으니까. 어둠과 우울의 감정속에서 갖혀 살았다. 


친구들이 웃는게 이해되지 않았다. 웃는건 TV에서 코미디언들이나 하는거지. 어떻게 살면서 웃을수 있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 투성이었다. 나는 혼자 다녔다. 우리집 비밀 코끼리는 부끄러웠으니까. 


20대때 좋아하던 작가가 있었다. 조경란이라는 여류작가는 초기작품에 독이 있는 복어를 끓여먹고 자살한 고모 이야기를 썼다. 그녀의 어머니는 남사스럽게 왜 가족의 비밀을 남들이 다 보는 소설에 썼느냐고 뭐라했다 한다. 하지만, 난 그녀의 발설이 통쾌했다. 어릴때부터 잊혀지지 않았던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세세히 써내려간것이다. 그 작업은 치유를 위해 초창기 작가들이 하는 작업이라 했다. 내 안의 어둠에 대해 충분히 썼을 때 다른 것에 대해 쓸수 있다고 어디서 읽은 것 같았다.


나도 한때 작가가 되고 싶었다. 동화도 썼고, 소설도 습작해봤지만 내 옷같지 않았다. 나는 내 주변에 일어난 일들을 그대로 쓰는 글이 맘에 편했다. 결국 난 나의 어둠에 대해 쓰기로 작정했다. 진실을 마주할 수 있는 특권은 프로페셔널 작가만이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집 코끼리는 지금도 나와 함께 산다. 지금은 코끼리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도 안다. 내동생이니까. 단지 그를 이해못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우리 모두 힘들었을뿐이었다. 이제 40대 후반이 되어가는 나이를 먹어가니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점점 더 생긴다. 


자폐장애3급 내 동생 화섭씨에 대해 글을 쓴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0년쯤 모 마라톤 사이트에서 화섭씨와 마라톤 훈련일지를 연재한적이 있다. 그 뒷이야기부터 글을 시작해볼까 한다.


l  방안의 코끼리 이야기는 시한부 교수, 랜디 포시의 강의에 나옵니다. “자신이 시한부 선고를 받고 한 강의에서 방안에 코끼리가 있다. 모두 알고 있는데 말하기를 꺼리고 있다. 그 코끼리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 라는 대목에서 따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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