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데 없다고 할 수 없다
뒤돌아보면 내마음이 제일 어두웠을때가 20대 후반이었다. 남들은 20대를 인생의 황금기라 묘사할수도 있지만, 난 그 시대로 돌아가기 싫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했다. 처음 몇 년동안은 좋은 동료와 적성에 맞는 일거리로 행복하기 그지 없었다. 그러다, 근무환경이 바뀌어 다양한 사람들을 상대로 큰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다. 매일 회의를 열어 의사결정을 해야했지만, 나는 무엇이 좋은지 안 좋은지 판단이 생기질 않았다. 난 전산실 개발자였으니 개발하기 유리한 방면으로 협상을 해야했지만, 회의시간에 남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할지 머리가 하얗게 되었다. 말한마디 안하고, 자기주장 하나 못하고 회의에 참석하니 나중에는 아무도 나를 회의에 부르지 않게 되었다. 일하나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건 고역이었다.
지독한 우울증이 시작되었다. 일은 남들이 의사결정을 해오면 그걸 받아 조금씩 하게 되었지만, 지독한 자기증오는 멈추질 않았다. 도대체 남들은 멀쩡히 잘 적응하는 새로운 역할에 나는 1도 못하고 있었다. 그저 노예 같았다. 내 판단력은 하나도 없는 바보 같았다. 그런 자기평가에 나는 매일 무거운 짐을 짊어진 듯, 인생이 무거웠다. 이걸 극복하고자 선택한 것이 마라톤이었다.
당시 무라카미 하루키 팬이었다. 그의 소설보다 에세이를 좋아했다. 소설을 쓰기 위한 체력을 키우기 위해 그는 조깅을 하고 마라톤을 하고 있었다. 그 부분을 읽는걸 반복하다, 처음에는 학교운동장 달리기부터 시작했다. 차차, 달리기 거리를 늘렸고, 한 마라톤 동호회에 가입해서 한강변을 주말마다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나는 말수없고 자기표현력 부족한 사람이었다.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은데 어떻게 다가서고 말해야할지 알수 없었다. 당시 마라톤 동호회 사람들이 글을 올리는 게시판이 있었는데, 몇 분은 유명인이 될정도로 필력이 좋았다. 나는 그들과 친해지고 싶은 열망이 컸다. 나는 말보다 글이 더 편했다.
당시 자폐인 마라토너 배형진군이 화제가 되었다. 그것을 보고 힌트를 얻어 나는 화섭씨와 마라톤 훈련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화섭씨는 우리집에 있는 자폐장애를 가진 동생이다. 그 동생과의 훈련일지를 올리기로 작정했다. 그 의도는 순전히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어서였다. 화섭씨와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내가 우울증에 벗어나고 싶었고, 내가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었다. 순전히 나를 위해 한 행동이었다.
의외로 동생은 나와 잘 달려주었다. 매달 일정일을 정해 한달간의 훈련일지와 화섭씨와의 에피소드를 올리기 시작했다. 몇 개월이 지난후 한 마라톤대회에 출전했다. 달리다 한 분과 이야기를 하게 됬다. 골인지점에 돌아와서 자기소개를 하게 되었다. 그분은 내 이름을 듣자마자 놀래며 주변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여기 그 동생과 훈련일지를 올린 분이 있어요!!”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이 내 주변에 모여들었다. 다들 그 글을 읽은 소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모두들 나를 칭찬했다. 그 동호회가 당시 모 신문사 주최 사이트였는데, 옆에 있던 한 분이 자신이 그 신문사 기자라 밝히며 요즘 게시판에서 내글이 주목 받고 있다고 했다. 의도는 했지만, 실제로 그런일이 벌어지니 신기하기 그지 없었다.
그때부터 나랑 화섭씨가 같이 뭔가 하는게 적성에 맞다는걸 알게 되었다. 이렇게 글까지 쓰게 된 이 현재가 그때부터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