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스트 글쓰기-칼럼 : 생각해야 관점이 생긴다 3

by Newfifty

[저널리스트 글쓰기-칼럼 : 생각해야 관점이 생긴다]의 마지막 시간입니다.


[저널리스트 칼럼은 저널리스트의 관점(觀點∙point of view)을 담은 글]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칼럼을 통해 그 관점을 어떻게 독자들에게 보여드리는 것이 좋을까요?


그 방법은 참으로 다양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널리스트가 의미 있게 지켜본 현장을 독자에게 그대로 보여드려도 되고요.

독자가 궁금해 할 수 있는 사안을 심도 깊게 취재해 설명해 드려도 좋고요

어려운 이슈나 주제라면 알기 쉬운 비유 등을 통해 이해를 돕는 방식도 괜찮습니다


아래는 미국 특파원 시절이던 2015년에 쓴 ‘현장 칼럼’입니다.




정치인 예우 없는 9·11 추모식


‘추모식이 진행되는 동안 정해진 취재구역에서 임의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곧바로 퇴장당할 수 있습니다.’


(2015년 9월) 11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그라운드제로에서 열린 9·11 테러 14주년 추모식을 주관한 ‘국립 9·11 메모리얼박물관’ 측은 사전에 기자들에게 e메일로 이 같은 취재지침을 고지했다. 이날 오전 6시 15분경 행사장에 도착하니 e메일을 보냈던 박물관 커뮤니케이션 담당 앤서니 기드 국장이 나와 있었다. 정해진 취재구역은 추모식 무대에서 50m가량 떨어진 가로 10m, 세로 5m, 높이 1m 크기의 취재 연단. 그 주위엔 폴리스 라인(출입통제선)처럼 줄이 쳐져 있었다.


행사는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의 북쪽 타워가 테러 공격을 받은 오전 8시 46분에 맞춰 묵념의 시간을 가진 후 유가족이 2명씩 짝을 이뤄 희생자 2983명의 이름을 차례대로 호명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3시간 반의 추모식 동안 기자들은 취재구역으로 찾아온 유가족만 인터뷰할 수 있었다. 사진기자들이 취재구역을 벗어나 촬영하려면 박물관 직원과 동행해야만 했다. 엄격한 취재 제한에 대해 기드 국장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에선 이런 취재 통제를 당해본 적이 거의 없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기자)

“추모식은 9·11 유가족을 위한 행사다. 그들이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애도의 시간을 갖도록 배려해야 한다.”(국장)


“정치인들이 많이 왔다. 그들의 추모사 낭독 순서도 있나.”(기자)

“그런 건 없다. 호명 행사가 끝나면 추모식도 끝난다.”(국장)


행사에는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 빌 더블라지오 뉴욕 시장, 척 슈머·크리스틴 길리브랜드 뉴욕 연방 상원의원, 마이클 블룸버그·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 시장 등 스타급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했다. 그러나 이들을 소개하는 방송도, 이들이 무대에 등장하는 이벤트도 전혀 없었다. 정치인들은 무대에서 30m가량 떨어진 한쪽 구석에 나란히 서 있었다. 이들을 위해 마련된 의자조차 없었다. 더블라지오 시장은 추모식이 끝날 때까지 4시간 넘게 서 있었다. 이날 의자에 앉아 행사를 지켜보고 행사장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참석자는 가슴에 파란 리본을 단 유가족뿐이었다. 좌석과 음료 제공 등 모든 편의도 그들에게만 집중됐다.


이날 추모식에서 유가족을 위한 행사라는 원칙은 언론뿐만 아니라 유명 정치인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되고 있었다. 그걸 확인하니 취재구역에서 꼼짝하지 못하고 6시간 넘게 갇혀 있었던 답답함과 피곤함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당시 ‘9·11 추모식’을 현장에서 처음 보면서 ‘맞다. 추모식에서 가장 중요하고 배려받아야 할 사람은 유가족이지. 유명한 정치인이 아니지’라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던 겁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대통령 후보’급인 거물 정치인들이 조용히 한쪽 구석에 서있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추모식 장면을 그대로 보여드리는 것으로 저의 관점을 소개한 것이지요.


제가 저널리스트로서는 지양하고, 독자로서는 좋아하지 않는 칼럼의 유형은 ‘저널리스트의 관점이나 생각을 독자에게 가르치려 하거나 강요하는 듯한 칼럼’입니다. 좀 심하게 단순화하면 ‘내가 옳은 말을 글(칼럼)로 쓰니, 너희(독자)는 잘 읽고 따르도록 하여라’하는 식의 칼럼 말입니다.


어느 한쪽 진영에 확고히 서 있거나 어느 한쪽의 이해를 대변하는 경우, 이런 식의 글을 많이 쓰는 것 같습니다.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와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이 맞붙은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뉴욕타임스 같은 세계적 언론사의 칼럼니스트들도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당시 미국 특파원으로 있으면서 뉴욕타임스 유명 칼럼니스트들의 글을 매일 읽었는데요, 대선 관련 거의 모든 칼럼의 주제가 ‘트럼프 같은 인간이 감히 위대한 미국의 대통령이 되려 하다니…’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언론사가 대선 후보를 ‘공개 지지(endorsement)’할 수 있는데요, 뉴욕타임스는 민주당 후보를 지지해 왔습니다. 2016년에도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했고요.


2016년 미국 대선을 현지에서 취재하고 지켜보면서 저널리스트로서든, 투표권 없는 외국인 주재원으로서든 가장 궁금했던 것은 ‘트럼프 돌풍의 배경과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트럼프 같은 인간은 절대 대통령 되면 안 된다’는 얘기만 쓰는 뉴욕타임스 칼럼을 읽고서는 그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직접 트럼프의 저서들을 꼼꼼히 읽고, ‘트럼프 현상’을 분석한 여러 전문가들의 글을 찾아보고, 걸어서 이동할 때는 ‘시사토론 라디오’를 통해 미국 시민들의 트럼프에 대한 생각을 꾸준히 들었습니다.


아래의 칼럼들은 그런 취재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저의 관점들입니다.




트럼프를 얕잡아보지 말아야 하는 이유


2015년은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70)를 얕잡아본 사람들을 겸허하게 만든 해였다.


“트럼프가 지난해(2015년) 6월 출마 선언을 했을 때 ‘강력한 정치적 한 방’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긴 했다. 그러나 그 한 방이 이렇게 오래갈 줄은 정말 몰랐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연설문을 썼던 월스트리트저널 칼럼니스트 페기 누넌을 비롯해 많은 정치평론가들의 반성이다. 트럼프의 독설과 직설을 통해 표출되는 민심과 정치의 거대한 지각 변동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던 것이다.


트럼프의 인기는 처음엔 이변이었다. 그러나 공화당 내 지지율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트럼프 현상’이 됐고 급기야 ‘트럼프주의(Trumpism)’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를 비판의 먹잇감으로 삼았던 미 언론이 앞다퉈 진지한 분석을 내놓는 상황이다. 그의 경선 캠프가 차려져 있는 뉴욕에서 보고 들으며 기자도 트럼프주의를 해석하는 키워드를 갖게 됐다.


우선 ‘돈’이다. 트럼프는 출마를 선언하면서 “나는 엄청난 부자”라고 자랑했다. 부채를 뺀 순자산이 87억 3745만 달러(약 10조 3101억 원)다. “워싱턴 정치인들은 전부 로비스트와 정치자금 후원자들에게 조종당한다. 나는 다르다. 내 돈으로 정치한다.” 로비스트를 고용할 돈도, 힘도 없는 중산층과 서민에게 트럼프의 돈은 강한 호소력을 지닌다. 대표적 진보 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조차 “트럼프는 다른 공화당 후보들처럼 거액 정치자금 기부자들에게 몸을 낮출 이유가 없다”고 했다.


둘째는 ‘미디어’. 오랜 방송 경험이 있는 그는 신문과 방송뿐 아니라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의 생리도 꿰고 있다. “미디어는 나를 비판하기 좋아한다. 그래야 시청자와 독자의 관심을 끌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미디어의 공격을 받는 게 아무렇지도 않다. 미디어가 나를 이용한 방식대로, 내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나도 미디어를 이용할 뿐이다.”


자서전의 이 대목에 이르면 ‘미디어가 알면서도 꼼짝없이 트럼프에게 당하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한때 그와 껄끄러운 관계였던 폭스뉴스의 새해맞이 특집방송 하이라이트도 트럼프 차지였다. 해가 바뀌는 순간 가족과 함께 등장해 “내 새해 다짐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홍보했다.


‘액션’도 주목해야 할 키워드. 트럼프가 기성 워싱턴 정치를 싸잡아 비난할 때 반복적으로 쓰는 말이 ‘All Talk, No Action(말만 있고 행동이 없다)’이다. 그는 “워싱턴 정치인들은 ‘해가 뜰 겁니다. 달이 질 겁니다. 온갖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라고 말하는데 국민은 그런 감언이설(甘言利說)은 필요 없다. 실천을 원하고, 일자리를 원한다”고 강조한다.


미 언론은 “‘막말’이라고 공격받는 트럼프의 독설이나 직설이 대중에게 먹히는 건 실현 가능성을 떠나 구체적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심층 면접을 해본 트럼프 지지자들은 그의 막말을 기성 정치인은 입에 올리지도 못한 ‘진실’로 여기며 전혀 다르게 받아들인다”고 소개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는 떠나가더라도 트럼프주의는 계속될 것 같다”고 진단했다.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트럼프를 결코 얕잡아보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2016년 1월)




트럼프는 ‘협상의 달인’… 한국, 손 놓고 있다간 큰코다친다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뉴욕 프라이머리(예비선거)가 실시된 이달(2016년 4월) 19일. 뉴욕지역 공영라디오방송 WNYC는 하루 종일 ‘지지 후보와 그 이유’에 대한 뉴요커들의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을 하시죠?”

“맨해튼 월가 금융기관에서 일합니다.”


“어느 후보를 지지하시나요?”

“도널드 트럼프요.”


“그럼 트럼프가 주장해 온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거대한 장벽 쌓기, 모든 무슬림의 미국 입국 금지도 지지하시나요?”

“아뇨. 바보 같은 소리죠.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잖아요. 뉴욕은 미국의 힘인 다양성을 상징하는 도시고요.”


“그런데 왜 트럼프를 지지하는 거죠?”

“그는 평생 협상을 해온 비즈니스맨이잖아요.”


트럼프의 ‘막말’을 일종의 협상카드로 생각한다는 얘기였다. 끊임없이 논란과 분란을 일으키는 트럼프를 지지하는 자기합리화 도구 중 하나가 ‘트럼프는 협상가’라는 평가다.


트럼프는 유세도 협상처럼 한다. 비센테 폭스 전 멕시코 대통령이 “트럼프의 빌어먹을 장벽에 멕시코가 왜 돈을 내나. 돈 많은 트럼프, 당신이 내라”고 공격하자 트럼프는 “장벽을 10피트(약 3m) 더 높게 짓겠다. 그 추가 비용까지 멕시코가 지불하게 될 것”이라고 맞받았다. 상대 반발에 주춤하기보다 더 센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트럼프는 한국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동맹국에 대해선 ‘안보 무임승차론’을 끊임없이 주장한다. 이 역시 ‘멕시코 국경 장벽’처럼 미국 유권자의 지지는 끌어내고 상대 국가는 압박하는 협상카드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더라도 한국 정부로선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트럼프에 대응할 논리나 지렛대(레버리지)를 만들어놔야 한다. 그러나 기자가 아는 고위 외교관은 “트럼프 캠프에 줄 댈 방법을 찾기 어렵다. 합리적이고 예측 가능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당선되기를 기도할 뿐이다”고 털어놨다.


“협상할 때 절박한 처지를 노출하면 무조건 진다. 상대를 움직일 지렛대가 없다면 협상장에 나가지도 말라.”


트럼프가 1987년 자신의 경험을 담은 베스트셀러 ‘협상의 기술’에서 소개한 협상전략이다. 트럼프의 정체도 모르겠고 대응할 지렛대도 마땅찮다면 이 책부터 꼼꼼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2016년 4월)




수시로 말 바꿔도… 트럼프 인기 미스터리


“이 창은 어떤 방패도 뚫을 수 있습니다. 이 방패는 어떤 창도 다 막아 낼 수 있죠.”(상인)

“그 창으로 그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나요.”(행인)


말이나 행동의 앞뒤가 맞지 않음을 뜻하는 모순(矛盾)의 우화.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도널드 트럼프(70)는 ‘걸어 다니는 모순덩어리’라고 마이클 린치 코네티컷대 철학과 교수가 (2016년 5월) 8일 뉴욕타임스에 썼다. 트럼프는 수시로 말을 바꾸고 심지어 같은 인터뷰나 연설에서도 모순되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그동안 “시간당 7.25달러는 너무 높다”고 말해 오다가 8일 NBC 인터뷰에서는 “어떻게 그 돈으로 살 수 있는지 모르겠다. 최저 시급이 어느 정도 올랐으면 좋겠다”고 말을 바꿨다. 종전의 ‘부자 감세’ 공약과는 정반대로 ‘부자 증세’도 주장했다.


낙태 문제에 대해 ‘여성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가 최근엔 “낙태 여성을 처벌해야 한다”라며 반대로 돌아섰다. 비난 여론이 일자 “여성은 희생자다. 시술 의사는 처벌돼야 한다”고 번복했다. 시리아 난민에 대해서도 지난해 9월엔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가 몇 개월 만에 “테러리스트가 섞여 있을지 어떻게 아느냐”며 다른 말을 했다.


정치에서 말 바꾸기는 비판의 대상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모순은 오히려 그 인기와 지지의 중요한 발판이라고 린치 교수는 분석했다. 트럼프는 비판받을수록 사과는커녕 더 크고 당당한 목소리로 모순된 발언과 행동을 반복한다.


“트럼프가 자유롭게 말을 바꾸는 건 자신을 비판하는 세력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걸 보여 준다. 그건 일종의 권력을 상징한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진짜 강한 자만이 저렇게 할 수 있다’고 느낀다.”(린치 교수)


특히 정제되지 않은 정보, 정반대 논리가 범람하는 디지털 세상에 살면서 우리 모두가 객관적 진실보다는 ‘나와 같은 생각’에 더 큰 가치를 두게 됐고 그 토양 위에서 트럼프의 ‘모순 정치’가 큰 파괴력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고사 속 행인과 달리 트럼프 지지자들은 자기 입맛에 따라 트럼프의 창과 방패를 구입하는 셈이다. 그런데 그 창으로 그 방패를 찌르는 진실의 순간이 과연 오기는 할까.


(2016년 5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이겼습니다.


대선 직후 썼던 기획 기사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공영 라디오 방송 NPR는 (2016년 11월) 12일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 CNN 등 진보 주류 미디어와 폴 크루그먼(미국의 대표적 진보 논객이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같은 언론인들이 왜 성난 민심을 읽지 못했느냐’는 주제의 기획 프로그램에서 “트럼프만 비난하느라 ‘트럼프 현상’의 본질을 놓쳤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출연자인 한 대학교수는 “힐러리 클린턴이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동부 경합 주에선 ‘4년 전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찍었지만 이번엔 트럼프를 찍겠다’는 유권자를 쉽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NYT 등은 그들에게 ‘왜’라고 묻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2016년 미국 대선’ 취재 경험은 저널리스트로서 많은 생각과 자성을 하게 했습니다.


저널리스트는 취재원(독자와 시청자)에게 ‘왜(why)’라고 여쭙고, 그들(독자와 시청자)을 대신해 ‘왜(why)’라고 질문하고, 그들(독자와 시청자)이 궁금해하는 ‘왜(why)’에 대한 대답을 찾고 취재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더욱 새기게 됐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다(I might wrong)’는 마음가짐으로 더욱 겸손해야 함을 깨닫게 됐습니다.




10년 전(2015년 11월) 칼럼 하나를 소개하며 [미디어 글쓰기 강의 노트] 연재(총 30회)를 마칩니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한 사람’ 취재기


1997년 봄. 당시 김영삼 대통령 차남 김현철 씨의 국정개입 의혹 사건으로 나라가 시끄러웠다. 이른바 ‘문민정부 소통령’ 김현철 파문의 진원지는 서울 송파구에 있는 G남성클리닉(비뇨기과) 원장 박경식 씨(63•당시 45세). 김 씨가 박 씨 병원에서 모처에 걸었던 전화통화의 민감한 내용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사건은 촉발됐다. 이후 박 씨가 “현철 씨에게 이런 의혹도 있다”고 한마디 할 때마다 신문 1면 톱기사가 됐다.


강남 서초 송파 강동 지역을 담당하는 주니어 사건기자(강남경찰서 출입)였던 기자에게 ‘박 씨를 전담 마크하라’는 시경캡(사건팀장)의 특명이 떨어졌다. 한 달 넘게 기자실 대신 박 씨 병원으로 출퇴근했다. 점심때가 되면 배달된 음식을 같이 먹고, 담소를 나눴다. 특별히 뭘 취재한다기보다 그냥 그의 곁에 붙어 있었다. 밀물처럼 그를 찾던 기자들이 하나둘 썰물처럼 모두 빠져나간 뒤에도 난 계속 병원에 있었다. 그해 4월 21일 그가 국회 ‘김현철 청문회’ 증인으로 TV 앞에 설 때까지 그의 복잡 미묘한 심정을 바로 옆에서 살피고 느낄 수 있었다. 당시 정치권, 특히 여권에선 그를 ‘이상한 사람’이나 배신자 취급을 했다. 그러나 거리 서민들은 살아 있는 권력의 반대편에 서 있는 그에게 응원을 보냈다. 택시 운전사도, 식당 아줌마도 “큰일 하고 계신다”며 요금과 밥값을 안 받을 정도였다. 박 씨가 이상한 건지, 그를 이상하게 여기는 여권 인사들이 이상한 건지를 생각해 보게 됐다. 기자실에만 앉아 있었으면 할 수 없는 소중한 사람 공부였다.


요즘 뉴욕에서 고 천경자 화백의 큰딸 이혜선 씨(70•섬유 디자이너)를 여러 차례 단독으로 만나 인터뷰를 하면서 18년 전 했던 ‘사람 공부’를 복습하고 있다. 2003년 뇌출혈로 쓰러진 천 화백을 혼자 간병해온 이 씨는 일부 미술계나 언론에서 ‘이상한 사람’처럼 표현되곤 했다. 천 화백 생존 여부 확인 요청을 완강히 거부하니 이상하고, 최근 사망이 확인된 뒤에는 왜 곧바로 공개하지 않았느냐며 미스터리라고 한다. 이 씨 여동생마저 기자회견에서 “언니는 이해할 수 없는 인격과 행동으로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이상한’ 이 씨와 마주 앉아 몇 시간 얘기를 듣다 보니 이상하고 궁금한 내용이 조금씩 달라졌다.


“우리 외할머니도 중풍으로 쓰러져 누워 계셔서 어머니가 대소변 받아내던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그런 일을 12년간 하신 겁니까.”(기자)

“누워 계시지만 살아 계심에 감사하며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12년이 12개월처럼 느껴집니다.”(이 씨)


“마치 ‘어머니 시신을 감춰놓은 엽기적인 딸’처럼 온갖 억측과 괴담에 시달리셨는데 그 원인을 제공한 사람들이 뒤늦게 사과라도 하던가요.”(기자)

“그럴 리가 있나요. 엄마 모시면서 그런 험한 일을 많이 겪다 보니 ‘악’만 남았습니다.”(이 씨)


앞으로도 이 씨의 그 ‘악’을 접하는 사람들은 그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인터넷 민심은 “어쨌든 병석의 엄마를 12년간 홀로 수발든 딸 아니냐”는 기본적인 인정과 따뜻한 격려가 더 많은 것 같다.


올(2015년) 8월 11일 천 화백의 장례미사를 집전한 가브리엘 피에드라이타 신부(55)는 최근 기자와 만나 “고인의 마지막 얼굴은 아주 평화롭고 고요했다”고 했다. 이어 “딸(이 씨)은 정말 헌신적으로 환자(천 화백)를 돌봤다. 우리 교회 교인들의 큰 귀감이 됐다”고 전했다.


한국의 누구에겐 이상한 사람이, 미국의 누구에겐 귀한 본보기가 되고 있는 셈이다. 이 역설이 기자에겐 또 한 번 소중한 사람 공부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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