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스트 글쓰기-칼럼 : 생각해야 관점이 생긴다 2

by Newfifty

[저널리스트의 칼럼은 저널리스트의 관점(觀點∙point of view)을 담은 글]이고, [모든 취재 과정에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가 ‘나의 관점’이 생기면 그것이 곧 ‘칼럼’이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생각이 관점이 되고, 그 관점을 가지고 새로운 사건이나 현상을 접하면서 더 깊은 생각을 하거나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기존의 관점이 수정∙보완되고 다듬어지곤 합니다.


해외특파원으로 있을 때 그 후 경제부 데스크, 국제부 데스크로 있을 때 칼럼을 쓸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계속 있었는데요. ‘한국의 교육 현실, 대학입시 문제’도 저의 핵심 관심사이자 중요한 관점 중 하나였습니다.


지난 시간에 [노트북 컴퓨터에 ‘감사(感謝)’라는 폴더를 만들어놓고 관련된 사건이나 일화, 주요 인물의 감사 관련 코멘트 등을 차곡차곡 모아놓았다가 ‘감사에 대한 칼럼’을 쓸 수 있을 때 그 폴더를 열어봤다]는 취지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한국의 교육(대학입시)]도 마찬가지로 폴더를 만들어 관련 내용들을 하나하나 저장해 뒀습니다.


소속 부서에 따라 이 이슈(한국의 교육)를 다루는 칼럼의 접근 방식이나 내용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보시죠.


우선 미국 특파원으로 있을 때인 2016년 썼던 칼럼 두 편입니다.




미국은 즐기는데 한국은 견디라니


“대한민국 교육은 심각한 상태에 와 있다. 청소년들이 죽어 가는데 가장 큰 사망 원인이 자살이다. 그중 80%는 성적 때문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야 하는 교육에 의해 청소년이 죽어 간다는 것은 엄청난 병폐다.”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으로 유명한 조정래 작가(73)가 최근 한국 교육의 처절한 실태를 고발한 장편소설 ‘풀꽃도 꽃이다’를 출간한 뒤 언론과 나눈 인터뷰 내용이다. 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공부하는 시간은 제일 길지만 학업성취도는 꼴찌다. 억지로 공부시키니 효과가 안 난다. 사교육 시장만 광적으로 팽창해 왔다”고 꼬집었다.


한 전직 장관(71)도 신문에 비슷한 글을 기고한 적이 있다.


“(초등학생) 손녀가 학원에 나가고서 학교 숙제에 학원 숙제까지 밤낮도, 주말도 없이 해야 했다. 휴가 가서도 숙제해야 하고 방학도 한 주일만 쉬고 학원에 나가야 했다. 내 자녀를 미국에서 공부시킬 때 사교육이라고는 알지도 못했다.”


‘아이가 좋은 대학을 가려면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할아버지의 재력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두 할아버지는 ‘그런 식으론 정말 안 된다’며 위기감을 호소한 것이다. 기자도 학부모여서 이런 주장엔 저절로 눈길이 가고 ‘미국 교육은 한국과 무엇이 다른지’도 살피게 된다.


가장 큰 차이는 “해브 펀(Have fun·즐겨라)!”이란 표현이다. 미국 학부모들이 아이를 학교버스에 태우거나 자동차로 직접 학교까지 데려다주고 나서 하는 인사말이다. 한국에서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즐겨’라고 말한 적은 없는 것 같다.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수업시간에 딴짓하지 말고, 학원 가는 길에 옆으로 새지 말고 등등….’


한 뉴욕 주재원은 “초등학교 1학년 딸 학부모 모임에 다녀왔는데 담임선생이 ‘제 유일한 목표는 아이들이 학교 오는 걸 즐겁게 만드는 것’이라고 하더라”며 감탄했다. 고교 때 미국으로 전학한 한국인 대학생(20)은 “학교(고교)에서 소개해 준 인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내 적성을 찾을 수 있었고 그 경험을 대학 지원 에세이에도 담았다”고 했다. 즐거움을 찾아주고, 재미를 발견하는 교육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한 경쟁력이 되는 것 같았다.


“피눈물 나게 전공 악기를 연습해 세계적 명문 줄리아드음악원에 합격했을 땐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뻤다. 그러나 그곳에서 만난 많은 미국 학생은 ‘밥 안 먹고는 살아도, 음악 없인 못 산다’고 할 정도로 음악을 정말 사랑하더라. ‘내가 이들을 이길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난 견뎌 왔는데 그들은 즐겨 왔더라.”


학교 졸업 후 연주자에서 공연기획자로 진로를 바꾼 한국인 A 씨(34) 얘기다.


한국의 견디기 교육은 학교뿐만 아니라 직장에서도 계속된다. 미국 명문대와 한국 명문대에서 공부하고 한국 대기업에 취직했던 B 씨(33·여)는 “새벽 2, 3시까지 폭탄주 마시고도 오전 6시 반까지 출근해야 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들었다. 선배들은 ‘이 정도는 견뎌야 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B 씨는 견디지 않고 미국으로 직장을 옮겼다. 한국 기준으론 A 씨와 B 씨 모두 중도 포기자이거나 부적응자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들은 미국에서 즐겁게 잘 지내고 있다.


조정래 작가는 한국 교육에 대한 해법으로 ‘국민적 혁명 10년’을 얘기했다. 그 정도까지는 못 하더라도 내 아이가 학교를 즐겁게 다닐 수 있게 해 주는 정치 지도자가 있다면 기꺼이 한 표를 던지겠다. 내 주변엔 같은 생각을 가진 학부모가 참 많다.




우리가 창업가를 못 키우는 이유


“한국은 경쟁이 너무 치열해 작은 실수도 실패로 이어지는 사회다. 당신이 한국의 최고 정책 결정자라면 어떻게 창업가정신을 고취시키고 창업 생태계를 만들어 내겠는가?”


기획시리즈 ‘창업가 키우는 글로벌 공대’ 취재차 지난달 미국 코넬대 공대와 매사추세츠공대(MIT)를 방문했을 때 만나는 취재원마다 이렇게 질문했다. MIT 혁신창업(I&E•Innovation & Entrepreneurship)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스티브 하라구치 디렉터(30)의 답변이 인상적이었다.


“그런 사회라면 학생들에게 ‘창업 리스크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면 안 된다. 어떻게 안 두려울 수가 있나. 그 대신 머리 좋은 고위직 공무원이나 삼성전자 직원에게 1년 정도 창업을 시켜보는 건 어떤가. 실패해도 여전히 공무원이고 삼성 직원이니 무슨 두려움이 있겠나.”


그의 아이디어는 엉뚱했지만 여운을 남겼다.


두 공대에서 만난 한국인 유학생 중 상당수는 대학 진로 결정 때 ‘제발 공대 대신 의대 가라’는 집 안팎의 권유를 받은 적이 있거나 공대 재학 중 의학전문대학원으로 방향을 튼 친구나 선배 때문에 심란했던 경험이 있었다. 창업을 꿈꾸는 미국 학생들에게선 그런 고민을 들을 수 없었다. 실수나 실패에 대한 걱정이나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실패는 더 큰 성공을 위한 좋은 경험일 뿐’이란 인식이 깊었다. 코넬대 공대 박사과정의 한 여학생은 “창업가정신은 기꺼이 실패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라고 했다.


교수들은 ‘강의실 공부와 세상의 변화를 어떻게 접목할 것이냐’를 끊임없이 고민했다. 이 학교의 로버트 셰퍼드 교수(35)는 “고령화사회에 맞는 혁신이나 비즈니스 모델을 찾기 위해 학생들을 모두 노인 요양시설 등으로 보내 ‘소비자’(노인)를 직접 관찰하고 면담하도록 했다”고 전했다.


두 학교 모두 다양한 강의나 실전 프로그램, 경진대회 같은 ‘창업 소프트웨어’뿐만 아니라 팀 회의, 실습, 동문 네트워킹을 할 수 있는 창업가센터 하드웨어가 완비돼 있었다. 한국 대학생들이 취업 공부를 위해 커피전문점을 전전하며 ‘카공족’(카페에서 공부하는 학생)이란 신조어를 만들어낼 때 코넬대와 MIT 학생들은 고급 카페 같은 창업가센터에서 ‘세상을 뒤집을 혁신’을 밤새워 고민하고 있었다. 창업가 동문 선배들은 후배들에 대한 인턴십 및 멘토링 서비스, 창업센터 건축비나 운영비 기부 등으로 학교의 은혜에 보답했다.


“한국 학생의 돌탑은 돌멩이 위에 다시 돌멩이를 올리는 방식이어서 한번 삐끗하면 와르르 무너지지만 미국 학생 돌탑은 무더기로 넓게 쌓아서 한 번에 무너질 일이 없는 것 같다.” 이렇게 말한 MIT 박사과정 유학생은 “나는 실수를 많이 하는 편이어서 1년에 한 번만 보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안 보고 대학에 가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고 말했다.


미국 수능인 SAT는 1년에 7차례 실시되고 응시 제한도 없다. 초등학생도 볼 수 있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 SAT를 안 볼 이유도, ‘실수하지 않는 게 실력’이란 말이 나올 이유도 없다.


SAT만 봐도 미국은 실수나 실패를 해도 다시 성공(고득점)에 도전할 두 번째, 세 번째 기회가 많은 사회다. 반면 한국은 모든 학생에게 똑같이 최소한의 기회만 줘 ‘참으로 공평한’ 사회다. 창업 생태계의 한국식 해법은 수능과 SAT의 이런 딜레마를 푸는 것부터 엉뚱하게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




위 두 편의 칼럼만 읽어보셔도 ‘이 글을 쓴 저널리스트는 한국의 수능 등 대학입시 제도에 비판적인 관점을 갖고 있구나’라고 짐작하실 겁니다.


그렇습니다. 두 번째 칼럼의 마지막 문단에 들어 있는 문장[SAT만 봐도 미국은 실수나 실패를 해도 다시 성공(고득점)에 도전할 두 번째, 세 번째 기회가 많은 사회다. 반면 한국은 모든 학생에게 똑같이 최소한의 기회만 줘 ‘참으로 공평한’ 사회다.]이 저의 문제의식입니다.


미국 특파원을 마치고 귀국한 뒤 경제부 데스크로 일하던 2017년에 썼던 칼럼에도 같은 문제의식이 종종 담겼습니다.




부동산 시장의 ‘맹자 엄마’들


미국 뉴욕 롱아일랜드에 사는 대만계 미국인 티나(59)는 한국식 표현으로 돼지 엄마. 아들 2명을 모두 아이비리그(미 동부 8대 사립 명문대)에 보냈다. 첫째 며느리도 하버드대 출신. 중고교생을 둔 아시아계 이웃 엄마들이 ‘돼지 새끼처럼’ 그를 잘 따른다. 20년 전 남편은 대만계 은행의 뉴욕지점 책임자였다. 티나 부부가 미국 땅에 눌러앉기로 결심한 건 큰아들 때문이었다. “중학생이었는데요. 미국 온 지 1년 만에 전 과목 A학점을 받으면서 탁월한 학업능력을 보였어요. 대만에 계신 시아버지조차 ‘아이를 위해 너희(티나 부부)가 희생해라’고 하셨죠.” 영주권에 이어 시민권까지 따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명문 공립고교가 있는 좋은 학군에 계속 살기 위해 뉴욕의 미친 월세를 감당해야 했다. “아이들은 너무 좋았죠. 다만 애들 아빠의 삶이 초라해졌어요. 귀국했으면 출세가도를 달릴 분이었는데….” 티나 남편은 다른 현지 은행의 하급 매니저로 재취업해야 했다.


티나의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는 한국에선 흔하디흔하다. 집은 서울 영등포구에 있지만 큰아들을 명문고교로 보내려고 강남구 월세로 갔다가, 2년 만에 둘째 아들을 위해 서초구 월세로 옮긴 한 엄마(48). “장남은 남녀공학을 다녔는데 똑똑한 여학생들 때문에 상대적 불이익이 컸어요. 그래서 둘째는 남자만 있는 고교로 보냈죠.” 외국어고나 서울 강남의 명문고교 등에선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끝날 때마다 10명 넘게 전학을 간다고 한다. 시험을 망친 학생들이 ‘좋은 대학 가기 좋은 고교’를 다시 찾아 이사한다.


한 대기업 임원(49)도 다른 듯 같은 경우. 그는 서울 양천구의 낡은 아파트에 10년 넘게 살고 있다. 친구나 지인이 그 집을 우연히 방문했다가 깜짝 놀랄 정도. 그의 높은 연봉과 아파트의 열악한 환경이 어울리지 않는다. “재수생인 큰아이, 고교생인 둘째가 수년째 다니는 유명 학원이 집에서 가깝다. 그래서 이사 갈 수 없다.”


‘대전’(대치동 전세)에 살고 싶었지만 도저히 전셋집을 구할 수 없어 ‘대월’(대치동 월세)에 산다는 한 시중은행 지점장(52)은 말한다. “대입 수험생 학원 때문에 대치동에 입성했다. 살아 보니 여러 면에서 정말 좋더라. 대전 대월 말고, 집을 구입해 진짜 대치동 주민이 되고 싶다.”


정부의 ‘8·2 부동산대책’은 초강력 규제로 집값을 잡겠다는 의지다. 주요 표적은 당연히 서울 강남. 그러나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주택 구입 시 고려사항’은 교통 환경(52.4%), 주변 경관 쾌적성(16.3%), 지역 발전 가능성·투자 가치(11.9%), 주변 편의시설(10.0%), 학교·학군(5.1%), 가격(3.1%) 순이다. 이 조사에서 취학연령 자녀를 둔 ‘30대 후반’의 경우엔 학교·학군(17.0%)이라는 응답이 가격(2.0%)의 8.5배에 이른다. ‘학교·학군이 좋으면 아파트 값을 약 10% 더 줄 수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기자가 만난 강남 주민들은 한결같이 느긋하다. 좋은 학교 몰려 있는 ‘강남 불패’는 신화가 아닌 현실이란다. 이 또한 지나갈 것이고, 그 뒤에 남는 건 더 올라간 집값일 것이란 학습효과가 널리 퍼져 있단다.


문재인 대통령은 ‘미친 전세, 미친 월세 부담에서 서민들을 해방시킬 카드’가 주머니 속에 많이 있다고 했다. 장하성 대통령정책실장은 “그 주머니를 채운다고 잠을 이루기 어렵다”고도 했다.


그 주머니에 자녀의 미래를 위해 모든 걸 희생하는 한국의 ‘맹자 엄마’ ‘맹자 아빠’들 현실은 얼마나 담겨 있는지 궁금하다.




‘지진 수능’이 던진 숙제


5남매(3남 2녀) 중 넷째인 기자는 1984학번 형(첫째)부터 1995학번 동생(막내)까지 대학입시 현장을 부모와 함께 지켜봤다. 그 기간 시험은 학력고사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으로 바뀌었지만 변하지 않는 한 장면이 있었다. 아들딸이 고사실 안에서 진땀 흘리는 동안, 강추위에 떨며 두 손 모은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 ‘초중고교 12년의 노력을 실수 없이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포항 지역 지진으로 2018학년도 수능이 16일에서 23일로 연기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뒤 온 국민이 ‘기도하는 어머니’ 마음일 것이다. ‘여진 피해 없이, 다른 불상사 없이 연기된 수능이 안전하고 공정하게 치러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문재인 대통령이 “정부의 결정을 흔쾌히 수용하고 동의해 주고, 포항과 그 지역 수험생의 아픔을 함께 감당해 주신” 국민에게 감사의 뜻을 표명했다. 정부의 선의(善意)에 우리 착한 국민들이 화답한 셈이다.


그러나 정부가 이런 착한 장면에 취해 수능의 본질적 구조적 취약성을 외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수능은 60만 명 안팎의 수험생이 전국 고사장에 흩어져 앉아 같은 시험지로 평가받는 구조다. 더군다나 그 기회는 초중고교 학창생활 중 단 1회뿐이다. 지진 같은 자연재해뿐만 아니라 시험지 분실이나 도난 같은 인재(人災)에도 속수무책이다. 아주 특별하고 거대한 리스크(위험)를 안고 있는 셈이다.


비슷한 자연재해가 미국 수능인 SAT 전날 일어났으면 어떻게 됐을까. 해당 지역 SAT는 당연히 취소되거나 연기됐을 것이다. 실제 폭설이나 허리케인 때문에 일부 지역 SAT가 연기된 사례는 적지 않다. 그러나 다른 지역 수험생과의 형평성 시비나 시험의 공정성 문제가 한국처럼 제기되지 않는다. SAT는 1년에 7차례 실시되고, 다른 수능 격인 ACT도 SAT와 다른 날짜에 역시 연 7회 진행된다. 수학능력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시험이 연간 14회나 있는 셈이다. 게다가 미국 대학들은 SAT나 ACT 성적을 다양한 평가 자료 중 하나로 활용할 뿐이다. 아이비리그(미 동부 8대 명문 사립대)의 한 교수는 기자에게 “1600점 만점인 SAT에서 만점과 그보다 50점 낮은 1550점 간에 얼마나 유의미한 차이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각 대학의 목적과 사명에 맞는 잠재력과 자질을 갖춘 학생이 우선적으로 선발된다고 했다. 그래서 SAT 만점자의 아이비리그 탈락은 심심찮게 벌어진다.


미국 입시제도가 절대선일 수 없다. 모든 토대가 다른 한국이 그대로 따를 수도 없다. 다만 한국적 특수성이 반영된 수능을 앞으로도 유지할 수밖에 없다면 그 리스크에 대한 대비와 관리가 철저해야 한다.


글로벌 기업뿐만 아니라 어지간한 규모의 국내 회사에도 ‘업무연속성계획(BCP·Business Continuity Plan)’이 있다. 테러나 자연재해 같은 비상상황 속에서도 업무가 빠르게 재개될 수 있도록 BCP 모의훈련도 실시한다. 기자가 만난 기업 BCP 관계자들은 이렇게 제언한다.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해당 지역 수험생과 보호자를 인근 안전지대의 공공기관 연수원 같은 곳으로 수송해 시험을 볼 수 있게 하는 비상계획이 촘촘히 마련돼야 할 것 같아요.”


“기존 A시험지가 도난당하거나 유출되면 준비해 둔 ‘비상 B시험지’를 각 고사장에 배포할 수 있는 시스템도 필요할 것 같아요.”


연기된 수능이 23일 무사히 진행되길 기도한다. 그리고 아주 특별한 리스크 수능에 그만큼 특별한 BCP가 하루라도 빨리 마련되길 기원한다. 이 큰 숙제를 미루지 않는 착한 정부이길 기대한다.




첫 번째 칼럼([부동산 시장의 ‘맹자 엄마’들])에선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 한국의 교육 이슈도 잘 반영돼 있는지’를 물었고, 두 번째 칼럼([‘지진 수능’이 던진 숙제])은 지진 때문에 수능이 연기되는 걸 보면서 ‘1년 1회 수능의 거대한 리스크’를 지적하고 싶었습니다.


2018년 국제부 소속 데스크일 때는 이른바 ‘S여고 사건’을 계기로 비슷한 관점을 칼럼으로 썼습니다.




‘S여고 사건’이 미국에서 일어났다면


해외 연수로 1년, 특파원으로 3년. 미국 체류 기간은 총 4년이지만 다양한 연령대 아이들이 있어서 미국의 유아원(Pre-K), 유치원, 초중고교를 모두 경험해 봤다. 한국의 교육 단계도 다 겪어봤다. 기자이자 학부모로서 두 나라의 공교육 시스템을 비교하며 살피곤 했다.


서울 강남의 명문 ‘S여고’에서 교사 아빠가 쌍둥이 자녀에게 시험지를 유출한 의혹을 받고 있는 사건을 접하면서 ‘미국이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학부모 졸업생으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는 “두 학생 성적을 조속히 0점 처리하고, 다른 학생들 등수를 조정하라”고 요구한 상태다. 학교 측은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난 뒤에야 징계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태도다.


미국 학교에서도 비리 의혹이나 부정행위가 발생하지만, 이런 갈등이 벌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절대평가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뉴욕 고교를 3년간 다녔던 딸은 “시험 중에 커닝페이퍼를 보거나 심지어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검색을 하는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부정행위를 적발해 F학점을 주는 건 선생님의 몫”이라고 말한다. 설사 그 친구가 부정한 A학점을 받아도 다른 학생의 성적엔 아무 영향을 주지 않는다. 미국 학교에선 과제물 평가점수가 ‘100점 만점에 105점이나 110점’인 경우도 흔했다. 이 역시 절대평가 영향이다. “네가 공부를 더 하고 싶고, 더 할 수 있으면 더 해라. 그만큼 점수를 더 주겠다”는 뜻이다.


일부 교육 전문가는 “한국에서 절대평가를 실시하면 고교들이 명문대 진학률을 높이려고 A학점을 남발하는 등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교육 인프라는 그대로 둔 채 도입한다면 그럴 수 있겠다. 기자가 경험한 미국 공립학교에선 학년이 아닌, 수준에 따른 과목을 수강했다. 고교 9학년(한국의 중3)과 12학년(한국의 고3)이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는 모습이 흔했다. 선행학습이나 영재교육도 사실상 공교육 울타리 안에서 진행됐다. 최우수 학생들은 AP(Advanced Placement·고교생이 대학 수준의 과목을 대학 입학 전에 이수하는 제도) 과목을 여러 개씩 들었다.


미국 고교도 명문대 진학률을 높이려는 욕심이 없을 리 없다. 그러나 A학점을 남발하거나 교사 추천서를 허위로 작성하진 못한다. 적발될 경우 어마어마한 후환이 따르기 때문이다. 딸이 다녔던 고교의 한 교사는 “그런 부정이나 비리가 알려지면 아이비리그(미국 동부의 8대 명문 사립대) 등에서 ‘당신 학교 학생들은 당분간 받기 어렵다’는 메시지를 보내오기도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미국 고교들이 객관적이고 공정한 정량(定量) 정성(定性) 평가로 대학의 신뢰를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이유다. 누가 ‘S여고 사건’의 해결을 위해 가장 노력해야 할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한국 공교육과 대학입시의 현실을 걱정하며 ‘교육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들 한다. 그러나 기자는 점차 ‘사회와 나라가 더 많은 기회를 만들고 다양한 성공 모델을 창출해야 교육도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학교 현장에서 혁신과 창의성을 강조하고 아이들의 잠재력과 상상력을 키우려 노력하더라도, 대학입시의 외나무다리 앞에선 선착순으로 길게 줄을 서야 한다. 음악에 맞춰 춤을 추다가 호각소리가 나면 잽싸게 남보다 빨리 의자를 차지해야 하는 게임이 연상된다. 댄스에만 취해 있다간 ‘앉을 의자’가 사라진다.


온몸이 땀에 젖을 정도로 신나게 춤을 춘 뒤에도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있어야 한다. 외나무다리 대신 ‘기회의 사다리’가 곳곳에 놓여 있어야 한다. 그러면 답답한 학교도 시원한 해답을 저절로 찾을 것이다.




저는 미국에서 SAT를 본 아이도 있고, 한국에서 수능을 본 아이도 있는데요. 학생과 학부모 모두 그 스트레스의 강도 차이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1년에 7회 있던 미국의 SAT는 이번에 못 보면 다음에 또 봐도 되지만, 한국의 수능은 단 한순간의 실수로도 1년을 더 기다려야 하니까요.


올해(2025년) 4월 서울대 교수 2300여 명 전원이 소속돼 있는 ‘서울대 교수회’가 내놓은 교육개혁안 중에 ‘[대입 과정에서 학생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수능 시험을 1년에 3, 4차례 본 뒤 최고 점수나 점수 평균치를 입시에 반영하는 방안]’이 포함돼 있더군요.


저는 찬성합니다.


다만 저의 한국 저널리스트 경험을 토대로 예측해 보면 이 방안이 현실화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이고, 결국 좌절될 가능성이 큽니다. ‘하던 대로 하는 관성’의 저항이 엄청날 테니까요.


제 예측이 기분 좋게 틀렸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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