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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illness Sep 04. 2020

눈처럼 왔다가 눈처럼 사라지기

눈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눈이란 워낙에 쓸쓸한 것이어서 설렘을 잔뜩 안고 왔다가 따뜻한 햇볕이 떠오르면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다. 눈 같은 인생이, 그러니까 아무 계획도 아무 의미도 없는 그런 인생이 뭐가 좋으냐고 묻는다면 나로서는 어서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그냥 '쓸쓸한 것이 좋았다.' 정도로 해두는 게 가장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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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어디에나 있을 수 없다. 어느 정도 추워야 하고, 적당히 쓸쓸해야 하고, 또 그러면서도 어지간히 포근해야 한다. 1년 내내 겨울만 있다고 해서 눈이 평생 있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남극에 있는 빙하도 덜 추운 겨울에 녹고, 심지어는 한겨울에도 시나브로 한다. 눈은 영속할 수 없다. 언제나 봄은 오고, 결국에는 녹아버리고, 그래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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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눈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나에게도 어느 정도 눈 같은 속성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봄 같은, 나아가 여름 같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없다. 그들은 아침이 되면 나를 녹이고, 결국에는 흔적도 남지 않게 쪼개서 사방으로 흩어지게 한다. 어쨌거나 쓸쓸하고 차가운, 적어도 미지근한 사람과 평생을 함께해야 했다. 또 그런 사람에 끌리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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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처럼 세상을 떠다니고 싶다.

아침이 될 때까지 그 자리를 맴돌다가 흔적 없이 흩어지는,

여러 번 흩어졌다가 결국에는 얼어붙어 하늘에서 떨어지,

쓸쓸하면서도 아련하고 그래서 더 아름다운,

지금을 살다가 멎으면 사라지는 눈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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