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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illness Sep 02. 2020

그는 어디로 갔을까

기차 꼴등석과 5성급 호텔, 마지막으로는 망고 한 입.

그는 아마다바드로 가는 기차, 그중에서도 가장 좁은 제너럴 칸 안에 있었습니다. 도착 예정 시간은 오늘 오전 4시였는데, 실제로 도착하는 시간이 오후 4시가 될지, 이튿날 오전 4시가 될지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불규칙하게 들려오는 코골이 소리와 비산식 화장실에서 새어 나오는 지독한 지린내가 새벽녘 기차 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수백, 수천 명이 타 있는 기차 안에서 깨어있는 사람은 오직 그 혼자인 듯합니다. 몇 번을 움찔하던 그는 마음을 편히 먹고 몇 시간째 굽어 있던 허리를 반듯이 펴볼까도 싶었지만, 그러는 순간 그의 자리는 더이상 그의 자리가 아니게 될 것이 너무나 뻔했습니다.


쇠창살 밖으로 펼쳐진 들판에는 노란색을 잔뜩 머금은 햇살이 드리웠습니다. 사진을 찍기에 그런대로 괜찮은, 하지만 찍지 않아도 별로 아쉬움은 남지 않는 매일 두 번씩이나 만나는 그런 빛이었습니다. 그는 카메라를 꺼내 들까 하다가 곧바로 마음을 접었습니다. 건너편 화장실에서 개구쟁이 남자아이가 문을 연 채로 볼일을 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사진을 찍어봐야 그 사진에서는 평생 지린내가 날 것입니다. 그런 지린내 역시 추억이라면 추억이지만, 카메라에는 냄새나는 추억이 이미 많이도 담겨 있습니다. 이 정도면 됐습니다. 지린내도, 지린내 나는 사진도, 아니 사진 그 자체도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기차가 또 한 번 멎어섰습니다. 이번이 열 번 하고도 다섯 번째입니다. 그는 한숨을 내뱉으며 중얼거렸습니다. "아, 비행기를 탈 걸 그랬어.", "아, 비행기를 탈 걸 그랬어.", "아, 비행기를 탈 걸 그랬어."…. 그는 이미 많이 지쳤습니다. 걸을 만큼 걸었고, 굶을 만큼 굶었고, 인도를 볼 만큼 다 봤다고 생각했고, 결국에는 여행을 끝내고 싶었습니다. 그는 어쩌면 아마다바드가 이번 여행의 마지막 도시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라 적당히 볼 것이 있는 도시, 모든 것이 따분해서 적당히 재미없을 것이고, 하나도 끌리지 않아서 미련을 털어내기에도 적당히 알맞은 도시. 그냥 느낌이 그랬던 것이 아니라, 앞뒤를 다 따져봐도 굳이 끝을 내자면 아마다바드가 가장 낫습니다. 바라나시에서 혹은 레에서 혹은 고아에서 끝을 기에는 그 공간이 주는 울림이 너무나 강합니다.


기차가 열 번 하고도 일곱 번째에서 마지막으로 멎어섰습니다. 사람들은 분주하게 내릴 준비를 했고, 어쩌다 보니 그는 그 사이에 끼어 버렸습니다. 온몸으로 타인의 촉감이, 타인의 냄새가 불쾌하게 와 닿았습니다. 하지만 참는 수밖에 없습니. 그렇지 않으면 1시간이 더 지나서야, 몇 번이고 더 멎어서고 나서야 기차역에서 나갈 수 있을 겁니다. 인이 주는 불쾌감을 대여섯 번 느끼고 간신히 나간 역사 밖에는 미세먼지가 차분하게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틈새에서 릭샤왈라와 택시기사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멀리서 그를 알아채고 달려오는 것을 보면 호객꾼들은 가시거리가 조금 더 긴 모양입니다. 아니, 평소보다 짜증이 더 자주 치미는 것을 보니 분명 많이 깁니다.


그는 어젯밤 기차에서 예약해둔 호텔로 곧장 걸었습니다. 지친 마음으로 홧김에 결제한 5성급 호텔은 강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 있어서 5km도 넘게 걸어야 합니다. 평소 같았으면 릭샤를 잡아탔겠지만, 요 며칠간 사람이 주는 스트레스의 극을 느꼈던 그에게는 걷는 고통이 사람과 실랑이하는 고통보다 몇 배는 더 나아 보였습니다. 그는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한 시간을 넘게 걸었습니다. 그러는 중에 걷는 고통에는 사람이 주는 고통이 사이사이 들어차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지만, 그것은 이미 반 이상을 걷고 나서야 깨달은 것이라 다시 릭샤를 잡아탈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호텔의 입구에서 단정한 차림의 경비가 추레한 그를 막아섰습니다. 아마 옷차림, 그을린 피부색, 온몸에서 퍼져 나오는 지린내 때문일 것입니다. 그는 당당히 결제 영수증을 경비원의 얼굴 앞으로 들이밀었습니다. 광활한 철문 사이로 펼쳐진 호텔의 모습은 그의 성난 마음을 가라앉히기 충분했습니다. 잘 정돈된 정원이 그를 반갑게 맞이했고, 한쪽으로는 넓은 수영장이 보였습니다. 서둘러 체크인을 하고 들어간 디럭스 더블룸 안에는 웰컴 프룻 바구니와 웰컴 드링크가 놓여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과일과 음료에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 식욕이 떨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주는 음식도 마다할 정도의 사치를 부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몇 시간이 지나서야 간신히 침대에서 일어났습니다. 멍한 기분으로 둘러본 널찍한 호텔 방은 왜인지 허전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믿을 수 있는 브랜드의 미네랄워터 두 병과 코끝을 간지럽히는 아로마 향, 무엇보다 바닥에 짐을 모두 펼쳐놓아도 편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은 그에게 꽤 어색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간단히 짐을 챙겼습니다. 아무리 지쳤다지만, 새로운 도시의 정겨운 골목을 훔쳐보는 일을 그만둘 수는 없습니다. 카드키를 뽑자 에어컨이 자동으로 꺼졌습니다. 문 앞에 놓인 커다란 전신 거울에는 초라한 그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비쳤습니다. 그는 거울을 본 것이 얼마 만인 지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호텔 11층의 복도는 너무나 한가해서 더욱 허전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가 호텔로 다시 돌아온 시간은 이미 어두워진 오후 9시였습니다. 그는 쓸쓸히 의자에 앉아 다음 날 아마다바드를 떠나는 모든 비행기 티켓을 살폈습니다. 태국도 있고, 오만도 있고, 한 번만 경유하면 바로 한국으로 갈 수도 있었습니다. 가격이야 당연히 비쌌지만, 돈은 더이상 그에게 가장 중요한 무엇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정이 넘는 시간까지 머리를 싸매며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노트북을 덮었습니다. 티켓을 끊었는지, 아니면 마음에 어떤 변화가 일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아침 7시도 안 된 이른 시간, 무거운 호텔 방 문이 '쾅'하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한쪽으로 밀어 두었던 과일 바구니는 텅 비어 있었고, 어제저녁 이미 갈변된 웰컴 드링크 컵은 왜인지 바닥이 드러나 있었습니다. 허전한 복도를 걷는 그의 모습이 어지간히 결연한 것을 보면, 그는 오늘 어디로든 떠날 모양입니다. 그가 호텔 정원에 다다르자 멀끔한 경비원이 무거운 철문을 열어젖혔습니다. 문밖으로 릭샤왈라들의 모습이 더러 보였습니다. 그는 그들을 본 체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걸었습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걸었던 어제 그 길과 같은 길이었습니다. 미세먼지와 매연이 스쳐 지났고, 불쾌한 사람들의 손길을 몇 번이나 뿌리쳤습니다.


그는 마침내 아마다바드 역사 안으로 들어와서는, 자그마한 외국인용 티켓 오피스로 들어갔습니다. 티켓 오피스를 빠져나와 플랫폼을 향해 걷는 그의 손에는 분명 티켓 한 장이 들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티켓이 어디로 가는 티켓인 지 역시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것은 바라나시로 갈 수도, 고아로 갈 수도, 마지막에는 해발 3,000m가 넘는 레로 갈 수도 있습니다. 지린내 나는 제너럴 칸 화장실을 지나는 그의 걸음에는 그가 여행을 처음 시작했을 때 본 듯한 옅은 불빛이 일렁였습니다. 그는 가방을 열고 큼지막한 망고를 꺼내, 그것을 껍질째 크게 한 입 베어 물었습니다. 망고는 어제부터 웰컴 프룻 바구니에 들어있던 바로 그 망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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