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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illness Oct 06. 2020

강물을 보다가 눈물을 흘린 적 있나요?

아름다우면서도 아픈, 슬프면서도 기쁜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커다란 숙박 명부에 이름을 적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사방이 파란 벽으로 둘러싸인 창문 하나 없는 방. 이 방이 내가 두 달 동안 지내야 하는 방이다. 불안한 마음에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좁은 방 곳곳을 살폈다. 그런대로 깨끗한 편이었고, 화장실도 이만하면 됐다. 딱딱한 매트리스에 사지를 쭉 뻗고 누웠다. 아슬아슬하게 천장에 매달린 선풍기가 쌩쌩거리며 돌았다. 왠지 싸한 느낌이 들어서 선풍기와 정면으로 마주 보던 머리를 반대쪽으로 틀었다.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선풍기가 멈췄다가 다시 돌았다. 부실한 문 틈새로 발전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잠깐 정전된 모양이다.


아무런 생기 없이 하루를 그저 살아내던 지난날들이 떠올라서 눈을 감았다. 저 삐거덕거리는 문밖에, 그동안 안고 살았던 질문에 대한 답이 있다. 앞으로도 따분한 삶을 살게 될 것인가, 아니면 애타게 좇았던 바라나시가 무언가를 바꿔놓을 것인가. 엉킨 듯 춤추는 생각들이 마음 한편을 어지러이 헤집었다. 그러는 사이 날카롭게 문틈을 비집고 들어오던 빛그 세기를 조금 잃었다. 아마 오후 6시쯤 됐을 것이다. 곧 있으면 해가 진다. 벌떡 일어나서 형광등 스위치를 올렸다. 푸르뎅뎅한 주광색 불빛이 두어 번 깜빡이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대충 옷을 껴입고 녹슨 문고리를 잡았다. 하지만 손가락에 자꾸 힘이 풀리는 바람에 문을 열지 못했다. 속이 텅 빈 나무로 된 문이었는데, 그까짓 거 걸어나가서 확인만 하면 됐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다시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밖에서는 개들이 영역 싸움을 벌이느라 쉴 새 없이 그르렁거렸다. 도시의 소음이 전혀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수선한 모습이 지금 내 상황과 퍽 비슷해서리라. 아직 남아 있던 여독이 눈꺼풀에 무게를 실었다. 하긴, 일생일대의 염원을 이렇게 피곤한 상태로 맞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맹랑했던 바라나시에서의 첫날밤이 끝났다. 몇 가지 꿈을 꾼 것도 같은데, 색채가 너무 엷어서 기억에 남지는 않았다.




'끼익, 끼익' 거슬리는 고음이 울려 퍼졌다. 분명 들어본 소리였는데 그 장소가 기억나지 않았다. 잠깐 소리가 멎었다가, 이번에는 사방에서 동시에 뒤울렸다. 침낭으로 귀를 틀어막고, 아득히 멀리 있는 기억들을 뒤적였다. 사람의 소리는 아니었고, 내 상식선에선 그런 소리를 내는 기계도 없다. 그렇다면 동물이나 자연이 내는 소리인데…, 순간 머릿속이 번뜩였다. 그것은 원숭이 소리다. 틀림없이 원숭이 소리였다. 원숭이 울음소리 때문에 잠에서 깬 것은 또 처음이다. 사방으로 흩어졌던 혈액이 다시 심장께로 모여들었다. 피곤하거나 찌뿌둥한 느낌 없이 일어난 것이 얼마 만인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아마 중학교 졸업식 후로는 몇 번 없었을 것이다. 고등학교 때는 책상에서 시간을 썩히느라 바빴고, 스무 살이 된 후로는 여행경비를 모으느라 주말도 없이 달렸다. 낯설지만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정리도 안 된 배낭에서 대충 옷 몇 벌을 꺼내 입었다. 현실과의 대면을 더는 늦출 수 없다. 숨을 꾹 참고 문고리를 당겼다. 미지근한 햇빛이 뻥 뚫린 천장을 통해 들어왔다. 신발끈을 고쳐 매고, 경사가 아찔한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1층에 다 와서 카메라를 두고 온 것을 알게 됐지만, 오히려 잘된 일이다. 처음 본 광경에 정신이 팔려 셔터만 누를 바에는, 카메라를 아예 두고 가는 편이 낫다. 지도 앱을 켜고, 가장 가까운 판데이 가트를 향해 걸었다. 하지만 바라나시에서 GPS는 역시나 쓸모가 없었다. 지도 위에서 한참 골목을 걷던 나는 잠시 후 갠지스강 한가운데를 떠다녔고, 어느새 강 건너편으로 넘어갔다가 금방 제자리로 돌아왔다. 휴대전화를 꺼서 다시 가방에 넣었다.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길 찾기도 수차례, 그들은 내가 물을 때마다 각기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 길모퉁이에 크리켓 배트를 껴안은 아이가 보였다. 분명 학교에 있어야 하는 시간인데, 아이는 정처 없이 길바닥을 맴돌았다. 신발도 신지 않은 맨발에는 벌써 굳은살이 깊게 박여있었다. 괜히 울적한 마음이 들어서, 속도를 늦춰 내 한 뼘보다 작은 그 발바닥을 따라 걸었다. 시선을 땅바닥에 고정하고 삼십 분쯤 걸었을 때, 어두컴컴한 골목의 끝이 환한 불빛을 내었다. 새까만 발바닥과 눈이 부시도록 밝은 햇빛이 대조를 이뤄서 내 걸음은 더욱 느려졌다. 몰아치는 바람과 함께 아이가 뛰어가는 바람에, 덩달아 나도 같이 골목을 달렸다. 골목의 끝에 다다라서는 새하얗게 바랜 풍경 때문에 찡그리며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이 채도를 찾았을 때, 견딜 수 없는 감정의 해일이 밀려와서 온몸이 쩌릿해졌다. 왼쪽에서는 시체 타는 연기가 쉼 없이 올라고, 오른쪽에서는 도비왈라들이 빨래하는 소리가 들렸다. 건기인데도 강폭은 무척 넓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서 딱딱한 돌 바닥에 주저앉았다. 라나시라는 인생의 변곡점을 얼마나 애타게 찾아 헤맸던가, 이 순간을 향해 얼마나 빠르게 달려왔던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도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 모순성 때문에 더 아름답고 아련한 도시.' 이게 내 바라나시에 대한 진짜 첫인상이다. 그래서 바라나시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혼돈'이 된다.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하고 양쪽으로 길게 펼쳐진 풍경을 바라봤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뚱이는 저리다 못해 아파 왔다.


발밑으로 공이 날아와서 고개를 숙였다. 공을 손에 들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는, 자그마한 두 손이 내 눈앞에 있었다. 작고 가느다란 손가락 사이로 아까 골목에서 마주쳤던 아이의 얼굴이 보였다. 꼼지락거리며 손짓하는 손바닥 위에 작은 고무공을 올렸다. 아이는 환하게 웃으며 친구들 틈으로 사라졌다. 또 한 번 모순이다. 한쪽에서는 끊임없이 시체를 태우고, 한쪽에서는 아이들이 공놀이를 한다. 알다가도 모를, 아니 어쩌면 바라나시는 나 따위가 감히 알 수 없는 도시일지도 모른다. 아름다우면서도 아픈, 슬프면서도 기쁜 이 도시를 알려고 하지 않기로 했다. 바라나시는 그냥 바라나시로 두기로 했다.


얼마간 시간이 흘렀을 것이다. 여기서 내가 '시간이 흘렀다'라고 적지 않은 것은 그것이 단순한 내 추측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정말 시간이 흘렀는지, 멈췄는지, 아니면 거꾸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3,000년 넘게 이어진 고도시는 무수히 많은 시간 동안 그런 상태로 있었을 것이다. 지나간 시간이 다가올 시간을 따라잡았고, 죽음이 삶을 앞질렀다. 그 역설적인 상황 속에 들어온 나는 몇 번 울었다. 왜 그랬는지는 아직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그냥 강물을 바라보다가 너무 아파서, 그래서 눈물을 흘린 거로 해두는 게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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