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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raw로먹는 여자 Jan 13. 2019

그녀의 이야기에서 나를 발견하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통통했다. 키도 작았다. 늘 앞자리에 앉았고 그녀가 들을 수 있었던 외모에 관한 칭찬은 '귀엽다' 한가지였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가장 충격적으로 기억되는 사건한가지. 초등학교 5학년이나 6학년 때였다. 신체검사 날. 그때에도 통통, 뚱뚱 하다는 거에 대해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신체검사를 앞둔 전날엔 거의 굶다시피 했었다. 하필 그날은 한 번에 키와 몸무게를 동시에 측정할 수 있는 최신기계를 처음으로 신체검사에 사용했다. 친절하게 체중미달, 정상, 체중과다, 경도비만, 중도비만으로 분류까지 해주었다. 나는 경도비만이었다. 전날 아무리 굶었어도 비만이었다. 반 아이들이 모두 들을 수 있게 기계는 소리쳤다.

            

'경도비만입니다'



신체검사 후 담임선생님은 체중미달이 몇 명인지, 정상이 몇 명인지.. 손을 들어보라며 확인하셨다. 내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나와 함께 경도비만이라며 손을 들었던 친구는 없었다. 외롭고 창피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돋는다. 이것은 내 인생 최대 굴욕사건이었다.



그 후 모든 기준은 신체가 되었다. 정상을 바라지 않았다. 깡마른 몸을 원했다. 다리인지 팔인지 구분도 안되는 그 무언가로 거리를 걷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열심히 공부해서 1등도해보고 경시대회에서 상도 타보고 반장도 해보았지만 여전히 마르지 않은.. 뚱뚱한 내가 싫었다. 외모를 극복하기 위해 악착같이 공부했다. 하지만 수능을 망친 후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란 걸 깨달았다. 나는 남들만큼의 성과를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세상의 주인공인줄만 알았던 내가 사실은 1등을 빛내주기 위한 변두리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주목받고 싶었다. 이뻤으면 좋겠고 공부도 잘했으면 좋겠고 인기도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 나는 키도 작고 통통하고 공부를 소름 돋게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때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날씬해지기 위해 미련하게 걷고 또 걸었다. 1시간이 넘는 등, 하교 거리를 걸었다. 정말 배가 고파서 손발이 떨리지 않으면 먹지 않았다. 그랬더니 어느 순간 신기하게 배가 고프지 않았다. 먹지 않아도, 몇 시간씩 걸어도 견딜 수 있었다. 점점 살이 빠졌다. 중, 고등학교 친구들, 가족들은 모두 나를 보고 놀랐다. 나중에는 안쓰럽다고 했다. 하지만 기뻤다. 손목이 한손에 잡혔고 허벅지 사이에 틈이 생겼다. 대학교 시험기간에는 거의 먹지 않고 공부했다. 성적엔 A플러스가 많아졌고 장학금도 받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원래 불규칙적이었던 생리가 언제 쯤 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산부인과에 가서 초음파검사와 호르몬 검사를 했고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뇌하수체기능저하증이라는 것이다. 원인도 알 수 없고 치료법도 없고, 임신하기 힘들다고 하셨다. 의사선생님께서는 결혼할 생각이 있냐고, 있다면 되도록 빨리 해서 불임병원에 가보라고.. 그 당시 내 나이는 21살 정도였고 미래에 결혼을 할지 안할지를 결정하기엔 너무 이른 나이였다. 이제 나는 끝난 것일까.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사는 평범한 삶을 살 순 없는 걸까란 절망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두, 세 달에 한 번씩 산부인과에 가서 검사를 받고 약을 받아먹었다. 갈 때마다 의사선생님께 여쭙고 또 여쭈었다. 치료가능하지 않냐고, 혹시 살이 찌면 괜찮아지는 거냐고. 늘 부정적인 답변을 주셨고 언젠가는 조심스럽게 내게 여자형제가 있냐고 물으셨다. 있다면 되도록 빨리 난자공여라도 받아보지 않겠냐고.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당시엔 대학교1학년 초반부터 사귀었던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말하지 못했다. 자신의 인생 꿈은 아빠가 되어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라며 말하는 그 아이에게 나는 임신할 수 없는 몸이라는 말은 차마 꺼낼 수 없었다. 친한 친구들에게조차 나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 너무 싫었다. 그렇게 나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지닌 채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척 완벽한 척 연기했다. 결국 대학생활 내내 진정으로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 하나 만들지 못한 채 졸업을 했고 7년 넘게 만난 남자친구와는 헤어졌다.



밤새 한숨도 못자는 날들이 많아졌다. 어쩌다 잠이 들었다가도 두 시간 쯤 후에 일어나 다시 잠들지 못했다. 불면증에 좋다는 영양제는 효과를 보지 못했고, 수면제는 부작용만 있을 뿐이었다. 이때부터 저녁에 폭식하는 습관이 생겼다. 잠이 안 오면 저녁 10시든 새벽3시든 무조건 먹었다. 종류는 상관없었다. 밥도 먹었고 냉동실에 얼려둔 떡, 피자, 빵 상관없이 닥치는 대로 먹었다. 닥치는대로 먹고 배가 부르면 잠이 왔고 적어도 두 세시간은 푹 잘 수 있었다. 다음날 퉁퉁 부은 얼굴로 일을 했고 밤새 먹었으니 더부룩한 속 때문에 점심은 거의 못 먹었다. 악순환이었다. 아침저녁으로 운동을 했다. 2시간도 못잔 상태로 새벽 6시에 일어나 헬스장에 갔고 1시간 이상 걷고, 뛰고 난 후 바로 출근을 했다. 10시간 이상을 서서 근무한 후 또 헬스장으로 갔다. 집에는 10시가 넘어야 도착했고 그때부터 아침 6시까지는 먹고 자는 것을 반복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았지만 고칠 수 없었다. 난 평생 이렇게 살아야하는구나 싶었다. 자존감은 바닥상태였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고 용서할 수 없는 모습을 그 누구도 사랑해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더군다나 난 임신도 못하는 몸 아닌가. 자식을 낳을 것이 아니라면 결혼을 하는 의미가 없었고 결혼할 것이 아니라면 더 이상의 만남은 모두에게 시간낭비일 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약국 월차를 쓰고 대학교병원을 찾았다. 예전에 나를 진료해주셨던 교수님은 은퇴를 하신 상태였고, 다른 산부인과 교수님은 나의 상태를 보신 후 우선 정밀검사를 해보자고 하셨다. 최악의 경우, 뇌하수체종양이 의심되니 뇌 MRI를 찍어 보자고 하셨다. MRI 검사는 큰 통 안에서 이루어진다. 텅텅거리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는데 두려움이 엄습했다. 만약 종양이 있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꿈 많던 이미나는 이대로 죽게 되는 것일까. 내가 죽을병에 걸렸단 사실을 부모님께는 어떻게 말씀드려야할까. 갑자기 살고 싶었다. 아니 제대로 멋지게 살아보고 싶단 생각을 했다. 뚱뚱하고 마른 게 뭐라고 내 청춘을 다 뺏겨 버린 건지 후회되었다. 그날 그 통 안에서 참 많이 울었던 것 같다. 다행히 검사결과 종양은 발견되지 않았고 약간의 호르몬불균형과 다낭성 난포증후군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두 세달에 한번 씩 진료보고 지켜보잔 말을 듣고 돌아오는 길, 마치 다시 살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절망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조금씩이라도 바꿔 보자란 마음으로 하루하루 버텨보았다.


33살을 앞둔 지금. 예전에 비하면 살도 많이 쪘고 주름도 늘어났고 피부탄력도 떨어진다. 여전히 마르지도 않았고 매력적인 것도 아니고 나의 전문분야에서 뛰어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달라졌다. 아직도 새벽에 일어나서 폭식하는 습관이 남아 있지만 점점 횟수가 줄어들고 있다. 가끔 피곤할 땐 운동을 하지 않기도 하는데,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 받거나 살이 찔까봐 걱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컴플렉스였던 것들이 나의 발전에 도움을 주는 경우도 많다. 체질적으로 마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이어트나 건강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체형관리사나 식이지도사와 같은 자격증을 땄으며, ‘로푸드’라는 음식을 알게 되어 배우기 위해 돈과 시간을 투자했다. 살을 빼기 위해 억지로 했던 운동덕분에, 강철체력을 얻었고 마라톤에 도전을 할 수 있었다. 매일 하던 운동에 흥미를 갖게 되어 스피닝 강사 자격증에도 도전 중이다. 내가 만약 완벽했더라면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한 노력이 오히려 다른 강점을 만들어주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깨달음은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인정하는 법이다. 더 이상 바뀌지 않는 것들로 힘들어하지 않는다. 남과의 끝없는 비교로 나를 깎아내리지 않으려고 한다.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는 것을 안다. 때때로 다시 예전의 악습관이 반복되기도 할테고, 그런 내 모습에 또다시 실망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이런 절망적인 늪에서 나의 청춘을 보내기는 싫다. 나를 사랑해주는 가족이 있고, 내가 이루고자하는 꿈이 있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예전의 나와 같이 자신의 모습으로 인해 괴로워하며 남과의 끝없는 비교를 하고 있는 누군가를 돕고 싶다

진심으로 그들에게 공감하고 그들을 위로해주고 싶다

어디선가 나의 위로를 필요로 하고 있을 그 누군가를 위해 오늘도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본다

.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나도 나의 과거가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뚱뚱해서 놀림받았던 어린시절...

욕심많던 아이

아픈 아이

폭식하던 다 큰아이...

다시 내안의 안쓰러움 가득한 순간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내가 그녀를 토닥여주는 것처럼 나도 나를 안아주고 싶었다.




위의 이야기는 개인블로그에도 함께 기재되어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mongsil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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