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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raw로먹는 여자 Jan 29. 2019

열아홉에 만난 크론병

생명의 삶을 꿈꾸다.

- 로푸드(채식요리) 수강생 에세이에서 나를 만나다.

 이야기는 채식요리를 가르치고 함께 읽고 글을 쓰면서 나누었던 수강생 선생님의 동의를 얻어 기록한 에세이 임을 미리 알립니다


열아홉에 만난 크론병

2019년 새해 첫날, 산책을 하려고 집을 나섰다. 찬바람과 함께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집으로 들어갈까 망설여졌지만 마음을 다잡고 다시 힘차게 걸었다. 지난 1년 동안 걷고 또 걸었다. 걷기는 병의 회복을 위한 것이기도 했고, 내가 걸어가야 할 삶의 방향과 모습을 마음속에 그려나가는 시간이기도 했다.


병이 찾아온 것은 열아홉 살의 가을이었다. 수능을 석 달 정도 앞두고 몸에 이상신호가 왔다. 장염증세로 시작된 병의 징후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악화되었다. 장출혈과 설사, 고열, 구토가 멎지 않았다. 동네 내과에서 종합병원 응급실, 그리고 대학병원으로 전원을 하면서 내 몸의 생명력은 바닥난 상태였다. 한 달이 넘도록 금식치료를 받았고, 결국 자가면역 질환의 하나인 ‘궤양성 대장염’이라는 병을 진단받았다. 그리고 몇 년 후에 ‘크론병’이라는 이름으로 재진단을 받게 되었다. 


첫 발병을 하면서 스테로이드 주사 투여로 간신히 출혈이 멈추었고, 퇴원 후에 가까스로 수능을 치렀다. 대학에 입학하였지만 희귀성 난치병을 갖고 살아갈 날들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에는 약물치료로 관해상태가 잘 유지되어서 다행히 학교생활을 잘 이어나갈 수 있었다.


문제는 졸업 후부터였다. 임용시험을 치르고, 발령을 받자마자 장내 출혈이 다시 시작되었다. 약을 먹으며 간신히 일을 했지만 그 해 가을에 응급실을 가게 되었고, 한 달 동안 입원 치료를 받았다. 퇴원 후 관해상태가 유지되다가 1년 후 병은 다시 재발하였다. 이번에는 스테로이드 치료 후에도 관해 상태로 진입되지가 않았다. 주치의 선생님은 면역억제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하셨고, 스테로이드에 내성이 생긴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병이 이대로 진행된다면 대장을 절제하는 수술을 할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그 날 집으로 돌아오며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병원에서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며 펑펑 울었다. 서울에서 청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수많은 생각을 했다. 병을 가진 몸으로 살아갈 삶에 대해서, 병이 진행되었을 경우의 비극적인 미래에 대해.


그 즈음 나는 결심을 했다. 병원에 의지하지 않고 병을 치료해야겠다고 말이다. 스물다섯의 겨울을 넘기며 수많은 자료들을 찾았다. 당시 녹색평론을 구독하고 있었던 터라 현대의학이 가진 한계와 문제에 대해 평소 관심이 컸다. 섭생과 대체의학에 대한 책들을 읽었다. 자연치유를 추구하는 선생님들을 만나보기도 했다. 그렇게 다시 십년의 시간이 흘렀다.



순례의 길

2008년부터 2018년까지 크론병과 함께 나는 순례의 길을 걸었던 것 같다. 그 시작은 침과 뜸을 배운 일이었다. 계절의 흐름에 따른 몸의 변화를 공부하는 것이 흥미로웠고, 병이 찾아온 원인을 하나씩 찾아나갔다. 경락과 혈자리, 음양과 육기론에 대한 공부를 해 나가며 동양 의학적인 사유를 조금씩 익혀나갔다.


또 테라피요가 선생님과 인연이 닿아 나의 신체에 대해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 몸을 사용하는 방법을 배워나가면서 내면 깊은 곳의 나와 만나기도 했다. 요가를 시작한지 두 달 여 만에 처음으로 정상적인 월경 주기를 되찾았고, 침뜸 치료에서 겪었던 한계를 요가를 통해 보완할 수 있었다. 


침과 뜸은 타인에게 의존하는 치료법이기 때문에 지속되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다. 또한 위기의 순간을 어느 정도 넘기고 나면 스스로 치유하는 힘을 길러나가야 한다. 요가 수련도 좋은 스승을 만나면 더 효과가 크기는 하지만 움직이는 것은 스스로의 몫이기에 수련을 하다보면 내면의 힘이 키워진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3년 동안 약물치료 없이 관해 상태가 유지되었다. 2011년 침뜸 치료를 받으며 약물을 최종적으로 끊었는데, 그 과정이 정말로 고통스러웠다. 팔다리에 부종이 생기고, 몸 곳곳에서 어혈이 밖으로 터져 나왔다. 약물중단에 따른 저항이 너무 컸다. 관해를 유지하는 기간 중에도 팔다리에 부종이 수시로 생기곤 했는데, 요가 수련을 하며 힘든 시기를 잘 이겨냈다.


2015년 초에는 줄기세포 치료를 받았고, 희망적인 상황이 온 것만 같았다. 침뜸과 요가를 통해 자연 관해를 유지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기도 했다. 병휴직을 마치고 학교로 복직하여 학생들과 생활하는 시간이 꿈만 같았다. 통증 없이 잠을 자고, 일상적인 하루를 보낸다는 것이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그러나 그 기쁨이 오래가지 않았고, 결국 그 해 가을에 병이 재발하였다. 그동안의 노력과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모두 무너졌다. 재발했을 때의 염증은 이전보다 더 심각하게 진행되었다. 결국 병원에서 권유하는 대로 면역억제제 주사 치료를 받기로 하였다. 가장 높은 단계의 치료법이었다. 다양한 사례를 찾아보니 몇 년 안에 내성이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치료였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병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나에게 남아있지 않았다. 


면역억제제 주사 투여 덕분에 염증은 가라앉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치료를 계속 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점점 커져갔다. 내가 알고 있는 것과 현재 치료법에 대한 갈등이 깊어갔다. 다양한 난치병에 치유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요료법을 시행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요료법의 효과는 6개월 이상 지속되지 않았다. 2017년 가을에 온몸에 염증이 퍼져나가면서 크론병에 대해 나는 완전히 포기한 상태가 되었다. 치료법에 대한 의문을 가질 여력도 없었다. 현재의 통증과 염증을 해결해야만 했다. 병원에서 안내하는 대로 약을 먹고, 주사 치료를 받았다.


 

 생명의 삶을 꿈꾸다

2018년은 다시 삶의 활력을 되찾는 한 해였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병원 치료를 받고 있을 무렵, 우연히 생식과 식이지도를 해 주시는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체질을 분석해주셨고, 그동안의 투병 과정에 대해 대화 나누며 병이 온 원인을 짚어 나가주셨다. 생식은 그동안 접해보지 못한 분야여서 처음에는 확신을 갖지 못했지만 하루가 다르게 건강이 회복되었다. 


생식을 먹으며 면역억제제를 중단하는 과정에서도 저항이 크지 않았다. 7년 전처럼 몸에 부종이 찾아오지도 않았고, 통증도 전혀 없었다. 5월 초에 생식 식이를 시작하였는데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정상적인 신체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양방의 어떤 치료도 받고 있지 않다. 12월 초의 혈액 검사에서도 헤로글로빈 수치가 13.1이 나왔다. 이전에는 항상 7-8의 수치로 만성빈혈이었는데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산소를 몸속에 갖게 된 것이다. 대장의 염증은 아직 조금 남아있는 느낌이지만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먹는 것을 통해 병이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은 간단한 원리였지만 내 몸에 나타나는 변화는 믿을 수 없이 놀라웠다. 면역억제제 치료의 부작용으로 얼굴에 피부트러블이 심했는데 생식치료를 받으며 몸에 쌓인 독성 물질들이 폭발적으로 피부를 통해 배출되었다. 5개월 가까이 얼굴에 여드름이 멈추지 않고 돋아났다.


생식지도를 해주시는 선생님께서는 먹는 방법 이외에도 생활습관과 운동에 대한 부분도 지도해주셨다. 한 달에 한 번씩 생식원을 방문하며 맥으로 몸 상태를 확인하였고, 조금씩 나아지는 컨디션을 스스로 체감할 수 있다. 선생님은 이 세상에서 잘못된 일은 반드시 되돌리는 방법이 있다고 늘 말씀하셨다. 몸에 찾아온 병을 낫게 방법도 반드시 있으니 함께 찾아나가 보자고도 말씀하셨다. 그리고 크론병을 잘 이겨내서 내가 만나는 학생들에게 또 몸이 아픈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셨다. 그것을 내 삶의 미션으로 지니며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모든 것을 포기한 시간도 있었지만 이제는 희망을 갖고 씩씩하게 걸어 나가보려고 한다. 또 오랫동안 아팠던 만큼 긴 순례의 시간을 의미 있게 만들어보고 싶은 포부도 있다. 크론병과 함께 보낸 시간들을 글로 잘 정리해서 다른 환우들과 나누고 싶다. 병을 극복하는 방법과 몸을 이해하며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서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


살아가는 일은 ‘살아있음’이라는 것을 요즘 절실히 깨닫고 있다. 그리고 나의 생명을 살리는 일은, 다른 사람을 살리려는 마음과 함께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생명의 원리는 결국 나와 대자연과의 관계, 나와 수많은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먹는 일, 몸을 움직이는 것, 마음을 사용하는 일, 사람들과의 관계맺음, 자연과의 만남 등의 모든 구체적인 삶 안에서 생명력 충만한 존재로 거듭나고 싶다. 그것이 내가 꿈꾸는 ‘생명의 삶’이다. 사랑과 기쁨 안에서 생명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려고 한다.   



한달 동안 함께 공부하면서 늘 밝고 명랑하던 모습이 기억에 않이 남는 선생님.

에세이 시간 묵직한 글이 가슴을 먹먹하게 하였습니다. 

긴 시간 혼자 애셨을 선생님이 떠올랐어요

19살 부터 시작된 힘들고 외로웠고 억울했었을껀데도 불구하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삶을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끌고 나간 모습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차분하게 잔잔하게 에세이를 읽어주셨던 시간 잊지 않을께요 이야기 나누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우리가 함께 만들고 먹고 공감하면 보냈던 흔적의 시간들...


위의 내용은

https://blog.naver.com/mongsil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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