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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raw로먹는 여자 Apr 12. 2019

나는 육체 노동자인 줄 알았지만 감정 노동자이기도 하다

가르치는 사람의 겸손과 배우는 사람의 예의


<일이 생겨서 이번에 수강 못하게 되었습니다, 환불해주세요.>


일치감치 마감된 인기 수업일 경우, 이 사람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게 기회가 돌아가기엔 수업일정이 가까워져 있고 다시 자리가 생겼다고 연락을 드려도 이미 일정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본인의 피치 못한 사정에 대한 이해를 바라는 미안함도 없는 단호한 문자에 나는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네, 환불해 드리겠습니다. 다음부터는 신중한 선택 부탁드리겠습니다>


“신중한 선택”이라는 문장을 굳이 붙여서 내 마음을 달랬다. 그랬더니 상대방은 살다 살다 환불해달라고 했다고 이렇게 뭐라고 하는 경우는 처음이다라며 불쾌한 감정을 여과 없이 다시 나에게 메시지로 돌아왔다.


나는 내가 보낸 문자를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보았다. ‘내가 뭐라고 했지? 이렇게 화낼 일인가? 어이없다.’며 내 본심을 숨기며 상대방의 예의 없음이 더 화가 났다.
 
 
또, 하루는 수업 전날에 감기 때문에 수업을 들을 수 없다고 환불해 달라고 문자가 왔다. 전에 몇 번이고 이런 일이 있어서 우리는 곤란한 상황이 많았다 미리 계량해 놓은 재료는 물론 그것을 준비한 노동 시간도 그리고 그 사람 때문에 또 오고 싶어도 신청 못한 사람들... 그래서 블로그에 수업을 공지할 때 꼭 환불 규정을 기재하려 노력한다( 대부분 깜빡하지만 )


그 수업은 하루 전 절대 취소 및 환불 불가라는 글이 있는 수업이었고 나는 그것을 확인한 후 어렵다고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알겠다는 답장이 왔고 나는 그래도 그 사람의 사정이 좀 부득이한 거 같아 다른 날로 수업을 옮겨주려는 문자를 보내는 찰나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그분의 남편이다. < 사람이 아픈데... 독감이 걸렸는데.. 어쩌고 저쩌고 ,...> 황당한 마음에 대충 전화를 끊고 다시 그분에게 전화를 하니 받지를 않았다. 고작 수업 취소여부를 남편에게 까지 부탁하여 해결해야 하는 그분의 심정을 이해하려 애 섰지만 아침부터 이런 일로 에너지를  써야 하는 것이 서글펐다. 바로 환불을 해드렸고 그분의 남편과도 잘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나는 육체노동자인 줄만 알았는데 감정 노동자이기도 하다.
 
늘 이런 식으로 감정이 소모되진 않는다. 어떤 수강생들은 자신의 그 부득이한 사정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며 꼭 듣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음을 예의 있게 설명하며 미안해한다. 사람은 내일을 알 수 없는 나날을 보내는 불안전한 존재들임을 알고 있기게 그렇게 조금이라도 정성을 보여주는 분들이 있으면 오히려 걱정 마시라고 괜찮다며 쿨하게 취소 안내를 드린다. 어차피 방침은 때에 따라 변하고 언제든지 수정된다. 우리는 얽기고 섥기면서 살아가고 어떤 시공간에서 만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공방을 운영하다 보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한 사람 한 사람 소중한 시간과 돈을 들여서 많은 곳 중에 우리를 선택해준 감사한 분들이다. 그 마음에 보답하기에 최선을 다하려 노력한다. 우리는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지만, 오시는 분들은 처음이고 새로운 정보이고 열정이 가득하다. 그 기대에 부합하려고 초심을 잃지 않으려 애쓰고 노력한다.


그렇지만 우리도 실수하고 나태해지고 갈길을 헤매기도 한다. 그런 모습이 불편할 수도 있고 비판받을 수 있다.

다만, 수상생분들 모두 살아온 지역과 환경,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 역시 하나하나 세심하게 맞춰드리기  힘든 부분도 명백히 있다. 이렇게 나이, 성별, 직업, 목적 모두 다른 사람들과 처음으로 만나서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며 정보도 전달하고 요리도 알려드려야 하는 시간은 육체보다 정신적인 노동이 훨씬 더 쓰이기 마련이다.
 
이것도 아이러니인 것이 너무 잘해드려야 한다는 부담에 짓눌리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인간적인 면모가 사라지고 기계적인 생글거림과 대응으로  오히려 진정한 소통과 친밀감을 느끼기 어렵다. 또, 마음이 느슨해지면 상대방의 속마음을 모른 채 너무 우리끼리 신나서 노는 거 같아 보여 수강생이 불쾌할 수도 있다. 이는 그날 수강생 선생님들과 우리들의 궁합에 따라 그 시간의 공기의 흐름이 달라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좋아하는 작가 은유 <다가오는 말들> 중...


“저 오늘 안 오셔서 연락드렸어요.”
“네? 지난주에 수강 취소하고 환불받았는데요.”
예기치 못한 답변에 당황한 나는 전달을 못 받았다며 얼버무리고 끊었다. 문자로 남길 걸 괜히 전화했나, 불편한 상황을 만든 나 자신을 책망했다.
통신사 해지 방지팀에서 일하다가 자살한 현장실습생이 떠올랐다. 취소, 환불이란 말들이 귓속으로 여과 없이 파고드는 따가운 경험 나는 20초 정도의 짧은 통화였는데도 가슴에서 휑한 무엇이 자꾸 올라왔다. 만약 그게 온종일 해야 하는 일이라면, 그 사람의 삶은 어떻게 될까?
 
“나는 내 상처의 수만큼 돈을 번다.” 베이고 데는 상처만 뜻하는 게 아니다. 짜증, 분노, 무시 같은 것도 독처럼 쌓여서 영혼을 부식시킨다,
 
 
깨알 홍보! 은유책!



오늘도 수업이 일치감치 마감된 강좌인데 문자가 온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수강을 진행하지 못할 것 같아 메시지 남겨드려요 :)”
 
수업 전 직접 상담까지 왔고 10만 원을 미리 선금으로 입금한 분인데 이렇게 웃음 아이콘까지 보내며 쉽게 이야기한다. 은유처럼 가슴이 휑한 무엇이 자꾸 올라왔다.
환불해주겠는 말과 계좌번호가 오고 갔고, 환불규정을 미리 말씀 못 드린 우리 실수가 있었고 다음부터는

 (신중한 선택 ) 부탁드릴게요 하고 한마디 덧붙였다.


깜짝 놀랄 답장이 왔다.  


(그렇다면 환불 안 주셔서 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신중한 선택은 맞았지만 급한 사정으로 지역을 아예 벗어나 이사를 가는 상황이 생겼어요.)
 
갑자기 반대로 내가 너무 미안해졌다. 나도 바로 답장을 보냈다.


(저희가 사정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 간단한 메시지로 취소하셔서 오해가 생긴 거 같아요 이사 가는 사정은 정말 급하죠. 기회가 되면 다음에 뵙겠습니다, 다행히 대기자가 있네요( 없었다 ) 감사합니다. ^^)
 
(앞으로 신중한 선택 부탁드린다)

라는 말은 이제부터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이 문장은 수강생을 모집해야 하는 사람의 입장으로 소심한 복수였음을 인정한다. 다음부터 신중한 선택을 하라는 말은 신중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내 수업을 하려 했고, 앞으로 신중하게 생각하고 살아달라는 상대방에 대한 무례이고 폭력적인 말이었다.
 
 음식을 매개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하고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고 연대하는 것이 쉽지 않다. 우리처럼 공방을 운영하고 카페를 하고 감정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너머의 삶의 면모를 바라봐 주었으면 하는 간절란 소망으로 나 또한 문장으로 소심한 복수나 하는 치졸한 사람이 아니라 너머를 보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이 글을 보고 어떤 이들은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누구나 어떤 위치에서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르치는 사람의 겸손과 배우는 사람의 예의는 화폐를 너머 필요한 기본 덕목이 아닐까?.


좀 더 당당하고 솔직하게 우리 스튜디오와 블로그를 위해 말하고 싶다

그리고
뽁. 쏭. 지애. 성은을 위해... 그리고 인도 소녀 민송을 위해...




이글은 개인블로그에도 같이 업로드 됩니다

http://rawfoodfar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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