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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raw로먹는 여자 Jan 11. 2019

중년아짐의 과일과 함께 자라는 꿈

날로 먹다가 만나게 소중한 인연 1.

로푸드 (채식요리)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살면서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내가 알려주는 것인지 배우는 것인지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30대인 내가 50대가 막 시작되는 수강생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면  다시 로푸드 (채식)대해 헤어져갔던 순간. 믿음이 흔들리는 순간. 그리고 이 길이 확실하다는 믿음까지 다시 내 서사가 정리된다. 오늘은 늘 소녀같이 화사하고 다부진 수강생 선생님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의 채식요리 시간이 더 풍요로웠음을 전하려한다.





  내 나이 쉰. 꽃다운 이팔청춘도 아니면서 버젓이 나이를 앞세우는 뻔뻔함은 분명 늙었다는 반증이다. 동시에 건강이 최대 화두인 나이임을 밝힌다. 돌이켜 보면 난 참 건강에 대한 관심도 많았고 투자도 많이 했고, 지금도 그렇다.

  첫 애를 임신하고는 아이가 아토피에 걸리게 해선 안 된다는 책임감으로 자연건강 활동가의 제안대로 태교와 육아를 했다. 마흔에 늦둥이를 갖고는 10달 내내 단무도 수련을 거르지 않았다. 이 뿐인가. 헬스 요가 스키 등산 근력운동 등 시시때때 운동은 물론 아로마테라피, 보이차, 종초, 천연발효효소, 알칼리수까지… 좋다는 건 다 챙겼다. 

  왜 그랬을까? 
  대학기자로 시작 직업 기자로 활동했던 20여 년간, 그러니까 회사를 그만둔 10년 전까지 참 술을 많이 마셨다. 지금은 어떤지 몰라도 취재원과의 관계에서 정보를 나누고 빡빡하고 골치 아픈 시스템에서 동료들과 어울려 스트레스 푸는데 술 만한 게 없었다. 난 참 술을 좋아했다. “세상 쓴 물은 다 좋아”라고 허우대를 떨면서. 돌이켜 보면 사람을 좋아했고 술은 그저 매개였을 뿐인데, 그 시절 주종을 바꿔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퇴사 후 아로마테라피를 통해 그 좋아하던 술과 거리를 둘 수 있게 되기 전까진….

  술과 스트레스, 즉 나쁜 것을 즐기기도 하지만 몸이 덜 시달리도록, 나름 노력한다는 몸부림이었을까? 본인의 암 투병 경험을 ‘아픈 몸을 살다’ 책에 담백하게 담은 저자 아서 프랭크의 표현을 빌자면 ‘이렇게’ 살지 않고 ‘저렇게’ 살면 질환에 걸릴 위험이 줄어들 거라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노력하는데 내게 병이 오겠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난 절대 안 아플 꺼야.’ 일정 정도 오만에 갇혀 있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정신 몸 어느 쪽도 고통 받지 않겠다고 두터운 방어막을 치고 싶었던 게다.


  차츰 늙어가면서 알게 되고 인정하게 됐다.
누구도 질병 죽음의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


아서 프랭크의 책은 그 지혜를 배우고 마음 다지는 기회가 됐다. 그렇다 하라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노력을 멈출 수 없는 노릇 아닌가?


  둘째가 유치원에 다닐 즈음 몸이 근질거렸다. 나란 이는 늘 일을 해야 하는 체질(?)이다. 회사 그만두고 덜컥 둘째가 생기지 않았더라면 뭔 일이든 시작했을 게다. 다시 빡빡한 신문사로 돌아가고 싶진 않았고 뭘 할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남편의 일이 눈에 들어왔다. 컴퓨터 회사에서 마케팅 하다 퇴직하고 자기 브랜드의 채소과일 가게를 창업한 남편은 참 성실하고 정직하게 장사했다. 맛있고 건강한 먹을거리만 다룬다는 철학은 13년 차 되는 지금껏 흔들림이 없다. 그것이 고객에게 어필해 이곳에서 핫 플레이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난 참 과일을 좋아한다. 



어릴 적 늘 챙겨주셨던 엄마 덕이 컸고 신혼 땐 과일쇼핑에 가장 많은 지출을 할 정도. 남편이 매장을 하면서부턴 가까이 있어서 더 무심했는지도 모르겠다. 건강 챙긴다며 늘 밖으로 눈을 돌렸지, 정작 내 것의 가치는 따져보지 않았다. 지난해 이대 평생교육원에서 디톡스주스 전문가 과정을 공부할 때 소개받은 하비 다이아몬드의 ‘다이어트불변의 법칙’ 책을 읽으면서 무릎을 쳤다. 가장 좋은 것을 갖고도 장님 행세를 하고 있었구나 싶었다.


  효과가 궁금해 5일간 주스클렌즈를 해 보았다. 무겁던 아침이 개운해졌다. 4킬로가 빠지고 피부 톤이 맑아졌다. 주변 사람들도 알은 체 할 정도였다. 그때부터 아침엔 늘 주스 스무디, 과일을 챙겼다. 하지만 점심 저녁 일반식을 하면서 자꾸 체하고 서서히 체중은 돌아왔다.

  중년 아짐이 2, 30대 꽃청춘처럼 S라인을 바라는 게 아니다. 바디 쉐이프에 관심 갖던 그 나이, 술 잘 마시기 위해 런닝머신에 올랐던 내가 아니던가? 열심히 즐겁게 살아온 인생의 독소가 어쩌다 중부지방에 쌓였는데, 이것을 떨궈내고 좀더 건강해지고 싶다는 것이 하나. 여기에 남편이 지금껏 일궈놓은 텃밭을 기반으로, 과일 채소로써 건강해지는 지혜를 고객들과 공유할 수 있는 포스트 하나 갖고 싶다는 소망 하나 추가. 이렇게 늦깍이로 로푸드 공부를 시작했다.

  로푸드 수업이 있는 월요일은 설렘 그 자체다. 이쁜 것이 맛까지 좋으니 어찌 아니 기쁠 수…!! 수업 끝나고 성찬이 차려지면 빼놓을 수 없는 포토타임. 함께 하면서 나는 꿈을 꾸었다. 언젠가는 지인들과 이처럼 멋진 로푸드 연회를 열 테야. 그리고 또 언젠가는 고객들이 편안하게 찾을 수 있는 로푸드 명소를 내 손으로 일굴 테야.

  월요일은 일주일 중 가장 컨디션이 좋은 날이기도 했다. 돌아와서도 웬만하면 과일을 먹고 저녁에만 화식하는 걸로 차츰 식생활을 바꾸고 있다. 실습메뉴 싸 들고 온 엄마의 설렘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초콜릿류만 냉큼 집어먹고 딴 음식들엔 영 냉소적이다. 달고 자극적인 입맛에 길들여진 요즘 아이들에게 쉽지 않은 선택임을 인정한다. 내 아이들이 이런데 오랫동안 화식만이 정답으로 알고 사는 우리네 식생활에서 로푸드가 자리잡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까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와 내 가족을 위한 첫 걸음을 뗐고, 나 같은 이들이 한둘씩 모이다 보면 함께 건강한 식문화로써 로푸드가 자리잡을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녀는 벌써 꿈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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