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들이 더 선명해진다.
"아, 진짜 회계사님도 이거는 너무 하기 싫지 않으세요?"
퇴사를 앞두고, 회계사님과 면담 아닌 면담을 하고 있었다. 이제 이틀 뒤면, 회사를 떠날 것이기에 나는 주접스럽게 속마음을 내비쳤다. 나는 정말이지 그 일이 하기 싫어서 아침마다 회사에 가기 싫을 정도였다. 그리고, 분명 회계사님도 이 일을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제일 귀찮고 손은 많이 가는데, 제일 돈이 안 되는 일이라고 중얼거리던 것을 들었기 때문에, 나는 어쩌면 마음 편하게 그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회계사님은 내 말을 듣더니 몸을 일으켜 쫙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야, 나도 귀찮아. 너무 싫어. 근데 어떡하냐. 회사 일이 하고 싶은 것만 할 수도 없고."
헉. 그.. 그러네요. 그렇죠.. 고개를 연신 끄덕이다 회의실에서 나왔다. 사회생활 5년 차인데도, 나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하기 싫은 일이 있으면 미루고 미루다 막바지에 끝내는 그런 사람, 나를 너무 믿는 사람,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는 핑계로 업무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 퇴사만 하면 무엇이든 해보겠다고 떠벌리고 다녔지만, 사실 자신이 없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할 수 없는 일을 지워 나가다 보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보이기 시작한다.
퇴사를 하고, 아침마다 동네 도서관으로 향했다. 가족들에게는 퇴사를 했다는 사실을 숨겼기에, 아침마다 출근하는 척 도서관 열람실에 앉았다. 아침부터 이게 웬 고생이냐, 싶었지만 이미 무언가에 열중인 사람들을 볼 때면 그런 마음도 쏙 하고 들어갔다. 나도 1년 전에는 공무원 준비를 하려고 이곳에 출근을 했었지. 하지만 그 길은 나와 맞지 않음을 알고, 깔끔하게 포기했다. 그래서 미련도 없었다. 그런데, 수험서를 펼치고 앉은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그들이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저 사람들은 그래도 목표가 있고,
하고 싶은 게 있는 건데.."
나이 서른. 아직 젊다고 생각했다. 아니 어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엇이든 새로 시작할 수 있다고 자만했다.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싶고, 어떤 일은 할 수 없는지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이런 상태에서 이직을 준비하는 짓은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부끄럽지만 서른이라는 나이에 처음으로 내게 물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또 하기 싫은 일이 무엇이냐고. 개미 소리도 들리지 않는 조용한 열람실 구석에 앉아 나는 오래도록 생각했다.
지하철 1시간 걸리는 회사는 못 가겠어. 그곳이 강남이라면 더더욱. 그리고 회계일은 정말 안 맞아.
회계일만 아니면 무엇이든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그것도 많이. 친구들과 독립출판물을 만들어 (글이 아닌 문답형 책) 펀딩에 성공한 경험 덕인지, 나는 더더욱 출판과 책에 관심이 많아졌다. 혹은 가만히 앉아서 자료를 입력하는 일이라던가, 마케팅에도 관심이 있었다. 이렇게 하고 싶은 일이 있었으면서 왜 헛물을 켜고 있던 것인가!
그동안 하기 싫은 일을, 그럼에도 해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조금이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그 이후로 몇 번의 회계 업무로 취업을 했다가 모두 일주일도 채우지 못한 채 도망쳤다. 그 후로 나는 5년간의 회계 경력을 버렸다. 다시 나의 이력서는 백지상태가 됐지만, 슬슬 내 인생이 재밌어지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때부터였다.
일단 5년의 경력은 보험 상태로 두고, 나는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 나섰다. 회계만 아니면 무엇이든 해보겠다는 마음, 이력서 지원은 돈 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망설이지 말자는 마음, 돈이 얼마 안 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는 각오를 가지고 성인판 키자니아의 입장권을 끊었다.
그곳에서 나는 몇 개의 새로운 일을 만났다. 운 좋게 구한 유튜브 콘티 업무는 내게 고정적인 수입을 가져다주었는데, 이 과정에서 대표님에게 흥미로운 제안을 받았다. 대표님은 내가 입사 전 반년 동안 19금 썰 작가 활동을 한 것을 기억하고 있었고, 썰 위주의 신생 채널의 기획을 제안해주신 것이다. 콘티 업무에 기획 업무를 추가로 하게 된다면 따라올 돈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났지만, 덥석 그 제안을 물 수 없었다.
19금 썰을 작성할 때, 나는 청정지역 1 급수 물 위에 뛰어노는 물고기처럼 거침없이 글을 휘갈겼지만, 반년 정도 되니 나의 머릿속은 온갖 치정과, 배신, 복수의 폐수로 오염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만두었던 일인데, 내가 다시 그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루를 내리 고민하다 결국 제안을 거절했다.
그 후로, 나는 콘티 업무에만 매진했다. 때로는 주말에도 자발적으로 일했다. 내가 잘하는 일을 하니 즐겁기까지 했다. 5년 동안의 경험으로 보았을 때, 나는 썩 책임감 있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이 일을 할 때의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더 잘하고 싶고, 더 능력을 인정받고 싶어지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높은 만족을 느끼며 일하던 도중, 어느 날 문제가 터졌다. 한 채널이 말썽이었다. 연예계의 이슈를 모아 정리해주는 이슈 채널. 하루하루 새로운 이슈가 터질 때마다 내 눈알이 터졌다. 유튜브는 이슈를 선점하는 것이 중요했기에, 빠르게 콘티를 짜야했는데 그 과정이 쉽지 않았다.
특히 올해 초, 배구 왕따 사건을 계기로 연예계 왕따 이슈가 터졌을 때 내 속도 터져버렸다.
한 달가량, 왕따 가해자들의 가장 표독스러워 보이는 사진이나 영상을 찾고, 피해자가 가장 불쌍해 보이는 순간을 찾아 헤맸다. 이 이슈 외에도, 이미 한철, 두철 지난 이슈를 끄집어내는 짓, 이미 자숙하고 열심히 활동 중인 연예인을 저격하여 조회수를 끌어와야 했다.
한 사람의 아픔, 상처, 실수를 처참히 짓밟는 어그로가 담긴 제목의 원고를 받을 때마다, 죄책감이 밀려왔다. 나의 괴로운 마음과 닮은 댓글들이 늘어날 때마다 점점 마음이 황폐해졌다. 물론, 회사 입장에서는 저비용으로 고효율을 낼 수 있는 효자 채널이었기에 그만둘 수 없는 것도 이해한다. 그러니, 내가 그만둘 수밖에.
그 후로, 나는 좀 더 디테일한 나만의 기준을 장착했다. 남의 상처로, 남을 저격하는 대신 무해하고 건강한 콘텐츠를 생성하자고. 원하는 회사에 들어가지 못한다 해도, 스스로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되자고.
그날 이후, 나는 부지런히 움직인다. 유튜브, 블로그, 브런치, 커뮤니티 등을 통해 무해한 콘텐츠를 주 7회 발행하는 럭키세븐 운동에 매진중이다. 여전히 큰돈이 되는 짓은 단 한 건도 없지만 나는 이제 안다. 이 일들의 반복이 또 다른 새로운 일을 물어다 준다는 것을. 그러니 멈추지 말자. 내가 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이니까
할 수 없는 일들을 지워가니,
하고 싶은 일들이 더 선명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