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포에버! 파스타면 포에버!!!!!!!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이번엔 정말 새로운 일이다. 그 일은 엄청난 집중력과 팔의 근육을 섬세하게 써야 하는 아주 정교함을 요하는 일로, 바로 갓 뽑은 파스타면을 120그람에 맞추어 포장하는 것인데 이거 이거 쉬운 일이 아니다. 그보다 생산직 아르바이트를 해본 적 없는 나였기에 새로운 일에 지원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생각하면 매우 어려운 일이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주 5일, 하루 4시간 근무
몇 달 동안 알바몬을 쥐 잡듯이 뒤져도 원하는 공고가 나오지 않았는데, 때마침 한줄기의 빛과 같은 은혜로운 공고가 올라온 것이었으니. 주 5일, 하루 4시간 근무라니. 미쳤다! 이건 무조건 지원해야 해! 나는 서둘러 문자지원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30분이 지났을까. 담당자에게 연락이 왔고, 정신 차려보니 다음 주 월요일에 면접을 잡은 상태였다. 항상 무언가를 시작할 때 이것저것 생각을 많이 하는 내가 이렇게 고민 없이 일을 시작하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 원래 하게 될 일은 이렇게 시작하는 걸까. 면접은 형식적이었다. 나는 다음날부터 바로 파스타면 포장 업무에 투입되었다.
일은 앞에서도 말했듯 쉽지 않았다. 냉동면, 냉장면의 포장방법은 달랐고, 계란면은 쉽게 부서지는 연약한 본체를 가지고 있어서 아기를 다루듯 살살, 아주 살-살 만져야 했는데 투박한 손재주를 가진 내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 거기다 위생복, 위생모를 쓰고 위생장갑까지 낀 채로 묵언 수행하듯 파스타를 포장하는 일은 썩 재미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내가 이 일을 택하게 된 이유를 말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회사에 들어가 고정적인 월급을 받는 것이 여러모로 좋은 편이지만, 그러기에는 내가 벌려놓은 일이 너무 많았다. 블로그, 브런치, 인스타, 유튜브까지. 아홉 시부터 여섯 시까지 회사에 다닌다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을 하나 둘 놓게 될 것 같았다. 그건 싫었다. 이렇게 말하면, 아 혹시 파워 블로거세요? 실버 버튼 받으셨나요? 브런치 북 공모전에서 수상 하신 거예요? 아, 그럼 인스타 셀럽이신 거예요?라고 궁금해하실 수 있는데,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아주 간단명료하게 할 수 있다. 아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미 그 세계에서 정상에 오른 이들은 유튜브를 절대 본업으로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본업을 놓지 않되, 부업의 개념으로 접근하여 삶의 균형을 맞추라는 조언이 대다수. 그들의 진심 어린 조언에 십분 공감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그럼 나는 어차피 본업이 없으니, 일단 다 열심히 해볼까? 그러다 보면 나중에 본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뭔 일이든 제멋대로 생각하는 나는 어쩔 수 없나 보다. 이렇게 멋대로 살 수밖에. 바쁘다 바빠 콘텐츠 세상에 살고 있는 욕심 많은 나는 다음 플랜을 계획했다. 그렇다면 콘텐츠 활동은 계속하되 남은 시간에는 몸을 쓰는 간단한 알바를 구해볼까?
어린 시절, 내가 개근상을 한 번도 놓치지 않았던 이유는 학교가 지루하지 않아서였다. 백제의 전성기를 이룬 근초고왕의 업적 이야기가 지루해질 때쯤, 선생님께서는 맹자 고자 장자 선생의 철학을 알려주셨고, 이조차 노잼으로 여겨질 때쯤에는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운동장을 뛰었으니까. 하지만 공부에 큰 뜻은 없던 탓에 결국 뭐 하나 특출 나지 않은 성적을 가진 조용한 학생으로 3년을 보낸 나는 어른이 된 나는 조금 더 성장했다.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 뭐 하나 대박 터질 거라 정신승리까지 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으니까. 이제야 이런 (퇴사 6번) 변덕스러운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나 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어쩔 수 없이 김치찌개를 끓이고 밥을 먹는다. 지금 먹지 않으면 오후에 힘을 내어 일할 수 없을 테니 밥을 꼭꼭 씹어 먹는다. 파스타면을 만지고, 집에 돌아와 씻고 이것저것 배우고 만들어대는 일상. 어쩔 수 없다. 한 달에 백만 원 남짓 되는 파스타 묻은 돈을 벌지만, 나는 믿는다. 꾸준히 쌓아 올린 글과 그림과 영상의 근육들의 성장을.
어느덧 이 일도 3주 차가 되어간다. 그사이 파스타 공장에 가는 일은 삶의 균형을 잡아주는 기준점이 되었다. 이제는 마냥 조용히 입을 닫고 파스타면을 들어 올리는 행위가 재미없게 느껴지지 않는다. 면을 집어 올리며 인스타툰 콘티를 떠올리고, 면을 넣으며 내일 쓸 글을 구상한다. 알바 뛰는 지금 이 상황도 콘텐츠라고 생각하면 또 재밌지 않은가? 회사를 다닐 때도 이런 생각으로 다녔다면 나는 오래 다녔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부튼 이 정도면 콘텐츠가 낳은 괴물로 성장하고 있는 건 아닐까, 깊은 의문이 드는 시점이 아닐 수 없는데..
오늘도 헐렁한 옷을 입고 힘차게 버스에 올라탄다. 콘텐츠를 만들러 아니, 파스타를 포장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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