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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니 May 04. 2022

퇴사를 6번 했더니 이렇게 됐습니다

인생은 객관식이 아니라 주관식이니까

퇴사를 하면서 나는 조금 더 나아졌다. 퇴사의 이유는 모두 달랐다.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서는 가장 보통의 이유였고, 거리가 너무 멀어서, 출근 한번 했을 뿐인데 힘없이 흐트러진 미역처럼 녹초가 되는 것이 싫어서 등등. 퇴사 목차는 대략 이러하고, 세부적인 줄거리를 말하자면 어우, 요약해서 말하기는 힘들다.




처음만 어렵지.


가장 힘들었던 퇴사는 역시 첫 회사였다. 어쩌다 들어간 회사에서 능력보다 많은 돈을 받았다. 성실하게 입금내역 칸을 채우는 통장을 볼 때마다 뿌듯했다. 그건 나도 이제 사회가 제시한 기본 루트를 밟고 있구먼, 하는 안도감이었다. 그런데 통장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나는 배가 불렀는지, 더 이상 돈이 재미없어졌다. 제때 들어오는 월급이 꼭 족쇄같이 느껴졌고, 급기야는 그 돈이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야, 너 나 없음 못 살겠지? 네가 나를 버리면 또 나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풉ㅋ 네가 언제 또 나를 이렇게 많이 가져보겠냐. 야, 진지하게 생각해봐. 네가 나 없이도 행복하겠냐고."


사실 나는 이미 알았었다. 인수인계받았을 때부터 이건 나와 맞지 않다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도 4년 동안 버티고 또 버텼다. 내가 지금 이곳을 나가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라는 문제는 내가 태어나서 접해본 것 중에 가장 복잡하고 난도 있는 문제였다. 한 번도 배우지 않은 여러 가지 공식을 끌어와서 답을 내려 발버둥 쳐도 여전히 답을 내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그 답이 사실 객관식이 아니라 주관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데에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구한 답은 아래와 같았다.


답: 다른 곳보다 돈 많이 줌(팩트) 근데 나는 이 일을 65세까지 할 자신 없음(팩트) 나는 아직 젊으니 어서 나가는 게 좋겠음!!


4 동안 풀지 못해 끙끙거리던 문제의 답안지를 제출했다. 생각보다 퇴사  없었다. 앞으로 어디서도 마주치지 않았으면 하는 사람들에게 그래도 그동안 감사했다고 인사를 하고, 책상 서랍에서  소지품을 빼오면 끝나는 일이었다. 이렇게 간단하고 별것 아닌 일을 4년이나 끌어온 거야?라는 생각에 얼른 집으로 달려가 배게를 팡팡 치며 침대 위를 뛰며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다. 그리고,  자유의 행복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았다.




"나는 나를 책임져야 하니까."


퇴사를 하고, 당시 나는 속기사가 되고 싶었다. 그동안 나는 일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면 고장 난 기계처럼 오작동을 하며 잘못된 값을 출력했었다.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변명처럼 들리지만, 정말 4년 동안 나는 정말이지 숫자놀음에 질릴 대로 질려있었다. 1원 하나에 고성이 오가는 그 공간에서 나는 점점 무력해져 갔으니까, 속기사를 택한 이유 중 하나는 말을 하는 것 대신 말을 잘 들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첫차를 타고 서울에 있는 학원으로 달려가 새벽 뉴스 스크립트 알바를 했다. 한 달에 몇십만 원이 쥐어졌고, 그 돈은 그대로 학원비로 나갔지만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고성이 오가지 않는 환경에서 해낼 수 있다니, 그렇게 돈을 벌 수 있다니. 하지만 직업으로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 그래도 내가 회사를 나와서도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좋은 경험이었다.




"이제는 돈을 벌어야 한다."


 후로, 나는 다시 돈을 벌어야 했다. 배운  도둑질이라고  회사의 경력을 살려 이직을 했다가 반년만에 그만두었다. 역시  일은 내게 맞지 않는 옷이었다. 이제 다시는 실수하지 말자 해놓고  경력직으로 입사를 했다가 그만둔 나는, 일반 사무직으로 이직을 했다가  이틀 만에 퇴사를 하고 말았는데 이건 정말 어쩔  없었다.



어린이 교구를 만드는 회사였는데, 그들은 마치 침을 삼키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육두문자를 불쑥불쑥 혀 밖으로 내밀었다. 이곳저곳에서 분출되는 시 X, 미친 X 등등의 욕설은 공기 중에 만나 무거운 돌덩이가 되어 나를 덮쳤다.


이건 재해다, 재해야!


마음속에서 도망가라는 경보음이   없이 울렸지만, 입술을 깨물으며 버텼다. 나름 노력했다. "괜찮아.. 나한테 하는 것도 아니잖아. 이걸로  나가려고?  이력서 써야 되는데.. 그건  싫지 않아?" 영혼 없는 이력서를 다시 쓰고 면접 보는 것은  듣는 만큼 싫었지만, 그래도 이건  참겠더라. 결국 주말을 보낸 다음날 그곳과도 끝을 냈다.


그러고 나서 다음에 입사한 곳은 하루 만에....(생략) 시간이 지날수록 나이는 먹어갔고, 경력도 늘어났다. 그 경력이 업무 경력이 아닌 퇴사 경력이라는 것이 코미디였지만. 그래도 오히려 재밌었다. <30대 여성, 다시 회사에 들어갈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감독이 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후에도 할 말이 많지만, 나는 다시 360도 돌아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자연인이 되었다는 것이 현재의 결론이다.



퇴사를 하며 나는 더 나아졌다.


며칠 , 남편의 회사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카페에 갔다. 짧은 시간 동안 밀물처럼 꾸준히 들어오던 손님들이 각자의 커피를 들고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삼삼오오 짝을 맞춰 하하호호 웃으며 나가는 직장인들. 그들의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보며  "나도 회사  하면서 같이 노는 동료들 있음 너무 좋겠다" 라고 했더니, 맞은편에 앉아있던 남편이 입모양으로 이렇게 말했다.


"거. 짓. 말!"


거짓말이라니! 거짓말이라니! 어떻게 알았어! 거짓말인 것을! 뭔 구라를 못 치겠구먼. 거 참. 당혹스러운 마음에 바람 빠진 풍선처럼 허우적대는 손으로 그의 등짝을 때리며 웃는 나의 손을 잡고 그는 진지하게 목소리를 깔기 시작했다.



"프리는 혼자 일 하는 거 좋아하잖아. 지금처럼 카페에서 아이패드로 할 수 있는 일, 시간, 공간에 제약받지 않고 혼자서 글이든 그림이든 뭐든.. 만들어 내는 거 좋아하잖아! 맞잖아~~~"



나참.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결혼 3년이면 이렇게 내 속마음을 100% 간파당하는 것인가! 그렇다. 그는 사실 단번에 내가 회사에 오래 다니지 않을 사람이란 것응 알았더랬다. 뭔가 자유로워 보였대나 뭐래나. 무튼 중요한 사실은 나는 안전한 정규직보다, 불안정한 지금 이대로가 좋다는 것. 이게 내가 퇴사를 6번 하고 알게 된 나의 모습이다.


물론 이 글은 9-6 근무하는 회사원들의 수입보다 수입이 반의 반의 반토막인 내가 더 행복해! 님들도 힘들면 퇴사하셈! 이라는 글이 절대 절대 아니다. 솔직히 안정적인 4대 보험 부러워 죽겠다. 꾸준히 오래 잘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 너무 대단하고 멋지다.


그래도 내가 다시 회사로 들어가는 대신, 자발적인 프리랜서가 되려는 것은 어쩔  없는 운명.. 데스티니라고 생각하련다. 나는 어디에서 행복하고,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지, 퇴사를 6 하고 나서야 알았으니까! 


그래서 나는 길을 지나가다 영감이 떠올라 메모를 하느라 멈추게 되는, 카페에 앉아 콘티에 맞춰 그림을 그리는, 이곳저곳에 글을 맘껏 휘갈겨쓰고 다니는 요즘이 많이 행복한가 보다.


그래서  다음 job은요,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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