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품있는그녀 Mar 27. 2024

이혼의 이유

감정

남편은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 감정을 표현하게 되면 자신이 다 드러난 것처럼 민망해했다. 그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 사람이다.


감정이 중요한 나에게 그런 남편은 너무 어려운 사람이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자기감정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그는 내 감정의 변화를 잘 이해하지 못해 눈치를 보았다. 무언가 기분이 상한 것 같지만 왜 그런지는 잘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감정이 상할만한 말을 쉽게 했다. 나는 계속해서 상처받았다.


마음이 통하지 않는 관계는 불통이다. 우리는 늘 상대에게 일방적이었고, 그렇게 평행선을 걸었다. 나의 감정 전달하기는 언제나 그의 바로 앞에서 떨어졌고, 그는 나의 떨어진 감정을 보지 못하고 돌아섰다. 그것은 실망의 반복이다.


우리는 점차 말을 잃었다. 왜냐하면 나의 감정 전달하기가 지쳤기 때문이었다. 나는 남편에게 감정을 말하지 않았다. 이성적인 문제를 논의하기를 원했기에 맞췄고, 그런 주제에만 반응하는 남편이기에 그런 화제만 던지게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는 ADHD 남자아이 둘을 키우는 현실 자체가 고난과 역경이었다.


말 안 듣는 남자애들은 때려서라도 말을 듣게 해야 한다는 남편과, 어떻게든 말을 듣게 하겠다는 잔소리꾼 아내의 입장 차이는 점차 견해 차이로 양극화되어, 사소한 일에도 오해가 쌓이기 시작했다.


감정이 중요한 나에게 아이들의 감정 또한 중요했고, 감정을 묵살하는 그에게는 아이들의 감정보다 현실을 살아가는 것이 시급했다.  왜 그렇게까지 현실을 살아내는 게 중요할까? 당장 전쟁이라도 터지면 며칠은 거뜬히 살 수 있을 만큼 양식을 비축해둬야 하는 불안감은 어디서 오는 걸까 의아했다. 그리고 내가 찾은 결론은 그의 성장배경이었다.


남편의 아버지는 남편이 10살 때 교통사고를 당하여 20여 년을 전신마비 환자로 누워계시다가 돌아가셨다. 어린 시절 불우한 환경 속에서는 '살아내는 것' 자체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을까. 나의 가정폭력 환경과 남편의 아버지의 부재라는 환경은 어쩌면 같은 정서불안 요인이었나 보다. 그러니 우리가 만날 수 있었지. 하지만 나는 표현하는 쪽이었고, 남편은 묵인하는 쪽이었다.


당장 먹고살기 힘든 사람에게 감정은 사치였을 것이다. 어린 시절 가정폭력 속에서 감정은 사치였던 것처럼. 하지만 학창 시절 속에서 나는 폭력을 피해나가 감정의 싹을 틔워나갔고, 남편은 성인 이후까지도 아버지를 걱정해야 했으며,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홀로 남게 될 어머니까지 걱정하게 되었다. 그러니 그에게 감정은 쓸모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감정은 정말 중요하다. 심지어 자기 자신의 감정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니, 오히려 감정적이 되는 아이러니가 펼쳐진다. 그것은 늘 분노로 표현되었고, 우리는 살얼음 같은 분위기를 견뎌야 했다. 내가 어린 시절 가장 싫어했던 가정환경이, 내 집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감정. 그것이 문제다. 솔직하고자 하는 여자와, 감추고 싶어 하는 남자. 그리고 분노. 그것이 우리가 헤어지는 이유다.


이전 28화 우울증, 그리고 ADHD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