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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종훈 Oct 11. 2023

닥실 아재

"Hope is a good thing, maybe the best of things, and no good thing ever dies."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의 대사


누가 해석 좀 해주시겠어요.

저는 도저히 못 하겠어요. 설령 안다고 해도

차마 입 밖으로 내어 말하지 못하겠어요.

영정(影幀) 속 얼굴이 가까스로 평안해 보이던 닥실 아재의 생(生)을 아는 한.




그가 돌아가셨다.

부잣집 아들로 한량(閑良)이었다는

진외종조부(陳外從祖父)1)의 혼외자(婚外子)로

그 옛날의 서럽던 홍길동처럼

호부호형(呼父呼兄)은 언감생심

범만 같던 정실 소생 자식들 눈 피해

그늘로만, 그늘로만 숨어들다

머리 굵어진 한 날

가슴에 처절히 새겼을 만도 한

적개심 한 마디 그들 면상 대고 내뱉는 일 없이

무작정 살던 곳 떠나

삼십여 년을 부초(浮草)처럼

낯선 곳 떠돌았다. 

떠났으면 출생의 비밀 따위 아무도 모르는

어느 한 곳에서 일가 이루고 살았으면 좋았을 것을

아재는 어쩌자고, 초로(初老)의 나이로 혈혈단신

떠났던 그곳 모멸의 땅 근처 산골 마을,

결국에는 마지막 정착지 된 닥실로 다시 돌아와

생(生)을 벗기듯 닥나무 껍질만

주구장창 벗기다 일흔 중반 나이에

마침내 그 자신마저 벗고 만 것이다.

아재의 한 생(生)이

한 편의 소설(小說)이나 드라마의 소재로

드라마틱하려면 숨은 고수(高手)에게

전가(傳家)의 비법(秘法) 같은 무예나 도술(道術) 따위

전수(傳受)받지는 못했을 것이라도

수시로 이 악물게 만들었을

그 가슴속 깊은 곳의

바위덩이 같았을 응어리의 힘으로

돈이라도 왕창 벌어

궁색한 이복형제들 제 앞에

무릎걸음으로 다가와

머리 조아리게 만들었어야 했을 텐데

이도 저도 뭣도 아니게

해배(解配)2)의 기약 따위 없는

유배지(流配地)의 죄수(罪囚) 마냥

깊은 산속 마을 닥실에서

하릴없이 가볍디가벼운 종이만 뜨다

고스란히 형기(刑期) 다 채우고 만 것이다.

아재 생전(生前) 언젠가

내 세상 물정 정도는 알 만한 나이였던 그때

지나가는 말처럼 슬쩍, 아재에게

사고무친(四顧無親) 아닌

사고무친(四顧無親)의 처지가  

분하고 억울하지 않으냐 물었는

잠시 하늘 떠가는 구름에 눈길 주며

깊은 한숨 내쉬던 것 외에

한 번도, 단 한 번도

그 어떤 분노나 악담, 저주나

복수의 말 혹은, 몸짓도 없이

그야말로 담담하게  

내 생(生)이 그런 것을 어쩌겠냐며

헛웃음 웃던, 무르기가

연시(軟柹)보다 더 무른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는 안다.

아재가 벗긴 것이 한낱 나무껍질만이 아니라

하루에도 수없이

깊은 산속보다 더 깊을 마음의 감옥(監獄)

빠져나오려 들던 그 무엇들

한사코 잡아가두고 달래지 않으면

결코 벗지 못할, 그리하여

자신도 모르는 허물들 벗기 위해

얼마나 홀로 안간힘 다했을지를,  

그 누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스스로 벗어

순백(純白)의 종이 되지 않으면

차마 견디지 못했을 내밀한 질곡(桎梏)들이    

얼마나 많았으리라는 것을.


그날, 아재 영전(靈前)에 바친

‘×같은 세상, 평생을 홀로

발기(勃起) 한 번 변변히 못하셨어도

누군가의 가슴에

홍길동의 나라보다 더 나은

용서와 화해의 나라 세우셨다‘는 것이

나의 추모사였다.



1)진외종조부(陳外從祖父) : 아버지의 외삼촌

2)해배(解配) : 귀양에서 풀어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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