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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종훈 Sep 14. 2023

직녀(織女)에게

흔히들 삶을 길에 비유한다. 단 한 사람 예외 없이 첫걸음 내디딘 후 더는 걸을 수 없을 때까지 걸어가야 하는 저마다의 길. 모두들 자신이 걷는 길이 곧고 평탄하기 바라지만 그런 바람과 달리 자초(自招)한 것이든 타인에 의해서건 쉬이 돌부리에 채여 넘어지거나 허방 짚어 비틀거리는 일들 많아 사는 일이 참으로 만만치 않구나는 것을 실감하며 걷게 된다.


흑백 TV 시절 본 한 편의 영화. ‘La Strada(1954)’ 번역 제목이 ‘길’인 아주 오래된 이탈리아 영화. 길거리에서의 공연이 밥벌이 수단인 차력사 참파노(안소니 퀸)와 아내이자 보조인 젤소미나(줄리에타 마시나). 오래되어 영화의 세세한 내용 다 기억해 낼 수는 없지만 생(生)이 길 걷는 일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 들 때마다 잊힌 듯 잊히지 않고 떠오르는 몇몇 장면들.


공연 도구 실은 낡은 마차 타고 들판 사이로 난 황량한 길 따라 하염없이 가던, 흑백(黑白)이라 더 우울하고 더 쓸쓸해 까닭 모르게 비극(悲劇)으로 읽히던 장면과 그에 더해져 애잔하게 들리던 트럼펫 연주.


보잘것없는 자신만 믿고 풍찬노숙(風餐露宿)조차 마다치 않는 착하기 이를 데 없는 아내 ‘젤소미나’를 무시하고 학대하는 것도 모자라 수많은 여자와 바람을 피워대던 ‘참파노’에 분개했던 동시에 극심한 영양실조와 그에 따른 병(病)으로 죽어가던 그 순간까지 ‘참파노’가 사랑하는 것은 오직 자신 뿐이라는 젤소미나의 그 허약하기 이를 데 없는 어리석은 믿음이 과연 사랑일까,는 생각이 들어 참으로 답답했던 기억. 그리고 그녀가 죽고 난 이후에서야 비로소 참회의 피눈물 흘리며 절규하던 ‘참파노’.       


‘젤소미나’의 길 혹은, 생(生). 누구나 각자의 길 걸어가며 희로애락(喜怒哀樂) 거듭하기 마련인데 그 길에서 단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을 것 같은 그녀의 생. 그조차 한 생이라면 한 생이니 당대에도 어쩌면 그처럼 힘겹게 길 걸어가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들에게 한없는 위로를 보내고 싶은-.


자신의 일방적인 생각일 것이 분명하지만 ‘참파노’가 사랑하는 것은 자신 뿐이라는 ‘젤소미나’의 그 애절한 믿음이 그나마 그녀에게는 한 줌의 행복 같은 것이었을까?             



     

저 늙은 여인(女人)의 손, 좀 보소.

한사코 뒤로 숨기다 마지못해 내미는 손.

섬섬옥수는 언감생심

평생 논일 밭일한 남정네의

손보다 더 거친 저 손.

옹이 박힌 굵은 손가락이며

긁히고 베인 상처투성이의 손바닥.

뭣도 모르고 금소리※로 시집왔는데

알고 보니 안동포(安東布)로 유명한 마을이더라는

그리하여 그때부터 직녀(織女)로

또한, 늙은 직녀인 시모(媤母) 아래서

눈물, 콧물 있는 대로 쏟아가며

혹독하게 배운 베틀 인생이

어언 육십여 년.

참으로 성긴 나날들이었제.

늙은 직녀의 뜻밖의 고백.

포(布)는 조금도 성긴 데 없이

한 올 한 올 빈틈없이 짜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늘

어디 한 곳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무시로 바람이 드나들던 것이제.

요상시러븐 것은

베틀 앞에 앉아 처음 흥얼거렸던 것은

베틀가였는데

나중에는 나도 모르게

수심가(愁心歌)로 넘어가있더라 말이시.

일단 베틀 앞에 앉으면

거기에 집중해야 되놔서

이런저런 잡생각이며 수심(愁心) 따위

쪼맨치도 들 틈 없는데 말이시.

그래도 지난 세월 돌아본께

지금보다는 옛날이 좋았더라 말이시.

그믐밤에는 호롱불,

보름밤에는 달빛 들여놓고

철커덕, 철커덕 베 짜면

육신은 고달파도

산 사람, 죽은 사람

내 짠 포(布)로 옷 해 입을 거 생각하마

마음은 뿌듯했응께.

배운 도둑질이 이거밖에 없어

평생을 베틀 앞에 앉아있었지만

그래도 이거로 자식들 공부시켰고

시집장가보냈으니 보람도 있었고.

인자는 이것도 저문 일이라

몸만 고달프지 통 신명이 나지 않는구마.

용써서 짜놔도 이거로

옷 해 입을 사람도 없고

배울라카는 사람도 없고

행여 배울라케도

내 고생한 거 생각하마 징글징글해서

도시락 싸들고 댕기미 말리고 싶구마.  

견우(牽牛)? 그기 무신 말인고?

아, 영감. 듣고 보이 그러네.

경상도 사내 아이라카까봐

무뚝뚝하기가 가을 무시 속통 같았는데

그래도 속정은 깊었는기라.

십여 년 전쯤에 저 세상 갔제.

평생 소 몰고 논밭 일군다고

고생 억수로 했는데 자식 다 키우고

허리 좀 필라카이 그리 허무하이 가뿌데.   

그래도 할마시가 짜준 수의(壽衣) 입고 갔으이

섭섭지는 않을끼구마.

뭐라꼬, 연세? 인자 나이도 이자뿟다.

갈 때가 머지않았으이 딴 기 뭐 있겠노?

내 입고 갈 옷 한 벌 짜놓으마 그만이제.


그대 어쩌다 베틀 소리

철커덕, 철커덕 들리는 마을 지나면

잠깐 들러 늙은 직녀의 손, 만져보라.

평생을 씨줄 날줄 촘촘히 엮다

마침내 거미가 되어버린 여인의

긁히고 베인 그러나, 눈부신 그 손.   



※금소리 : 안동시 임하면 소재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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