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을 조롱하거나 비난하는 유머는 유머가 아니고 막말이다. 어떤 사람은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싶으면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서 유머를 한다. 적당한 유머는 삶에 활력소를 주고, 한번 크게 웃고 나면 마음에 쌓였던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좋은 효과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유머를 하고, 웃으며 사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유머를 할 때도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유머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유머에도 건너야 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유머를 할 때 다른 사람을 비난하거나 비하하는 식의 유머는 그 유머의 대상이 되는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만들고 관계에 금이 가게 하기 때문이다. 유머라는 이름 뒤에 숨어서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조롱하는 것으로 들린다. 특히 사람들의 외모, 옷차림, 이름, 약점과 같은 것을 들어 다른 사람을 조롱하는 유머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분노하게 하고, 그 유머를 하는 사람의 인격을 의심하게 한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의 일이다. 어린 시절에는 아이들끼리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지키지 않는 유머를 자주 했었다. 한 번은 같은 반 친구가 나를 “야! 동태!”라고 불렀다. 나는 처음에는 내 귀를 의심했다. 저 말이 나를 보고 하는 말인가? 내가 왜 동태인가?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친구는 재미로 내 이름 임동환의 가운데 글자를 따서 나를 동태라고 부른 것이다. 참, 기가 막힌 일이었다. 내 좋은 이름을 놔두고 동태가 뭔가? 동태가. 그 친구가 나를 보고 동태라고 부를 때마다 주변의 친구들은 같이 웃었다. 그러자 그 친구는 더 신이 나서 자신이 지은 그 놀라운 작명력을 기뻐하는 듯이 나를 부를 때마다 동태라고 불렀다. 그래서 나는 가만히 생각을 하다가 어느 날 그 친구에게도 그럴듯한 별명을 지어 불러주었다. 그때 내가 뭐라고 불렀는지 그것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친구에게 한방을 먹여주기는 충분한 별명이었다. 사람이 이렇다. 자신이 상처 받은 것은 지금까지 기억하면서 다른 사람을 상처 준 것은 다 잊어버린다. 내가 그렇게 친구의 우스꽝 스런 별명을 지어 부르니 옆에 있던 친구들도 웃었고, 그 당사자 친구는 웃고는 있었지만 그 얼굴은 묘한 표정이었다. 결국 그 친구는 나에게 더 이상 동태라고 부르지도 않았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를 피하는 존재가 되었다.
인생은 심는 대로 거두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를 비난하면, 나도 모르게 그 비난의 화살이 내게도 돌아오는 날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을 유머로 라도 비난하거나 조롱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유머는 유머가 아니고 그 사람과 관계를 깨뜨리고 원수를 맺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사람들을 비난하는 식의 유머는 삼가자. 유머를 들을 때 상대방도 웃고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은 웃는 것이 아니고 그 유머를 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면 복수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