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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도토리 Feb 09. 2022

저는 평화주의자입니다.

열심히 일하지 않습니다.

싸울 만큼 너를 좋아하진 않아


나는 싸움이 싫다. 


 싸움에서 파생되는 논쟁, 언성 높임, 얼굴 붉힘과 같은 일련의 모든 일들이 싫다. 딱히 누구와도 싸우고 싶지 않다. 아니 다시 정정하자. 싸울 필요가 없는 사람들과는 싸우고 싶지 않다. 나도 가족 혹은 가족에 버금가는 애정을 가진 이들과는 종종 크고 작은 상처를 주고받으며 싸우곤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들을 아끼기에 그렇게 싸움을 싫어하면서도 기꺼이 전투에 참여한다. 이들과의 관계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정상적인 관계를 해치는 일이 발생할 경우 그것이 대화든 싸움이든 어떠한 방식으로든 해결하려고 한다. 나는 어차피 이들과 평생을 함께 할 것이기 때문에 불편한 앙금이 남아있는 상태를 지속하고 싶지 않다. 또한 깊이를 재기도 어려운 이 정도의 끈끈한 관계에서는 자잘한 싸움쯤이야 큰 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이들과 싸우고 싶지 않다. 굳이 나의 의견이 더 맞는 것 같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싶지 않고, 그들이 강하게 주장하는 대로 따른다고 해서 내 자존심이 상하는 일도 없다. 누군가 나에게 무엇인가에 대해 역설한다면, 그 사람의 그러한 에너지를 높이 사고 싶다. 나에게 저 정도로 우기는 걸 보면 정말 대단한 확신이 있거나 최소한 그렇게 하기를 정말 간절히 원하는 것 같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것처럼 들리면 나는 대게 순순히 받아들인다. 때로는 그들의 논리가 이해되지 않거나 억지를 쓰고 있는 것으로 들릴지라도 적당한 사회적인 멘트로 자리를 마무리하며 동의하는 척할 것이다. 속으로 나지막이 욕을 할지 모른다. 그러나 거기다 대고 ‘너의 생각은 왜 그따위니?’라는 논쟁을 시작하며 불을 지피고 싶지 않다. ‘그래. 뭐 그렇게 생각할 수 도 있지.’ 정도의 마인드로 서둘러 대화를 마치고 싶다. 가끔 정말 악의를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이나 나에게 실질적인 피해를 준 사람인 경우에도 다시 볼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싸움을 걸지 않는다. 내 인생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내 말이 맞고 네 말은 틀리다고 화를 내봤자 내 감정만 소모되는 것 같다. 자칫하다간 싸움에 휘말려버릴 수 있다. 씩씩 화가 난 내 마음을 추스르는 데에 드는 에너지가 아깝다.


 간디와 같은 마음으로


 이제 회사로 무대를 한정시켜 보자. 회사라는 곳에서 우리는 크고 작은 의견 충돌을 꽤 빈번히 목격한다. 때로는 그 의견 충돌 안에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내가 끼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유야 많다. 팀 간 업무 분장에 이견이 생기거나, 어느 곳에서 큰 실수가 터져 온 팀이 그 뒷수습에 예민해져 있거나, 일의 진행방향에 서로 다른 시각이 충돌하거나 하는 경우가 하루에도 몇 번씩 발생한다. 하지만 그 카오스 안에서도 나는 여전히 평화주의자이고 싶다. 나는 회사에서만큼은 더욱더 평화주의자이고 싶다. 회사는 나와 같은 사람을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회사에서 화를 내고 싶지 않다. 나는 싸움이 싫고 회사에서의 싸움은 더더욱 싫다. 회사라는 장소의 특수성이 나의 본성과 다른 행동을 하도록 허용하고 싶지 않다.


왜 나는 화를 내고 싶지 않은 것일까?


 우선은 내가 생각한 답이 정답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1안이 맞다고 생각하고 상대는 2안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치자. 이 둘 중 한 가지의 경우만 취사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우선은 내가 생각한 1안의 장점을 어필하고 2안이 가져올 수 있는 이슈에 대해 말해보겠지만 그 이상의 노력은 하지 않는다. 정말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굳이 나의 안을 관철시키고자 불필요하게 회의를 지연시키거나 회의의 분위기를 안 좋게 만들고 싶지 않다. 우습지만 내가 그동안 겪어온 바로는 1안과 2안 둘 중 무엇을 선택하더라도 그 결과는 아주 미미한 차이만을 가져왔다. 어쩌면 거의 같은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동일한 목표 하에서 일한다는 가정하에 직원 개개인의 사사로운 의사결정은 회사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회사의 미래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면 나에게는 더더욱 의미가 없는 일이다. 결국은 선택의 문제, 선호의 문제인 것이다. 누군가의 단순한 취향에 달린 일 때문에 열을 내가면서 싸우고 싶지 않다.


 두 번째로 회사라는 전쟁터에서 우리는 어쩌다 보니 누군가가 쥐어주는 총을 들고 전투에 참가해버린 병사에 지나지 않는다. 상대방이 나에게 내가 하기 싫은 업무를 요청한다고 해서, 이것이 전적으로 상대만의 잘못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상대도 이 험하고 거친 회사라는 곳에서 본인의 미션을 부여받았고, 그 미션을 달성하기 위해 나에게 본인이 하기 싫거나 할 수 없는 업무를 던지게 된다. 나는 상대방이 의도적으로 나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머리가 꽃밭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나는 내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 다들 본인이 처한 어쩔 수 없는 입장이 있을 것이라 믿는 쪽을 선택했다. 회사라는 곳은 내가 전부 파악하지 못한 이런저런 일들이 얽혀있기 마련이다. 눈을 감고 떠올려보자. 나도 그동안 얼마나 업무의 중요도를 핑계 삼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귀찮은 업무들을 던졌던가. 나라고 죄가 없을 리 없다. 죄 없는 자만이 일을 던지는 상대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그 일을 맡는 것이 그렇게 명분에 어긋나지 않는 일이라면 그리고 큰 무리가 가지 않는 일이라면 그냥 내 시간을 투자해서 그냥 한다. 불합리하다고, 하지 않겠다고 싸우는 시간에 그냥 일을 처리해 버리는 것이 어쩌면 더 빠를 수 있다. 불필요한 곳에서 힘을 빼지 말자.


 마지막으로 회사에서 굳이 적을 만들 필요는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어느 조직이나 싸움꾼이 있다. 내 편일 때는 든든한 싸움꾼도 있고 내 편인데도 피곤한 싸움꾼도 있다. 본인이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객관적으로 여러 안건에 대한 중요도와 방안을 빠르게 판단하고, 최적의 안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조금은 까칠하게 굴어도 상관없다. 오히려 이런 사람은 기본적으로 매사에 합리적인 경우가 많아 무조건적인 싸움은 시작하지 않는다. 결국 내 편인데도 피곤한 싸움꾼들이 문제들이 문제다. 정말 매사에 싸움꾼이었던 리더와 일한 적이 있었다. 물론 장점도 있었다. 팀에 새로 떨어지는 일에 굉장히 방어적이다 보니 당장의 불필요한 일이 커트되는 굉장히 좋은 면도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람 함께 일한다는 점은 우리 팀 이외의 다른 팀 전체를 적으로 만드는 것과 같다. 모든 일에도 공격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그의 독설과 비난에 시달리다 못해 눈에 불을 켜고 우리 팀이 뭔가 잘못하기만을 기다렸다. 우리 팀의 실수가 발견되자 여기저기서 그동안 복수의 시간만을 기다렸던 적들이 눈을 벌겋게 뜨고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그 공격의 대상이 리더에게만 집중되어있었다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그들에게는 이미 나도 리더와 한패였다. 그 뒤로 일이 쉽게 풀리지 않았다는 건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좋게 말할 수 있는 일은 좋게 이야기하자. 걸지 않아도 될 싸움을 먼저 시작하지는 말자. 고리타분한 이야기겠지만 회사에서 덕을 쌓아서 나쁠 것은 없다. 언제 저 사람을 어떤 식으로 다시 만날 지는 우리의 예상 밖이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고 베푼 작은 친절이 미래에 몇 배가 되어 돌아올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희생에 대해 생색은 필요하다. 불필요한 싸움을 하지 말라는 것이지 덮어놓고 모든 경우에 ‘그냥 내가 조용히 하고 말지’라는 태도를 추천하는 것은 아니다. 회사에서의 나는 개인이 아니라 팀의 일원이다. 무리가 없는 선에서 일을 받아들이되 내가 추가로 받게 된 업무에 대해서는 윗선에 알리자. 굳이 나 혼자 그늘 뒤에 숨어서 봉사할 필요는 없다. 숨어있는 나의 노력을 언젠가 누군가는 알아줄 수 있겠지만, 그러한 보장되지 않는 확률에 기대는 것은 위험하다. 그때까지 나 혹은 그 누군가가 이 회사에 다닐 것이라는 보장 역시 없다. 우선 당장 내가 맡게 된 일은 사소해 보이더라도 윗선에 공유하자. 완성된 결과를 전달할 때도 상위 의사결정자를 꼭 추가하자. 그들이 결과물 하나하나를 보진 않을지 몰라도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음을 인지시키는 것은 필요하다.


 또 가끔 확신이 드는 일이 있다면, 나답지 않게 무언가 열심히 준비한 일이 있었다면, 아무리 생각해도 상대의 의견이 올바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면 굳이 얼굴을 붉히지 말고 위로 올리면 된다. 회사 일에서 한 번에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일은 열과 성을 다해 싸우더라도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위로 올려서 처분을 기다리자. 굳이 내가 나서 이러니 저러니 싸울 필요는 없다. 자리로 돌아와 숨을 한 번 쉬고 열을 식히고 나는 내 할 일을 다시 시작하자. 나머지는 이제 나보다 돈을 더 많이 받는 이들의 고민 영역이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싸움은 내 Job Description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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