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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도토리 Mar 21. 2022

회사에서 깨졌을 때

혼나다와 깨지다.


혼나다와 깨지다. 


 한국인들만이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은 이 섬세하고 미묘하지만 뚜렷한 차이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수업시간에 딴짓을 했을 때 선생님은 무서운 목소리로 혼을 냈다. 사춘기 시절 아무 일도 아닌 일에도 반항하고 싶은 마음이 한창이라 자꾸만 어긋나려 할 때 부모님은 단호하게 나를 혼냈다. 친구들과 이웃집 마당에서 장난을 치다가 옆집 아주머니에게 혼이 났었다. 나는 그렇게 혼이 나면서 자랐다. 어른이 된 나는 더 이상 혼나지 않는다. 회사에서도 나는 혼나지 않는다. 다만 산산이 깨질 뿐이다.


 ‘혼을 낸다’는 말에는 어쩐지 애정이 담겨있는 느낌이다. 사랑의 매라는 모순적인 말이 통용되었던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 내가 너를 혼냄으로 인해 너의 행동이 교정되고 그것이 너에게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는, 독단적이고 이기적이지만 어쨌든 표면적으로나마 나를 위한다는 그런 마음이 담겨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항상 ‘혼냄’을 남용하는 사람들은 있어왔기에 문제는 있어왔지만, 그래도 혼낸다는 행위를 깊숙이 살펴보면 일말의 애정의 씨앗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오늘 회사에서 혼났다는 말은 뭔가 어색하다. 아 나 오늘 회사에서 된통 깨졌다. 역시 이 쪽이 입에 짝 달라붙는다. 그렇다. 나는 오늘 회사에서 깨졌다. 나를 깨뜨린 그 사람의 눈빛에 나에 대한 걱정이나 애정은 담겨있지 않았다. 그는 전문적이고 냉정하게 내 영혼을 깨뜨렸다. 잔인하다. 허나 우리가 회사에 다니는 이상 깨짐을 피하기는 어렵다. 운 혹은 능력, 둘 중 하나라도 뛰어나다면 그 빈도야 상대적으로 낮을 수 있겠지만 난 한 번도 칭찬만 받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우리는 그럼 과연 어떤 경우에 깨짐을 당하는 것일까? 몇 가지 케이스를 생각해보자.




실수는 성공의 아버지?


 우리는 모두 실수를 한다. 나도 사실 실수라면 어디 가서 지지 않을 정도로 해봤다. 보고서의 소소한 오탈자는 기본이고 한 번은 중요한 숫자를 잘못 정리해 임원진 보고에 틀린 숫자를 떡하니 가져가기도 했다. 가장 큰 실수라면 근 10년 전 경쟁 입찰을 할 때 수익 계산을 완전히 잘못해서 우리 회사에 너무나 불리한 조건을 입찰서에 넣었던 일이 생각난다. 입찰서가 제출된 뒤에야 그 사실을 깨달은 나는 아무에게도 말 못 한 채 집에서 눈물을 흘리며 제발 우리 회사가 이번 입찰에서 떨어지기를 기도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 바람대로 회사는 입찰에서 떨어졌고 나의 실수는 조용히 묻힐 수 있었다. 지금이야 일이 익숙해진 터라 이런 실수가 덜하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도 나는 신기할 정도로 끊임없이 소소한 실수를 창조해낸다. 분명 수십 번 들여다봤을 때에는 보이지 않던 오타가 보고에만 들어가면 바로 눈에 띄는 건 무슨 경우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사람은 실수를 한다. 일이 익숙지 않은 초반에는 특히나 실수를 더 많이 할 수밖에 없다. 사실 실수를 해서 깨지는 것은 그렇게 억울하진 않다. 내 탓인 걸 어쩌랴. 그리고 어떻게든 해결이 되는 실수는 대단한 실수가 아니다. 크게 마음 쓰지 말고 넘어가면 된다. 다음에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마음이면 충분하다.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서 실수를 하지 않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마음만 먹는 것으로 만족하도록 하자.




불행한 상사는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다음은 상사의 기분이 안 좋은 경우이다. 상사라는 사람들은 개복치라도 되는 것인지 대부분의 경우에 기분이 좋지 않다. 집에서는 도대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설마 세상의 화를 모두 짊어진 지금의 저 표정이 저 이의 기본 표정인 것일까? 우리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한번 상사의 기분이 안 좋았던 날의 이유를 나열해보자.

전날 집안에 우환이 발생하여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날 오후에 임원 보고를 앞두고 있어 신경이 잔뜩 곤두서 있었다.

내 보고 전 타임의 보고가 굉장히 별로여서 그 기분 나쁨의 여파가 계속 남아있었다.

그날 먹은 점심이 얹혀서 심기가 불편했다.

주식에 단단히 물려 큰돈을 잃었다.

본인의 상사한테 깨져 잔뜩 주눅이 들었다.

슬프게도 이 중 우리가 개입해서 바꿀 수 있는 일은 없다. 상사에게 깨지지 않기 위해 상사의 점심식사를 소화가 잘되는 음식으로 세팅해놓고, 항상 가내에 우환이 없는지를 확인할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일이라면 그 일이 닥쳤을 때 스스로를 책망하지 않는 것이다. 내 잘못이 아닌 그들이 원인인 것이다. 다혈질인 대표가 운영하는 우리 회사의 경우 대표 보고를 앞두고 가장 신경 써야 할 요소 중 하나는 비서진에게 그날의 대표 기분을 묻는 것이었다. 출근해서 역정을 내진 않았는지, 오전에 뭔가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이슈는 없었는지를 면밀히 파악한다. 그날 얼굴이 밝다는 첩보가 들어오면 한껏 가벼운 마음으로 보고에 들어가곤 했다. 반면 심기가 불편하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모든 팀원이 모여 자료를 보고 또 보며 혹시나 있을지 모를 실수를 찾고 또 찾았다. 그렇게 하고도 맘이 놓이지 않아 백과사전 두께의 백업 자료를 준비했다. 툭 치면 몇 페이지 두 번째 표 첫째 칸의 숫자가 바로 튀어나올 정도로 만반의 준비를 하더라도 그날 부부싸움을 한 대표의 찌푸려진 미간을 펴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렇게 보면 성공적인 보고의 팔 할은 타이밍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가 뭐 어떻게 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그냥 할 수 있는 한의 준비를 하고, 그 뒤에 벌어지는 상황에는 크게 괘념치 않는 것이 내가 나의 정신 건강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일 뿐이다.




Agree to Disagree


 일에 정답이 있을까? 모든 기획서, 보고서에 사실 정답은 없다. 사실 성공한 회사의 성공한 사업도 철저한 기획서를 바탕으로 차근차근 추진되었다기보다 어어어 하다 얻어걸리는 것들도 많다. 게다가 내가 보기엔 완벽한 보고서더라도, 상사 스타일이 아닐 수 있다. 지난번 상사는 두괄식을 선호했는데 이번 상사는 스토리 라인을 먼저 쭉 나열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지난번 상사는 보고서의 디자인을 중요시해서 줄 맞춤 열 맞춤에 신경을 쓰고 오와 열을 딱딱 맞춰 준비하곤 했는데, 이번 상사는 대충 키워드만이라도 빠르게 보고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번 보고를 이 사람이 마음에 안 들어했다고 해도, 내가 한 일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취향이 달랐던 것이다. 세상에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강아지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둘 다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상사는 그런 관용적인 타입이 아니었던 것으로 하자. 이번 상사는 단순히 내 보고 스타일을 선호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마음에 맞는 보고를 성공적으로 수행했으면 좋았을 테지만 운이 좋지 않았다. 물론 장기적으로 그와 함께 일하려면 그의 입맛에 맞추어 간을 조정해야 할 것이며, 이는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필요로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낙담하지 말자. 한두 번 보고에서 깨졌다고 나의 존재 가치와 잠재 역량을 폄하하지는 말자. 최종적으로 상사가 마음에 들어 했거나 채택된 보고서가 최고의 보고서라는 보장은 없다. 자기 합리화 같지만서도 결국 최종 채택된 보고서도 선정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에 맞았을 뿐이다.




너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없다.


 생각해보면 결국 눈에 띄는 실수만 하지 않도록 노력한다면 그 후에  이상 우리가   있는 일은 없다.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적당히 정신을 차리고, 상사의 취향과 크게 어긋나지 않게 일을 한다면  뒤의 발생하는 상황은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어차피 오늘의 까임도 장기적으로는 기억 속에서 잊힐 일이다. 그렇다면 굳이 오늘 하루의 기분을  상사 때문에 망칠 필요가 있겠는가. 우선 집중할 일을 찾자. 땀을   있는 운동도 좋고, 친구들과의  한잔도 좋다. 내일이면 출근을 해서 보고서를 뜯어고쳐야  테니 오늘 밤만큼은 잠시 상사의 뿔난 목소리를 잊어버리자. 소금이 뿌려진 마음의 상처에 시간이라는 슈거 코트를 덕지덕지 덧바르자. 괜찮은 보고서였는데 취향이 특이하시군요. 오늘 기분이 안 좋아 보이시니 제가 참겠습니다. 정도의 태도의   떨어진 취해보자. 상사에게 깨졌다고 깨지지는 말자. 그는 나를 깨뜨릴 권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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