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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Nov 09. 2019

싱글 라이프스타일을 업그레이드하라!

아메리칸 사이코

1인 가구가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의 대세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초보 싱글족도 많지만 어느 정도 사회 경험도 있고 조금씩 성공에 한발짝 다가서고 있는 경험 많은 싱글족이라면 아마도 공간을 업그레이드하고픈 욕구가 조금씩은 있을 텐데요, 멋진 옷이 꼭 내가 입어야 맛이 아니듯이 공간을 업그레이드해주는 인테리어 아이디어 역시 꼭 필요한 실용적인 것만 살펴보는 것보다 멋있고 럭셔리한 아이디어를 조금씩 접해 두는 것이 눈에도 즐겁지만 나의 안목도 높이고 필요할 때 도움이 되는 생활의 지혜로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멋있는 가구와 인테리어 이미지들을 즐기면서 나의 공간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다 보면 어느덧 내 공간도 나 만의 개성으로 완성돼 나가고 있을 테니까요.


이번 편에 소개할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에는 아주 멋진 싱글 라이프 스타일의 인테리어가 등장합니다.


단, 현재의 기준으로는 세월의 흔적이 보이는 빈티지 버전이라는 점 염두에 두고 계시길!!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하버드 학부와 MBA를 졸업하고 월가의 M&A 전문가로 일하고 있는 패트릭 베이트만(크리스천 베일 분)은 이력서 상의 스펙이 엄청납니다. 당연히 그와 함께 일하는 동료나 어울리는 친구들의 스펙도 만만치 않은데요, 그렇다 보니 영화에 등장하는 이 부자 엘리트들의 행동과 사고는 종종 우리 일반인들의 공감 범위를 넘어 서고 있습니다.


인종차별에 반대하고,  예술에 관해서도 전문가적인 지식을 자랑하며, 신체관리에도 철저한 완벽한 우리도 따라 하고 싶게 만드는 모습도 등장하지만 그 반대로 각자의 명함을 가지고 쓸데없이 사소한 디테일까지 견주어 가며 그것을 가지고 서로의 품위를 비교하려 하고,  고급 레스토랑을 예약할 수 있는지 없는지 등의 여부를 통해 능력을 견주고 있는 다분히 속물적인 근성도 뿌리 깊게 내려있습니다. 


이런 상반된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극단적으로 대비시켜 영화는 물질화 경향에 점차 가속이 붙고 있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와 그 안에서 허상과 본질 사이에 뒤틀려 가는 현대인의 존재를 초현실주의적 터치를 통해 그려 내고 있습니다.





 이런 초현실주의적 화면 구성은 살인과 폭력 역시 마치 아방가르드 행위 예술처럼 포장하며, 이 영화 안에 들어 있는 B급 코미디 요소인 풍자와 조롱을 극대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등장인물들의 허영기를 극대화하는 이미지 구성을 위해  세트 디자인과 의상 및 소품 등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는데요, 과연 많은 인테리어 잡지들이 최고의 영화 인테리어로 이 영화를 꼽는 이유를 영화의 장면들을 통해 한번 살펴볼까요?


1. Minimalism Interior


우선 주인공의 아파트 거실입니다.


뉴욕 여피의 공간답게 최근에 유행하는 미니멀 스타일입니다. 영화가 2000년에 개봉되었고 배경은 1988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대단한 감각입니다.


거실의 끝  복도와 연결되는 벽면에 맥킨토시의 힐하우스 의자를 마치 오브제처럼 놓아두었고, 창가에 대구경 천체 망원경이 자리 잡고 있으며, 거실의 가운데에는 화이트 3 seater 소파와 2조의 barcelona  의자를 ㄷ 자형태로 배치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독특한 다리 구조의 steel + glass로 이루어진 테이블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화이트와 블랙을 대비시키고 있는데, 메인에 위치한 화이트 소파는 착석감을 중시한 좀 더 무난한 디자인을 선택하는 반면에 사이드에 놓인 체어는 바르셀로나 모델을 블랙으로 선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르셀로나 체어와 테이블의 다리 재질을 통일시킴으로써 세트감 있는 구성을 완성하고 있습니다.  



2. Art


그런데 사실 패트릭의 방에서 가장 눈에 뜨이는 인테리어 요소는 바로 거실 중앙벽에 걸어 놓은 미술 작품들입니다.


그 유명한 루드비히 미스반데로 어의 바르셀로나 체어와 맥킨토쉬의 힐하우스 체어가 놓여 있지만 그 정도로는 럭셔리한 공간을 구성하는 데 있어 차별화된 개성을 보여주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마르셀 뒤샹의 표현처럼 이런 명품 가구들을 '레디 메이드' 아트라고 우기고 싶지만, 오리지널도 흔해지고 거기다가 카피까지 많아지면서 명품 의자들의 희소성이 점점 사라져 가기 시작한 것이죠.        


그래서 현대 고급 인테리어 시장에서 중요도가 점점 커지는 것이 바로 미술작품입니다. 일단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미술작품의 기본 컨셉은 '유일함'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다면 다른 누구도 동일한 것을 가질 수 없는 상품이 되는 거죠.  그리고 예술작품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스토리'들이 내 공간에 내러티브를 더해줄 최상의 도구가 되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니, '아메리칸 사이코'에서는 아주 독특한 가구를 보여주기보다는 럭셔리 인테리어의 기본 아이템인 바르셀로나 체어와 힐하우스 체어로 베이스를 깔고 거기에 거실의 주요 벽에 작중 주인공의 캐릭터에 부여한 컨셉을 더 확실하게 이미지화해줄 미술 작품을 걸어서 장면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80년대 미국 미술계의 스타 작가였던  Robert Longo의 연작 시리즈 'men in the cities'중 두 점이 벽에 좌우 대칭으로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작품들은 '현대인의 뒤틀린 감정의 몸부림'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는데, 영화 속 주인공의 캐릭터와 딱 맞아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Men in the Cities - Men Trapped in Ice 1980. Charcoal and graphite on paper.  


마치 사진처럼 보이는 위 작품은 사진을 찍어서 그것을 보고 작업을 한 회화 연작 시리즈입니다.


영화에서는 바탕이 되는 거실의 흰 벽 위로 , 세련된 블랙 프레임으로 마감된 작품을 남성이 나온 한 점과 그것과 대응되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한점 이렇게 두 점을 대칭되게 설치하고 있는데요,


작가 Robert Longo는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으로 유명한 파스빈더 감독에게서 영감을 얻어서, 뮤직 비디오에 등장하는 팝스타의 인기 포즈, 그리고 당시 월가에서 인기를 끌던 preppy 스타일 패션들을 결합하여  작품의 세부 요소들을 완성시켰다고 합니다.






다시 거실 의자로 돌아가 가구와 인테리어 소품을 자세히 살펴보죠. 우선  바르셀로나 체어부터 볼까요?

이 의자는 1929년 바르셀로나 만국박람회의 독일관을 위해 루드비히 미스반데로와 위대한 여성 가구 디자이너인 릴리 라이히가 디자인을 한 의자입니다.  (몇 안 되는 당시의 여성 디자이너들은 그들의 재능을 소속 건축사무실의 대표에게 빼앗기는 수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 의자도 보통은 미스 반데로의 의자로만 알려져 있고, 역사상 최고의 의자 디자인 중 하나로 유명한 르코르부지에의 LC 시리즈 의자들도 사실 그의 건축 사무실 소속 여자 디자이너인 샬롯 페리앙의 디자인임이 최근 들어 정설로 힘을 얻고 있는 중입니다)         

       

 당시의 바우하우스 스타일인, 발달하는 공업기술을 바탕으로 좀 더 일반에게 다가가려는 노력 즉 일반인을 위한 범용 상품을 만드는 컨셉과 달리 이 의자는 최초부터 독일관을 방문할 스페인 국왕을 위해 디자인되었다고 하며, 아래 그림처럼 로마시대의 가구 양식에서 다리 부분의 디자인 모티브를 따 옵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귀족주의와 고급스러움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된 의자라고 할 수 있겠죠.




다음으로 맥킨토시가 디자인한 힐 하우스 체어는 19세기 아르누보 스타일의 대표적인 의자입니다.

맥킨토시가 디자인한 의자 중에는 후기에 해당하는 이 의자는 의자로서 본연의 기능보다는 예술적인 감성의 장식용 제품으로 디자인되고 제작되었다고 하며,    영화에서 처럼 복도 끝 부분에 오브제로 사용되기 딱 알맞습니다. 


맥킨토시는 다음과 같은 다양한 의자들을 제작했습니다.

등판의 디자인이 맥킨토시 가구 디자인의 독특한 특징입니다.





다음으로 살펴볼 소품은 좀 독특합니다.  색다른 하지만 상당히 중요한 인테리어 소품인 망원경이 등장합니다. 망원경은 역사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는 남성적인 아이템입니다. 


 망원경, 지구의, 세계지도 이러한 아이템들은 제국주의 시대에 귀족들의 서재에 사용된 주요 인테리어 아이템들입니다. 



식민지 개척은 당시의 유럽 왕가와 귀족 사회에서는 21세기 자본가들의 벤처 투자와 비슷한 양상이었습니다. 저마다 더 많은 부를 추구하기 위해 지도 위에 자신들의 영역을 넓히는 경쟁을 하고 있었던 시기에, 지리나 탐험과 관련된 아이템들은 자신의 위상과 능력을 과시하는 도구였던 것이죠. 아마도 이런 관점에서 허세의 아이템으로 감독은 천체 망원경을 거실에 넣었던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일부 평론가들은 히치콕의 '이창'에 대한 오마쥬라는 의견도 있는데,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마지막으로 거실을 장식하고 있는 주요 아이템으로 오디오가 있습니다.

자동차와 오디오는 남성들의 영원한 소망 중 하나이죠. 그렇다 보니 패트릭의 아파트에서도 빠질 수 없는 필수 아이템인데요, 지금과 달리 TV의 사이즈가 충분치 않아서 인테리어적인 요소로 사용하기 힘들었던 80년대와 90년대 초까지는 HiFi 시스템의 인테리어적 요소가 더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거실의 모서리에 당시 세련된 디자인으로 유명했던 영국 KEF의 스피커가 서있습니다.

KEF 105/3


지금 기준으로는 너무나 평범해 보이는 디자인이지만 오디오 업계에 놀라운 디자인들은 아쉽게도 영화의 배경인 1988년을 지나서 출시되기 시작합니다.  


1993년에 영국 B&W에서 Nautilus란 스피커가 등장하고


1996년에 그 유명한 B&O의 Beosound 9000이 등장하죠.



당시 유행에 따라 유리 선반으로 되어 있는 거실 중앙의 오디오 장을 보면 이퀼라이저에 카세트 데크라는 지금은 사라진 박물관 아이템이 잘 모셔져 있습니다.

오디오 시스템 상단에는 당시로는 최첨단 음원이었던 CD가 가지런히 수집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패트릭의 거실은 이처럼 미술과 음악이라는 예술의 양대 축을 모두 인테리어 요소에 녹여내고 있는데, '양 들의 침묵' '한니발' 등에서는 이러한 예술에 대한 주인공들의 감각을, 사이코 패스인 주인공들의 예민한 성격 묘사를 위해 사용한 반면, '아메리칸 사이코'에서는 겉으로 보이는 위선으로 인해 자신의 본질을 점차 잃어버리는 가식적인 현대인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여기까지 거실의 인테리어에 사용된 가구와 오디오 그리고 여러 소품을 살펴보았는데요, 

혼자 사는 남자의 집이지만 마지막으로 살펴볼 키친의 인테리어적 완성도 역시 꽤나 높습니다.

냉장고를 비롯한 부엌가전제품들을 보면, 완벽하게 부엌가구와 일체형으로 Built-in 되어 있고, 전면부가 스테인리스 스틸로 된 아주 모던한 제품들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미국 Viking의 Ultraline 시리즈들은 한국에서도 럭셔리 혼수 아이템으로 유럽의 명품 가전들과 경쟁 중인 아이템이죠. 미러링 된 전면부의 스테인리스 재질이 브랜드의 트레이드 마크로 패트릭의 아파트처럼 모던한 느낌을 주는 인테리어에 적합한 디자인 같습니다.





패트릭의 공간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 보았는데 영화의 시간적 배경에 잘 어울리는 가구와 소품들을 미니멀 스타일로 완성도 높게 인테리어를 해내고 있습니다.


미니멀 인테리어 스타일을 생각하면 항상 떠 오르는 재미있는 장면이 있습니다.

영국 국민 코미디 드라마인  Absolutely Fabulous에 나오는 바로 이 장면인데요, 


아주 극도로 세련된 두 미니멀리스트가 결혼을 해서 꾸며놓은 미니멀리즘 인테리어에 대한 풍자가 어떻게 느껴지시나요?


 샌더슨 벽지로 우리에게 유명한 영국의 샌더슨 경은 인테리어에 대해서 '방은 그 방이 꼭 필요로 하는 기능이 포함된 물건만 가지고 인테리어가 되어야 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19세기에 꽤나 유명한 경구였는지 마르셀 프루스트도 자신의 책 서문 중에 자신의 방에 관한 글을 쓰면서 이 글을 묘하게 인용하고 있습니다.


즉  '최소한 그 방에 기능적으로 필요한 물건은 인테리어적으로 반드시 필요하다'라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아무리 미니멀리즘적 인테리어라 하더라도  우리가 삶을 영위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제품의 본질을 디자인적으로 잘 뽑아내겠다는 뜻이지,  저 위의 코미디처럼 그저 아무것도 없는 심플하고 간결한 걸 뜻하는 건 아니겠지요.


항상 느끼는 점이지만, 사이코패스들이 등장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그들의 뛰어난 감각과 안목에 상당히 놀라게 됩니다. 과연 정말로 그들이 그렇게 뛰어난 감각을 가지고 있는 걸까? 아니면 평범한 인간과 너무도 다른 그들의 특이성(예민함, 폭력성 등)을 강조하기 위해, 보통의 우리가 가지고 있지 못하는 특징들을 부여해 그들의 결점을 더 부각하려는 걸까 라는 의문이 드는데요,


오늘 살펴본 아메리칸 사이코의 주인공 패트릭의 인테리어와 패션에 대한 감각 역시  영화에서 그가 보여주는 비인간적인 광기만큼이나 끝판왕을 달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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