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든지 눈에 띄는 '아시안 가족'
내가 살던 곳은 오하이오와 미시간 경계에 있는 작은 도시였다. 도시가 주로 백인들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나는 학교, 교회, 사회에서 몇 안 되는 아시안이었다. 나와 우리 이모네 가정은 어디에 가든 눈에 띄는 '아시안 가족'이었다.
우리 학년에는 딱 한 명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인 남자애가 있었다. Asian American 또는 2세라고 불리는 이 친구와 나는 서로 일 년 넘게 말조차 걸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내가 학교에 오자마자 친구들은 한국인 남자애에게 외모가 비슷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너의 여자친구가 왔다."라며 짓궂게 놀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시선들을 의식해 말을 걸거나 아는 척을 하지 않고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좋은 친구가 되어 한국과 미국을 정서적으로 나눌 수 있었지만, 우스갯소리로 “우리 더 빨리 친해졌을 수도 있었을 텐데! “라며 아쉬워하곤 했다.
하루는 같은 학년 친구들과 사진을 찍게 되었다. 그냥 일상을 담는 그런 캐주얼한 사진촬영이었는데, 몇몇 친구들은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사진을 찍는다며, 손가락으로 눈을 찢는 행동을 했다.
그 시기에는 다양성, 포용성과 같은 단어가 많이 쓰이지 않던 때였고, 차별이 있더라도 대놓고 그것을 문제 삼거나 인종차별이라고 쉽게 여기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큰일이 날 테지만, 그때는 의아해하며, 당황해하며 그저 그 순간을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