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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mileHee Oct 01. 2024

다시 찾고 싶은 이메일

아빠와의 추억을 쌓게 해 준 이모부


아버지께서 암 투병을 시작하시고 몇 달 지나지 않아, 나는 미국 이모네로 오게 되었다. 당시에는 1년을 생각하고 시작한 유학 생활이었지만, 영어를 더 배우기 위해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모두 미국에서 다니게 되었다. 그때 가족과 떨어져 지낸 것은 처음이었는데, 막내 이모와 친분이 두터웠던 나는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크게 집중하지 못했다. 매우 비싼 국제전화 요금도 한몫하여 자연스럽게 연락을 덜 하게 되었다.


그런 생활이 지속되던 중, 이모부께서 내가 한국의 가족과 어떤 연락을 유지하고 있는지 물어보셨다. 나는 당시 전화는 자주 하지 않지만, 간간히 방명록 글과 이메일로 소통하고 있고, 바쁘다 보니 연락을 잘 못할 때도 있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이모부께서는 상황의 심각성을 아시고, 가족과 자주 소통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특히나 아픈 아빠와는 이 시간이 유한할 수 있으므로 더 자주 소통하기를 바라셨다. 나는 그 당시, 그렇게 말씀하시는 이모부께 많이 서운했다. 우리 아빠는 괜찮으실 텐데, 왜 더 안 좋게만 이야기하시는지 서운했고, 사실 누군가와의 이별은 더욱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경각심이 들어 아빠와 더 자주 이메일을 주고받게 되었다.




그 후로 아빠에게 학교 생활도 이야기하고, 아빠는 성경 말씀도 나눠주시며, 나의 소소한 일상에 정성껏 답장을 해주셨다. 지금 동생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빠는 익숙하지 않은 컴퓨터로 독수리타법을 하며 장시간 컴퓨터 앞에 앉아 계셨다고 한다. 그렇게 우리의 이메일 개수는 자연스럽게 늘어났고, 아빠와의 추억도 많이 쌓였다. 목소리는 자주 들을 수 없어도, 이메일로 아빠와 더 친해진 기분이었다. 우리 아빠는 첫째인 나에게 특히 엄격하셨는데, 이메일에서는 그런 모습보다 내 이야기에 잘 반응해 주는 아빠가 더 부각되었던 것 같다.




그때는 이모부께 서운한 마음이 컸지만, 아직도 그때의 이메일이 생각나고 찾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나에게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은 굉장히 먼 이야기였고, 실감이 나지 않던 어린 나이였다. 하지만 그때 이모부가 하신 말씀은, 혹시나 내게 그런 소중한 추억조차 남지 않을까 봐 매우 우려하셨던 것 같다.


실제로 아빠의 투병 생활은 그리 길지 않았는데, 아빠와의 추억을 쌓게 해 준 이모부께 감사하고, 그 이메일은 내 마음속에 무엇보다 깊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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