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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캐리 Aug 16. 2024

나도 선재 업고 튀고 싶어요.

소녀와 어른, 그 사이에서.


부는 바람이 뜨거워지는 게 느껴져 이제 진짜 여름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봄은 정신없이 지나갔고, 그동안 나는 또 사이버대 한 학기를 마쳤다. 방학이 시작되었고, 모든 핑계를 다 없애고 다시 본업인 작가지망생으로 돌아와야 하는 시간이었다.








내가 정신없이 수업을 듣고 일을 하며 공모전을 준비하는 동안 <눈물의 여왕>이라는 드라마가 크게 히트했다. 이 작품은 tv드라마가 시청률이 아무리 나온다고 해도 재밌게 만들면 여전히 20퍼센트가 넘는 시청률이 나올 있다는 것을 보여준 드라마였다. 물론 결말이나 전개에 대한 호불호가 있기는 했지만, 그런 여론 역시 인기가 없으면 나올 수는 없는 것이었다.


희한하게 시청률은 5%대였지만, 미친 영향력을 끼친 드라마도 한편 있었는데, 그게 바로 <선재 업고 튀어>였다. (tvN/극본 이시은 연출 윤종호, 김태엽/김혜윤, 변우석, 송건희 등 주연)


드라마가 성공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잘 짜인 대본과 연출, 배우의 연기력, 매력, 뭐 그런 뻔한 요소들 말고 진짜 중요한 요인은 뭘까. 시청률이 5%밖에 나오지 않았는데, 전국이 선재로 들끓은 이유는 뭘까. SNS를 타고 유명해진 작품이라는 걸 감안해도 완벽히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내가 인스타그램을 사용한 지도 어느덧 10년이 되었는데, 그동안 나온 드라마가 몇 편인데, 왜 이 드라마만 이렇게 난리인 건지 너무도 궁금했다.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싶어 밤을 새우며 고민해 봤지만, 정답을 찾을 순 없었다. 그래, 그걸 알면 내가 이러고 있겠냐고.








변우석이라는 배우가 캐스팅되기까지 너무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변우석 이전에 이 작품을 제안받았던 다른 배우들이 그저 그런 하이틴 로맨스물이라고 생각해 모두 거절했고, 결국 이 엄청난 작품은 10년 동안 무명이었던 배우에게 돌아갔다.

분명 변우석이라는 배우가 가진 매력이 이 드라마의 성공 요인 중 하나였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우리가 사랑하는, 특히나 내가 너무도 사랑하는 나만 사랑해 주는 잘생긴, 그 와중에 피지컬이 기가 막힌 순정남을 너무도 잘 표현했다. 데뷔 10년 만에 자신에게 맞는 역할을 찾았다고 밖에는 표현하지 못하겠다.








나는 <선재 업고 어>를 보며 나의 아이돌을 생각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부터 좋아했던 나의 아이돌을 마음에 품은 지 벌써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니까 나에게는 지금도 '두준업고튀어'가 너무도 절실한 것이다. 뭐, 누구나 그런 존재 하나쯤은 있잖아요?

나도 늙고 그도 늙고, 우리 모두 나이 들어갔지만, 나는 TV 속의 그를 볼 때마다 내가 아직 19살의 소녀라고 믿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나에게 영원한 오빠였고, 그를 좋아하는 마음은 늘 어린아이 같았으니까.


지난 5월은 나에게 특별했다. 15년 만에 처음으로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에 가게 되었으니 말이다. 콘서트 한 번에 티켓값, 기차표값에 이런저런 비용으로 꽤 많은 돈이 들었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19살의 소녀가 아니었고, 이제 콘서트 한 번 정도는 볼만한 여유가 생긴 30대였다.

험난했던 티켓팅을 성공하고 자랑삼아 대학 동기들에게 드디어 콘서트를 가게 되었다고 전했을 때, 한 친구는 둘째 아이 임신 소식을 전했다. 나는 이상한 괴리감과 민망함을 느껴 얼른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콘서트 이야기는 다시 꺼내지 않았다. 누구는 벌써 아이가 둘인데, 단 하루 콘서트에 몇 십만 원을 쓰는 나는, 잘못 살고 있는 걸까. 그래, 어느새 나는 아이돌 가수를 좋아한다고 말하기에도 민망한 나이가 되었구나. 나는 그렇게 애매한 어른이 되었구나. 이런 생각이 드니 조금은 착잡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생의 착잡함을 달래기엔 또 덕질만 한 게 없었다.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미소를 띠게 하는 것이 스타였다. 그의 미소 단 한 번에 나는 또 녹아요. 녹아...

나는 또 언젠간 내가 진짜 작가가 되면 내 드라마의 첫 주인공으로 꼭 윤두준이라는 배우를 선택할 것이라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내 주위의 친구들은 하나둘씩 결혼을 했다. 아이를 낳은 친구도 여럿이었다. 나는 내가 느리다는 걸 어느 순간부터 그냥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직은 젊은 나이라고, 벌써 결혼하는 애들이 그냥 빠른 거라고 생각하고 말았지만,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는 내가 느린 거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별다른 위기의식을 느끼지는 않았다. 연애는 여전히 어려운 분야였고, 그리 열정적으로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결혼은 더더욱 그랬다. 지금도 왜 결혼이 좋은 건지 잘 모르겠다. 여전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었다.

그래, 애둘맘이 있으면 아이돌맘이 있는 거지. 그게 뭐 이상한가. 어쩌라고요. 내 돈 주고 내가 공연 좀 본다는데. 인생 뭐 별 거 있습니까. 잘생긴 얼굴이나 보며 힐링하는 거지. 철없어 보여도 어쩔 수 없었다. 이게 나고, 내가 좋아하는 걸 다 하고 죽자는 것이 나의 인생 가치관이었으니까.








<선재 업고 튀어>는 첫사랑을 소재로 하여 하이틴 로맨스를 버무린, 거기에다 타임슬립과 범죄 스릴러까지 끼얹은 작품이다. 복잡해 보이지만 관통하는 메시지는 단 하나다.


만날 사람은 언젠가 만나게 되어있고, 기억을 지워도 사랑은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


나는 메시지가 좋았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고귀하고도 슬픈 일이다. 솔과 선재는 서로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날 만큼 서로를 사랑했다. 연애니 결혼이니 이딴 건 다 관심 없었지만, 그 슬프고도 고귀한 감정을 느껴보고는 싶었다. 그리고 감정을 모두 작품에 쏟아내고 싶었다. 나는 비록 애매한 어른으로 성장했지만, 내가 가진 사랑에 대한 가치관, 15년 동안 한 가수를 좋아하는 순정, 사람들의 머릿속에 박히는 드라마를 만들고자 하는 나의 열정이 나의 작품을 만들어 줄 것이다.

비록 조금 느리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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