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넷, 유럽 돌바닥에서의 기록 3

세 번째 기록- 드디어 신트라

by 릴리코이

유일하게 리스본에서 가고 싶은 곳이 있었다. 나는 드 넓은 들판을 보고 싶었다. 리스본 옆동네 신트라에는 내가 찾던 들판, 바람이 있는 곳이다. 새벽에 깨어 날씨만 계속 찾아봤다. 밤 10시에 잘 자고 아침에 깬 지 벌써 이틀째. 기차역으로 향하는데 유럽의 해는 내가 겪어본 그 어떤 해보다 뾰족하고 명도가 밝다. 그럼에도 나는 선글라스를 끼고 싶지 않다. 본연의 색을, 나는 보고 싶다.


오늘 처음 안 포르투갈어. Hora. 시간. 지금은 기차 안, 창문 밖을 보고 있다. 10분 뒤 기차는 출발한다. 어느 외국인 가족은 기차 앞을 서성이다 다시 발걸음을 돌린다. 여기는, 어리둥절한 나도 괜찮다. 푸른 눈 외국인들도 나와 똑같다. 나와 똑같이 모른다. 지하철, 기차 문은 내가 스스로 버튼을 눌러 여는 건데.. 가지 마요. 열차 출발 소리가 들리고 창문 밖 사람들은 뛰어오다 결국 열차는 출발하고 만다. 30분 일찍 온 것이 괜스레 억울했었는데.. 감사한 일이구나.

윽, 역방향으로 앉았다. 지나온 것을 볼 좋은 기회가 되겠군.

하늘만 보면 리스본이나 한국이나 하늘색은 같다. 이제껏 내가 본 포르투갈은.. 그들의 삶이다. 화려하고 멋지고 예쁜 그런 곳이 아니라, 이곳도 사람들은 돈을 벌고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 그런 삶을 나는 봤다.


기차에서 내려 버스를 탄다. 무어 캐슬에 갈 생각이 없었는데, 페나성보다 먼저 내리길래 엉겁결에 내렸다. 등산을 몇 분 하다 보면 내 눈앞에는,

보고 있어도 안 믿기는 그런,

숲, 하늘, 구름, 바람, 집 너무 좋아서 눈물이 다 났다. 왜.. 그냥 이렇게, 그냥 좋아서 웃는 나 자신을 내가 발견하고 눈물이 났다.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감정들이 나를 가득 채웠다.


지금은 호카곶 들판이다. 가족, 연인과 사진을 찍고 돌아가는 들판에 나는 가만히 앉아 펜을 들었다. 들판이 곧 땅이고, 구름은 곧 하늘이다. 전부 멈춰있고, 사람들과 바다만 움직이는 것 같다. 내 눈앞에 있는 게 사진 같다. 지금의 나도 이 자연들과 함께 멈춰있는 것 같다. 24살의 나, 그대로. 나는 말을 안 하는 편이 편안한 사람인 것 같다. 아무 생각이 안 드는 이 느낌이 참으로 평화롭다. 생각보다 혼자 온 여행객은 많지 않다. 나는 이번 여정에서 목표? 바람이 있었다. 몇 살이냐고 물으면 똑 부러지게 24살이라고 대답해야지! 지금도 내 24살 시계는 흘러가버리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 누구도 묻지 않는다....

유럽의 끝. 호카곶

해가 지는지 더 뜨겁고 뜨겁게 오른쪽 얼굴을 달군다. 눈 앞에 바닷물이 맥주잔 위에 뭉글뭉글한 크림 같다. 슬로모션으로 파도가 움직인다.

포르투갈에 오길, 참 잘했다.


바다마을이라 시골 일 줄 알았지만 가장 세련된 카스카이스

지금은 카스카이스. 호카곶에서 놓친 버스를 30분 기다리며 집으로 되돌아갈까 카스카이스를 들릴까 고민 많이 했는데, 정말로 오길 정말로, 잘했다. 음악, 청량하고 깨끗한 거리, 행복한 사람들, 피리피리 치킨(아직 맛보기 전이지만) 너무 행복하다. 아, 친절한 웨이터도.

천국이여..

아쉬운 것 딱 하나는 노을 지는 바다를 보지 못한 것. 레스토랑에서 거리공연을 보느라 바다를 가지 못했다. 아, 이곳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피리피리 소스는 기름 섞인 매운 다홍색 소스라는 것을 알았다.

떠나고 싶지 않다 한국으로. 아직 3일밖에 안 지났는데 벌써부터.


기차역에 도착했는데 기차가 당장 출발할 기세다. 말도 안 되는 영어로 역무원에게 이 기차가 호시우에 가냐고 물었더니 (예상하기로) 호시우에서 10분 거리인 근처에서 내리는 기차라고 했다. 에라 모르겠다. 어떻게든 도착하겠지. 내 좌석 반대편엔 외국인 커플이 뽀뽀를 하고 난리가 났다. 서로를 너무 원하고 사랑하는 모습. 내겐 문제가 뭐였기에 저런 사랑을 하지 못했을까. 나도 저렇게 누군갈 원하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인데.. 카스카이스에 진정한 내 사랑과 함께 수영하러 다시 오고 말 거다.


리스본, 첫날엔 궂은 날씨에 자꾸 이곳이 미웁고 괜히 왔다 싶었지만, 너무 잘 왔다.

행복하고, 평화롭고, 시원하고, 따사롭고, 자유롭고, 낭만적이다.

호스트 줄리가 회사에서 들어와 내게 하루가 어땠냐고 물었다. 나는 surprising and wonderful day.라고 대답했다.

정말로, surprising and wonderful day!

자꾸 뒤돌아보게 하는, 보고 또 봐도 아쉽고 아까운, 그런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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