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기록- 벨렘 너 나 싫어하지
새벽이면 알람 없이 잠을 깬다. 기분 좋다. 하루하루 내가 원하는 대로 계획을 하고 그 하루가 지나가는 것이 기쁘다. 쓸모없는 말은 하지 않고, 듣고, 대답하고, 내가 꼭 필요한 말만 하고. 이런 삶이 좋다. 완전히 혼자인 삶이. 의지할 사람이 없어도 혼자 잘 느끼고, 즐기고, 나를 지킬 수 있다. 나는 혼자서도 잘한다. 혼자서도 잘 해낸다.
지금은 패스트리 드 벨렘. 세계 최초의 에그타르트 집. 배고파서 흡입한 탓에 맛을 표현 못하겠다. 3개 흡입. 2개가 내 앞에 남았다. 일단, 단맛이 강하지 않고 부드럽고 은은하다. 페스트리는 말 그대로 페스트리. 다만 무지 빠삭하고, 딱딱하지만 입에서 겹겹이 바스러진다. 한국에서 먹은 에그타르트와는 정말 다르다. 카푸치노 위에는 생크림이 올라가 있다. 부드럽고 따듯하다.
에그타르트 집 줄을 섰을 때, 내 뒤에 서있는 중년 일본인 부부가 내게 일본어로 뭘 물었다. 나는 what..?이라 했고, 그들은 내가 일본인인 줄 알았다고 수줍은 목소리로 답한다. 그러고 빨리 자리에 앉고 싶은지 아님 급한 일이 있어 보인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내가 그들에게 seat together?(같이 앉을래?) 했더니 화사하게 웃던 그들. 하지만 옆 테이블이 바로 비어 우리는 테이블 두 개에 나눠 앉았다. 기분이 좋다. 새로운 대화, 새로운 사람, 새로운 맛, 공기, 바람, 건물, 그리고 나.
제로니무스 수도원 줄이 비정상적으로 길어서 반대편 벨렘 탑으로 보이는 곳으로 왔다. 학생 할인으로 3유로인가에 들어갔는데.. 음, 별게 없었다.(예상대로) 그렇지만 또 새로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다. 첫 번째로는 중년 미국인 부부... 서울 올림픽에 왔었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그 이후론, 알아듣지 못했다.. 신혼 유럽인 커플은 내게 사진을 부탁해 인생 샷을 찍어줬고, 중년 일본, 유럽 국제부부는 어디선가 날 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들 전부는 친절하고 정중하고, 행복해 보였다. 어떤 중국인 아저씨에게 사진을 부탁하고, 나도 찍어주고, 조용히 풍경을 찍던 혼자 온 백인 할아버지께 부탁드려 사진을 찍고, 무지 귀엽게 생긴 여자 중국인에게 부탁을 받아 사진을 찍어주고. 오늘은 새로운 사람과(그것도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 대화를 많이 하는 하루.
완전히 새로운 날!
약 40여분을 기다려서 제로니무스 수도원에 들어왔는데, 내가 딱 생각한 그 그림이다. 예배당을 찾아 삼만리인데 뱅뱅뱅 뱅 돌아도 없다. 뭔가 여기 공원에 앉아 글을 쓰니 캠퍼스에 앉아 공부하는 대학생이 된 기분이다. 다리가 너무 아프다. 많이 돌아다니지도 않았는데, 피로가 쌓인 건지, 줄 선 시간이 힘들었던 건지.. 이따가도 28번 트램을 탈 생각인데 그 줄을 기다릴 생각에... 정신이 혼미하다.
벨렘은 날 생각보다 힘들게 했지만 에그타르트로 모든 것을 용서한다. 오늘은 버스도 아무거나, 트램도 아무거나. 휴, 역시 알아보지 않고 무작정 바보처럼 하면 돈이 두배로 들어간다. 우여곡절 끝에 28번 트램을 탔지만, 내가 탄 것은 종착지 바로 전. 결국 요금을 또 내고 다시 되돌아가야 하는 트램을 탔다.
트램에 타고 있으면, 내가 리스본에 속한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내가 이 도시를 완성하는 느낌, 나 또한 리스본의 구성품(?) 이 된 것 같다. 리스본은 혼자 오기엔 너무나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곳이다.
오늘은 글을 더 이상 쓰기 싫다.
호시우 역에서 노숙자에게 사기당하고, 소고기를 사러 갔는데 잔돈을 1유로 덜 주고, 어떤 파키스탄인이 골목까지 쫒아오고, 고단한 하루, 자려는데 옆방에선 티브이 소리가 전부 다 들리고.
내가 한없이 작아지고 안 예뻐 보이거나 사람들이 날 좋아하지 않는 것 같고.
여행이 훨씬 넘게 남았는데 나, 어떡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