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넷, 유럽 돌바닥에서의 기록 4

네 번째 기록- 벨렘 너 나 싫어하지

by 릴리코이

새벽이면 알람 없이 잠을 깬다. 기분 좋다. 하루하루 내가 원하는 대로 계획을 하고 그 하루가 지나가는 것이 기쁘다. 쓸모없는 말은 하지 않고, 듣고, 대답하고, 내가 꼭 필요한 말만 하고. 이런 삶이 좋다. 완전히 혼자인 삶이. 의지할 사람이 없어도 혼자 잘 느끼고, 즐기고, 나를 지킬 수 있다. 나는 혼자서도 잘한다. 혼자서도 잘 해낸다.


에그타르트 5개는 기본 아닙니까

지금은 패스트리 드 벨렘. 세계 최초의 에그타르트 집. 배고파서 흡입한 탓에 맛을 표현 못하겠다. 3개 흡입. 2개가 내 앞에 남았다. 일단, 단맛이 강하지 않고 부드럽고 은은하다. 페스트리는 말 그대로 페스트리. 다만 무지 빠삭하고, 딱딱하지만 입에서 겹겹이 바스러진다. 한국에서 먹은 에그타르트와는 정말 다르다. 카푸치노 위에는 생크림이 올라가 있다. 부드럽고 따듯하다.

에그타르트 집 줄을 섰을 때, 내 뒤에 서있는 중년 일본인 부부가 내게 일본어로 뭘 물었다. 나는 what..?이라 했고, 그들은 내가 일본인인 줄 알았다고 수줍은 목소리로 답한다. 그러고 빨리 자리에 앉고 싶은지 아님 급한 일이 있어 보인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내가 그들에게 seat together?(같이 앉을래?) 했더니 화사하게 웃던 그들. 하지만 옆 테이블이 바로 비어 우리는 테이블 두 개에 나눠 앉았다. 기분이 좋다. 새로운 대화, 새로운 사람, 새로운 맛, 공기, 바람, 건물, 그리고 나.


P20181102_191204394_AF1897C2-31C8-4D60-80EE-9D57517B5499.jpg 이 때 줄을 섰어야 했다

제로니무스 수도원 줄이 비정상적으로 길어서 반대편 벨렘 탑으로 보이는 곳으로 왔다. 학생 할인으로 3유로인가에 들어갔는데.. 음, 별게 없었다.(예상대로) 그렇지만 또 새로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다. 첫 번째로는 중년 미국인 부부... 서울 올림픽에 왔었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그 이후론, 알아듣지 못했다.. 신혼 유럽인 커플은 내게 사진을 부탁해 인생 샷을 찍어줬고, 중년 일본, 유럽 국제부부는 어디선가 날 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들 전부는 친절하고 정중하고, 행복해 보였다. 어떤 중국인 아저씨에게 사진을 부탁하고, 나도 찍어주고, 조용히 풍경을 찍던 혼자 온 백인 할아버지께 부탁드려 사진을 찍고, 무지 귀엽게 생긴 여자 중국인에게 부탁을 받아 사진을 찍어주고. 오늘은 새로운 사람과(그것도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 대화를 많이 하는 하루.

완전히 새로운 날!

예쁘긴 예뻤지만,

약 40여분을 기다려서 제로니무스 수도원에 들어왔는데, 내가 딱 생각한 그 그림이다. 예배당을 찾아 삼만리인데 뱅뱅뱅 뱅 돌아도 없다. 뭔가 여기 공원에 앉아 글을 쓰니 캠퍼스에 앉아 공부하는 대학생이 된 기분이다. 다리가 너무 아프다. 많이 돌아다니지도 않았는데, 피로가 쌓인 건지, 줄 선 시간이 힘들었던 건지.. 이따가도 28번 트램을 탈 생각인데 그 줄을 기다릴 생각에... 정신이 혼미하다.


벨렘은 날 생각보다 힘들게 했지만 에그타르트로 모든 것을 용서한다. 오늘은 버스도 아무거나, 트램도 아무거나. 휴, 역시 알아보지 않고 무작정 바보처럼 하면 돈이 두배로 들어간다. 우여곡절 끝에 28번 트램을 탔지만, 내가 탄 것은 종착지 바로 전. 결국 요금을 또 내고 다시 되돌아가야 하는 트램을 탔다.

트램에 타고 있으면, 내가 리스본에 속한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내가 이 도시를 완성하는 느낌, 나 또한 리스본의 구성품(?) 이 된 것 같다. 리스본은 혼자 오기엔 너무나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곳이다.

트램을 타고 가면 보이는 리스본 거리

오늘은 글을 더 이상 쓰기 싫다.

호시우 역에서 노숙자에게 사기당하고, 소고기를 사러 갔는데 잔돈을 1유로 덜 주고, 어떤 파키스탄인이 골목까지 쫒아오고, 고단한 하루, 자려는데 옆방에선 티브이 소리가 전부 다 들리고.

내가 한없이 작아지고 안 예뻐 보이거나 사람들이 날 좋아하지 않는 것 같고.

여행이 훨씬 넘게 남았는데 나,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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