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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IMI Aug 16. 2019

인도 여행 35. 잊지 못할 강렬한 색채

2019. 2. 6.

거대한 바위산 위로 높게 솟아있는 메헤랑가르 요새 아래의 게스트하우스 루프탑에서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아침을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큰 머그컵을 가득 채운 따뜻한 밀크커피는 생우유를 많이 넣어 부드럽다. 양이 줄었는지 오믈렛과 토스트 세 조각도 많게 느껴진다. 그냥 이렇게 여기에 앉아서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쉬고 싶지만, 요새에서 블루시티 조드푸르를 봐야만 한다는 의무감으로 발걸음을 뗀다.     


치열한 항쟁의 역사, 메헤랑가르 요새  Mehrangarh Fort

요새의 정문까지는 채 10분이 걸리지 않는다. 잘 다듬어진 돌로 만든 경사로 길은 조금 힘들지만 오르는 재미가 있다. 단체로 온 서양인과 중국인들이 많이 눈에 띈다. 한국인에게 조드푸르의 메헤랑가르 요새는 영화 「김종욱 찾기」의 영향으로 매우 유명하게 된 곳으로 인도를 오는 여행하는 이들이 꼭 한 번씩 들르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한국어로 된 오디오 가이드를 빌릴 수 있다. 중요한 장소마다 적혀있는 번호를 누르면 낭랑한 목소리의 한국인이 요새를 자세히 설명해준다.

요새는 조드푸르의 창립자인 라오 조다(Rao Jodha) 이후 500년에 걸쳐 후손들에 의해 궁전들과 구조물들이 확장되었다고 한다. 메헤랑가르는 「태양의 후예」라는 뜻으로, 조드푸르 왕가는 태양의 신 수리아로부터 유래되었다는 신화를 갖고 있다. 요새가 건설되는 동안 산에 살고 있던 은둔자에 의해 저주를 받았다고 한다. 은둔자는 가뭄의 위협으로 조다를 저주했으며, 은둔자를 달래기 위해 조다는 재단을 만들고 현지인을 생매장했다는 유혈의 전설도 내려오고 있다.

요새의 입구에는 웅장한 일곱 개의 성문이 있는데 각각 다른 통치자에 의해 만들어졌다. 성문들은 자야 폴(Jaya pol), 파테 폴(Fatteh pol), 고팔 폴(Gopal pol), 바론 폴(Bhairon pol), 데드 캄그라 폴(Dedh Kamgra pol), 마르티 폴(Marti  pol), 그리고 로하 폴(Loha pol)이라고 불린다. 승리의 문으로 불리는 「자야 폴」은 만 싱(Maharaja Man Singh)이 자이푸르(Jaipur)와 비카너(Bikaner) 를 상대로, 「파테 폴」은 무굴 제국에 대한 승리를 기념하는 문으로 강인한 라자스탄의 기상을 보여주고 있다. 

아이론 게이트(Iron Gate)라고 불리는 「로하 폴」의 문에는 코끼리의 공격을 막기 위한 커다란 쇠못이 박혀 있으며, 성벽에는 1843년 만 싱을 따라 장작불 위에서 사티(Sati)라는 이름으로 산 채로 죽임을 당해야만 했던 미망인들의 손도장이 찍혀 있다. 사티는 자신의 아버지가 시바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스스로 불길에 뛰어들어 죽음을 택하였으나 후에 시바에 의해 환생되었다는 시바의 첫째 부인이다. 힌두교를 믿는 그들은 사티는 힌두 여성의 의무를 행하는 신성한 관습이고, 불명예스럽게 사느니 차라리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는 라지푸트 특유의 강한 저항의 표현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런 소름 끼치는 만행은 인간의 잔인성과 종교의 폐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잔혹사이다. 남편을 따라 죽어야만 하는 잔인한 사티 풍습이 1829년에 영국인에 의해 불법화되었지만, 1987년 라자스탄의 데오랄라 마을에서 18세 과부에게 자행되었으며 이 의식으로 마을과 가족들은 명예와 부를 얻은 말도 안 되는 사건도 있었다. 힌두교는 이해하기도 어렵지만 종교의 본질적인 가치인 인간을 위한 종교라고 인정할 수 없다.

요새의 곳곳의 움푹 팬 포탄 자국들은 라자스탄에서 격렬했던 전쟁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다. 라자스탄(Rajasthan)은 라지푸트(Rajput)의 땅(Sthan)이라는 뜻이며, 라지푸트는 무사 또는 왕을 의미한다. 라지푸트는 수천 년 동안 라자스탄 지역 내 각자의 영토에 자신의 왕국을 세워 지배해온 세력으로, 다른 왕국의 침략을 막기 위해 자이푸르의 암베르 요새, 쿰발가르 요새처럼 엄청나게 높고 웅장한 성을 지었다. 16세기 무굴제국이 인도를 점령하기는 했지만 라자스탄만은 끝까지 저항했다고 한다.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하거나 전세가 불리해질 때 여자와 아이들은 불속에 몸을 던지고, 전사들은 죽음을 택했다는 조하르(Johar) 풍습이 있었던 것처럼 라지푸트의 자존심과 용맹함은 대단했다. 

메헤랑가르 요새는 벽에 붙여진 번호에 따라 동선이 확실하게 설정되어 있어 관람하기에 편리하다. 요새는 모티 마할(Moti Mahal), 풀 마할(Phool Mahal), 다울라트 카나(Daulat Khan), 쉬스 마할(Sheesh Mahal), 실레 칸(Sileh Khan)과 같이 웅장한 궁전과 훌륭하게 꾸며진 여러 개의 방이 있다. 모티 마할은 진주 궁전(Pearl Palace), 풀 마할은 꽃 궁전(Flower Palace)이라고 불린다. 거울 궁전(Mirror Palace)으로 유명한 왕의 침실 쉬스 마할은 거울 조각, 타일로 온 방안이 아름답고 황홀하게 치장되어 있다. 

현재 궁전들은 메헤랑가르 박물관(Mehrangarh Museum)으로 사용되고 있다. 내부로 들어가면 1952년 현 국왕의 대관식을 거행했던 스링가르 쵸크(Shringar Crowk)에서 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남자가 라자스탄의 긴 터번을 쓰는 방법을 시연하고 있다. 6개의 구역으로 나뉜 박물관은 골동품, 공예품, 예술 작품들로 가득 차 있다. 왕이나 왕족을 위한 코끼리 의자 하우다(Elephant's howdahs)는 코끼리 등에 올려진 2칸의 나무 좌석으로 금과 은으로 된 시트가 덮여 있다. 왕족이나 귀족 부인들에게 인기 있는 여행수단이었던 팔랑킨스(Palanquins)에는 매우 다양하고 정교한 가마들이 있다. 무기실(Armoury)에는 악바르와 같은 위대한 통치자들의 검과 에메랄드가 박혀 있는 방패와 금이나 은으로 덮인 총 등의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고, 회화실(Paintings)에는 라자스탄의 남서쪽 지역인 마와르(Marwar)의 아름다운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터번 갤러리(Turbans)에는 라자스탄 사람들이 착용하는 모든 종류의 터번을 볼 수 있다. 다울랏 카나(Daulat Khana)는 메헤랑가르 미술관의 보물을 모아 놓은 방으로 회화, 팔랑킨, 하우다, 직물, 무기, 생활용품 등 무굴 시대의 예술품이 잘 보존되어 있다. 

성 꼭대기에서 서쪽 성벽의 끝에 있는 차문다 사원(Chamunda Temple)으로 가는 성벽 길에서는 수천 채의 집들이 파란색으로 칠해져 있는 조드푸르의 멋진 전경을 볼 수 있다. 비록 옆에는 임수정이 없지만 낭만적이었던 영화의 한 장면을 보기 위해 올라온 보람이 있다. 푸른 카펫을 깔아놓은 듯한 조드푸르의 강렬한 색채는 인도 여행 후에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을 것 같다.     


멀리서 보아야 예쁘다

늦은 점심 후에 인상 깊었던 푸른 건물들의 속살을 보기 무작정 서쪽 편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파담사르 탈랍(Padamsar Talab)에 닿았다. 메헤랑가르 요새 서쪽 성벽의 바깥쪽에 빗물을 모아 만든 저수지이다. 바위 언덕 위에 우뚝 솟은 메마른 갈색의 사암 요새라는 이미지가 강해 푸른 하늘과 저수지가 데칼코마니처럼 펼쳐져 있는 색다른 풍경은 이곳의 모습이 메헤랑가르 요새인가 의심이 갈 정도이다. 

참 아름다운 곳이지만 물속에서 갖은 생활쓰레기가 보인다. 한참 동안 푸른 건물들의 속살을 보니 후회스럽다. 나태주 님은 풀꽃을 보며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라고 하였지만, 블루시티 조드푸르는 멀리서 보는 것이 더 예쁘다.      


사람 사는 맛이 나는 사다르 바자르  Sadar Bazaar

낮 시간 동안 메헤랑가르 요새의 남서쪽의 골목길을 다니다 보니 해가 떨어질 무렵에는 골목길이 끝나는 곳에 위치한 사다라 바자르에 도착하게 되었다. 외성 안에 있는 시장으로 구시가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이며 그 중심에는 20세기 초에 지어진 중세 스타일의 멋들어진 시계탑 간타 가르(Ghanta Ghar)가 서 있다. 

사람 사는 맛이 나는 활기찬 사다르 바자르 광장은 생활용품, 음식, 채소와 과일, 향신료, 인도 사탕, 직물, 은, 수공예품을 파는 여러 개의 좁은 골목길로 이어져있다. 구경 나온 서양인들이 눈에 자주 보이지만 대부분은 우리들의 5일장처럼 현지인들이다. 

30루피의 입장료를 치르고 시장의 명물인 시계탑에 오르니 시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북쪽으로는 멋진 자태의 메헤랑가르 요새가 떨어지는 낙조를 받으며 금빛으로 변하고 있다. 탑 안으로 들어가니 시계가 아직도 움직이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톱니바퀴와 와이어가 가득 차 있는 시계탑 속에서 3대째 시계를 작동시키고 있다는 다정한 Mohd 씨 부자를 만날 수 있었다. 그들만이 이 시계를 작동시킬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모습에서 소박하지만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시계탑에서 멀지 않은 곳에 구라브 사가르 탈랍(Gulab Sagar Talab)이 있다. 150m×90m의 넓이의 연못은 멀리 떨어진 발 사만드(Bal Samand) 호수에서 운하를 통해 물이 공급된다. 연못 주변으로 여러 개의 힌두교 사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중요하게 여기는 곳인 듯싶지만, 물은 더럽고 주변에는 쓰레기가 많다. 메헤랑가르 요새가 잘 보이는 뷰포인트이라 와 보았지만 스마트폰으로 감각적인 사진을 찍기에는 한계가 있다.      


김모한 식당과 한국인의 행태

김모한 식당을 찾았다. 맥주와 치킨을 즐기는 인도 대학생들, 소맥을 마시는 한국 청년들, 백인 6명, 인도 남편과 한국인 아내의 가족, 중국인 애인과 함께 하는 백인 노인, 그리고 내가 여섯 개의 모든 테이블을 모두 채우고 있다. 한국인 종업원이 한 명도 없는데 인도 아가씨는 “여기요”라며 종업원을 부른다. 

즐겨 찾은 인터넷 인도 카페에서는 김모한 식당에서 인종차별을 했다고 비난이 이어졌다. 하도 비난이 심하기에 인종차별 했다는 영수증을 자세히 살펴보니 인종 차별이 아닌 것이 확실해 보인다. 사진을 보니 C처럼 보이지만 두 번째 닭갈비 볶음밥의 D와 밑의 C와 비교해보니 D로 판단된다. 모한 씨가 말한 대로 칭챙총이 아니라 된장찌개로 적은 것이다. 

한국인이 자주 찾는 식당에서 어떻게 종업원들이 영수증에 칭챙총이라고 쓰겠는가? 이는 분명 한국인의 오해이다. 김모한 씨에 대한 비난이 꼬리를 물다 보니 부킹닷컴에 1,800루피로 나와 있는 커다란 방도 원래 가격이 600루피라며 사기를 쳤다고 비난을 한다. 인도를 잘 알고 있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회원조차도 그 주장에 동조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카페에서 자신의 다른 의견을 밝히면 여러 명이 가차 없이 원색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공격하는 경우를 여러 번 보았다. 사람마다 각기 다른 색깔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인터넷 카페에서 한국인의 손가락에서 가장 많이 만들어진 단어는 「사기」이다. 그동안 만난 인도인은 대부분이 좋은 사람들이었는데 「사기」란 단어로 그들을 일반화하고 있는 한국인들의 행태가 몹시 못마땅하다. 김모한 식당이 망하길 대놓고 바라는 한국인들이 여럿이 있지만 K-Pop처럼 한국의 브랜드 가치가 높아질수록 그것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슬람 사원의 확성기에서 울려 퍼지는 독경 소리가 온 도시를 휘감고 있다. 대다수가 힌두교 신자인 사회에서의 대단한 아집이며 배타적인 습성이다. 시끄러운 소리를 참고 있을 혹은 무시하고 있는 힌두교 신자들이 더 대단하다. 힌두교와 불교는 이슬람이나 크리스트교보다 좀 더 수용적인 듯싶다. 신보다 인간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종교가 진짜 종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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