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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IMI Aug 16. 2019

인도 여행 39.  달리고 싶다 3

2019. 2. 10. 

사막에서 솟아오른 누런 사암으로 지어진 거대한 자이살메르 요새가 아침 햇살을 받아 금빛으로 빛나는 경치는 오랫동안 기억될 만한 광경이다. 더구나 지금까지 거쳐 왔던 인도의 다른 대부분의 요새와는 달리 천년 동안 살아 있는 생동감은 별개의 아름다움이다. 

2종 보통면허로 우리나라에서는 125cc까지는 오토바이를 탈 수 있으나 외국에서 50cc 스쿠터를 운행하더라도 불법이라 출국을 앞두고 2종 소형 면허를 획득하였다. 500cc 로얄 엔필드(Royal Enfield)를 렌털 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100cc 스쿠터 혼다 나비(Honda Navi)가 딱 적당하다.      


맨 먼저 찾은 곳은 자이살메르 선셋 포인트이다. 저녁에 고성능의 DSLR을 가지고 오면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는 곳이지만 스마트폰이 전부라 잠시 챠트리에 앉아 주변을 살펴보았다. 멀찍이 20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사진을 찍으면서 가까이 다가가니 40대의 남자가 꽁지만 남겨둔 채 머리를 빡빡 깎고 있다. 

'아뿔싸!'

주변을 둘러보니 불타고 있는 장작더미가 보인다. 여기는 화장터이다. 얼른 촬영하던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출구 쪽으로 향했다.   

지금은 폐허로 변했지만 옛 라자스탄의 왕국의 영화를 느낄 수 있다는 쿨드하라(Kuldhara)와  카바 요새(Khabha Fort)를 거쳐 낙타 사파리를 했던 샘 샌 듄(Sam Sand Dunes)을 다시 찾고자 서쪽 방향으로 액셀을 힘껏 당겼다. 오랜만에 타는 스쿠터 혼다 나비는 운전하기 편하다. 경주용 바이크처럼 멋있게 생긴 나비는 시속 80km까지는 경쾌하게 치고 나간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마냥 달리는 것이 불안하지만 광활한 사막을 가로지르는 쭉 뻗은 아스팔트에서 혼자만의 질주는 매우 즐거운 경험이다. 군데군데 덤불들이 있지만 사방이 온통 황톳빛의 거친 황무지이다. 지평선의 끝인 저기쯤에 가면 새로운 풍경이 보일 것 같은데 저기쯤 가도 똑같은 지평선이 다시 눈앞에 펼쳐진다.      


갑자기 사라져 버린 마을, 쿨드하라  Kuldhara

쿨드하라로 들어가는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니 다섯 명의 어린아이들이 길을 막고 돈을 달라고 떼를 쓴다. 많이 해 본 솜씨이다. 아이들과 다툴 수 없어 주머니를 뒤지니 100루피만 보인다. 건방진 아이들이 거슬러준다고 계속 쫓아다니니 주기 싫어진다. 

13세기경 세워진 쿨드하라(Kuldhara)는 한때 팔리왈 브라만족(Paliwal Brahmins)이 거주하던 번영된 마을이었으나 18세기에 지진으로 인하여 버려졌다. 마을의 중심부에는 전통적인 라자스탄의 가옥을 재연한 꽤 괜찮은 집 한 채가 있다. 가족단위로 나들이 온 이십여 명의 관광객이 둘러보고 있다. 라자스탄 주정부는 10년 전부터 이곳을 관광지로 개발하기 시작했지만, 한때는 유령이 나오는 곳으로 유명하였다고 한다. 마을 곳곳에는 수백 채의 지붕이 사라지고 무너진 벽과 담 들, 줄지어 선 부서진 흙집들, 그리고 군데군데 쌓여있는 돌무더기들에서 사람의 온기는 찾을 수 없지만, 이곳도 한때는 따뜻한 사랑을 나누던 행복한 보금자리이었을 모습을 떠올려본다.     


유령도시를 지키는 카바 요새  Khabha Fort

다시 황량한 사막을 가로질러 카바 요새로 갔다. 요새 마을은 18세기 갑자기 사라져 버린 쿨드하라에 살던 팔리왈 브라만의 중요 지역이었다. 마을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수십 채의 건물들이 있고, 입구의 둥그런 우물에서는 낙타들이 목을 축이고 있다. 부서진 집이 늘어서 있고 사람의 활동이 정지되어 있는 유령의 마을을 따라가면 언덕 위에 세워진 요새가 있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재건축되어 잘 관리되는 듯하다. 요새 위에 오르니 시간을 초월하여 멈추어 있는 듯한 유령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일출이나 일몰을 보면 사막의 풍경과 어울려 꽤 장관일 것 같다.         


몸이 번쩍 들리고 쿵쿵 떨어지면서

카노이에 왔지만 낙타 사파리를 했던 물탱크 마을을 찾을 수 없다. 지도를 검색해보니 샘 샌 듄은 파키스탄 국경 쪽으로 쭉 이어져 있는 아스팔트 도로의 끝에 있으며, 지난번 낙타 사파리를 했던 곳은 샘 샌 듄의 외곽이다. 

샘 모래 언덕으로 한참을 달리다 다시 자이살메르 쪽으로 되돌아가다 보니 흰색 지프가 눈에 확 들어온다. 1시간의 지프 사파리가 1,200루피이다. 노련한 장사꾼의 눈에는 스스로 들어온 먹잇감에게 놓아줄 리가 만무하다. 비록 300루피는 깎았으나 이미 그에게 졌음을 인정하고 지프의 짐칸에 몸을 실었다. 큰길에서 조금 들어가니 바로 모래 언덕이다. 두 손으로 쇠기둥을 꽉 잡지 않으면 그대로 차량 밖으로 떨어질 수도 있어 잔뜩 몸에 힘이 들어간다. 몸이 번쩍 들리고 쿵쿵 떨어지면서 몇 개의 경사진 모래언덕을 거침없이 넘고, 때로는 거친 길을 힘차게 쭉 내달리는 지프 사파리의 엄청난 스릴감이 만족스럽다. 1세대 지프 랭글러처럼 생긴 4륜 구동 마힌드라 타르(Mahindra Thar)는 정말 탐나는 차량이다.  

자이살메르로 가는 길은 시원하게 뚫려 있다. 한 대의 차량이 고장으로 길가에 정차하고 도움의 손길을 요청한다. 외국이라 조심스럽지만 정차하니 아들을 자이살메르 초입에 있는 하누만 서클까지 태워 달라고 부탁한다. 간절한 아버지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아들을 태우고 자이살메르로 달린다. 뒤가 묵직하니 오히려 운전하기가 편하다.     


환상적인 선셋, 가디사르 호수  Gadisar Lake

스쿠터 반납 시간이 충분히 있어 가디사르 호수(Gadisar Lake)에 갔다. 사막의 오아시스일 것이라고 상상해 봤지만, 자이살메르의 초대 통치자인 라왈 자이살(Laja Rawal Jaisal)에 의해 건설된 인공 호수로서 한때 도시의 유일한 물 공급원이었다. 틸론 기 폴(Tilon Ki Pol)을 지나니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시바 사원과 챠트리, 그리고 가트가 호수를 둘러싸고 있다. 고요한 호수에 반쯤 잠긴 챠트리가 매우 독특하고 인상적이다. 남쪽의 개활지는 매우 넓어 스쿠터가 아니면 꽤 힘들다. 넓은 호수로 변해 꽤 아름다울 우기에 다시  오고 싶다. 수평선으로 내려앉는 태양이 호수를 붉게 물들이고 있다. 오랫동안 기억할 수밖에 없는 낭만적인 광경이지만 내 옆에는 아무도 없다.       


어리더라도 남자라면 의자에 앉아 음식을 먹는다

저녁을 위해 가지네로 와서 치맥을 주문했다. 아그라에서 엉터리 치킨에 실망한 적이 있어 우려했지만 한국에서 먹는 맛과 같다. 앞 건물의 넓은 정원에서는 얼추 1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석한 결혼식 피로연이 열리고 있다. 어리더라도 남자라면 의자에 앉아 음식을 먹는데 여자들은 귀퉁이의 바닥에 깔린 카펫 위에 여럿이 모여 손으로 먹는다. 우리나라에서 저런 모습이 없어진 지가 한참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2018년 세계경제포럼(WEF)에서 149개국을 조사하여 발표한 세계 성(性) 격차 지수가 한국 115위, 인도 108위라니 이해할 수 없는 결과이다. 무대에서는 라자스탄 악공들이 돌락(Dholak)을 연주하면서 축하 노래로 흥을 돋우고, 한쪽의 화덕에서는 난과 바비큐가 익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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