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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IMI Aug 16. 2019

인도 여행 37. 사막의 하룻밤

2019. 2.8. ~ 2. 9.

원빈을 만나고 싶었다

자이살메르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낙타 사파리로 유명한 업체는 원빈 사파리를 포함하여 가지네, 포티야이다. 원빈 사파리를 선택한 이유는 인도 여행을 준비하면서 EBS의 2010년 세계테마기행에서 보았던 당돌한 12살의 어린 낙타 몰이꾼 원빈 때문이었다. 인도 원빈으로 알려져 한국 여행객들에게 유명해지는 것이 소원이고, 한 달에 1,000루피를 받고 싶다고 했던 원빈을 보고 싶었다. 

늦은 아침을 먹고 숙소로 오니 원빈의 형제들이 매우 여유롭게 담소를 나누고 있다. 원빈은 이제 갓 스물을 넘은 나이이지만 수염을 기른 무슬림이라 도무지 나이를 가늠할 수 없다. 학교에 가고 싶지만 8형제 중에 여섯째로 태어나 돈을 벌어야 했다는 원빈이 EBS의 촬영 팀에게 선물로 받은 낙타 한 마리로 시작하여 지금은 호스텔까지 지닌 사업가로 변신하였으니 그가 한국인에게 친절한 이유로 충분하다. 어젯밤은 서운했었는데 카카오톡을 확인하지 않은 나의 불찰로 픽업 서비스를 받지 못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최고의 사막 호텔, 샘 샌 듄  Sam Sand Dunes

2시 30분쯤 되자 여섯 명의 서양인을 2열과 트렁크에 태운 지프가 나와 우연히 3번째 만나는 한국 청년 Jeong을 태우러 왔다. 두 명의 미국 아가씨, 상해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미국인 부부, 프랑스 청년, 호주 청년이 1박 2일 낙타 사파리 투어의 일행들이다. 한국인은 1,150루피이지만 다른 이들은 2,000루피라고 하니 대접받는 기분이다. 

우리가 가는 사막은 샘 샌 듄(Sam Sand Dunes)은 타르 사막 한가운데에 위치한 모래언덕으로 자이살메르에서 서쪽으로 약 40여 km 떨어져 있다. 10월부터 3월까지 낙타나 지프 사파리를 이용하여 일출과 일몰을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든다고 한다.  

지프를 타고 가는 1시간 가까이 불편했지만 길 양옆으로 펼쳐진 넓은 평원을 감상하다 보니 어느새 샘 샌 듄이 있는 카노이(Kanoi)의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커다란 원통형 물탱크 밑에서는 세 명의 아낙네가 물을 긷고 있고, 멀리서 낙타 몰이꾼이 오고 있다. 원빈의 형과 두 명의 중년 아저씨, 그리고 어린 시절 원빈 같은 꼬마 몰이꾼 섬세르가 우리들에게 오늘 사막의 밤을 경험시켜줄 고마운 이들이다.

낙타의 눈망울은 한없이 귀엽고 순진해 보인다. 낙타가 일어날 때 커다란 반동으로 등위에서 다들 놀라지만 이내 안장의 손잡이를 꽉 잡고 즐기려고 애쓴다. 그들의 몸은 뻣뻣하게 굳어있지만 얼굴은 환하게 웃고 있다. 낙타의 발걸음에 익숙해지자 커다란 DSLR을 목에 걸고 두건과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린 Jeong은 뒤에 잔뜩 쌓아 올린 담요에 기대고 연신 셔터를 누른다. 몰이꾼이 모는 길들여진 낙타이고 말을 타는 방법과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나로서는 어려움이 없이 주변의 경치를 즐길 수 있었다. 사막은 끝없이 펼쳐진 모래 언덕과 모래 들판으로 이루어진 곳이라고 흔히 생각하지만, 이곳은 군데군데 검불과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모래로 뒤덮인 황무지이다. 

1시간쯤 지나자 사막 호텔에 도착했다. 그럴싸해도 보이는 모래언덕 밑의 움푹 파인 널따란 모래밭은 낙타 똥으로 덮여있다. 몰이꾼들은 그나마 똥을 안 보이는 곳에 담요를 깔고, 쉴 만한 공간을 만든다. 그들은 독성 때문에 아무도 찾지 않는다는 소돔 애플(Sodom Apple) 나무를 바람막이 삼아 불을 피우고 짜이와 저녁을 만들기 시작한다. 여성들은 불결하다고 생각하는 듯 짜이를 맛보려 하지 않지만 사막의 낙타를 보며 즐기는 짜이는 또 다른 추억을 만들어준다. 짜이를 즐기지 않는 일행들이 모래 언덕에서 인생 샷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맞은편 모래언덕의 꼭대기에는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십수 명의 사람들로 보통 관광지 같은 느낌마저 든다.     

사막의 밤은 금방 찾아왔다

어둠이 짙게 깔리고 모닥불이 빛을 더욱 발할 때쯤 커리, 밥과 짜파티로 구성된 단출한 저녁이 제공되었다. 다들 맛있게 먹는다. 프랑스 청년은 몇 번이나 더 달라고 한다. 한국인에게만 제공되는 닭 바비큐와 감자도 익어간다. 여덟 명이 먹기에는 충분하지 않지만 도착하면서 주문한 캔맥주와 함께 나누어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수년 동안 여행 중이라는 프랑스 청년은 일 년에 1,500만 원밖에 못 벌지만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는 중이라고 한다.  

저녁 후에 모닥불 근처에 담요를 깔고 덮을 것을 두 장씩 나누어준다. 어두워도 담요의 더러움을 느낄 수 있지만 너무나 추워 몇 번씩 깼다는 여행자들의 글을 보았던지라 바람막이의 모자를 뒤집어쓰고 패딩을 입은 후 이불을 덮었다. 한낮의 햇볕을 머금은 모래라 잠자리가 따뜻하고 포근하다. 새벽에 깰 때까지 편안한 밤이 되었다.     


역시 한국인은 부지런하다

동쪽에서 여명이 비칠 때쯤에 약속이라도 한 듯이 깨어난 이는 나와 Jeong뿐이다. Jeong은 일출을 찍겠다는 일념으로 알람이 없어도 딱 적당한 시각에 일어난 것이다. 카메라 삼각대를 설치하고 떠오르는 태양을 기다리는 Jeong은 무척 진지하다. 맞은편 모래언덕에서 한국말이 들린다. 일출을 기다리고 있는 한국인들이다. 역시 한국인은 부지런하다.  

그림자의 윤곽이 명확해질 때쯤 일행들은 부스스한 눈을 비비며 일어난다. 잔가지를 주워 불을 피우니 다들 모여든다. 표정을 보니 미국인 아가씨들은 추웠던 것 모양이다. 수십 마리의 까마귀들이 근처에 내려앉아 있고 비루한 개 한 마리가 엎드려 물끄러미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다. 비스킷과 바싹 구운 식빵으로 요기를 하고 몰이꾼들을 만난 작은 마을로 다시 왔다. 올 때는 얼마 걸리지 않은 것으로 보아 어제는 우리를 위해 에둘러 삥 돌아서 간 듯하다. 흥미로웠던 사막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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