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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IMI Apr 14. 2019

인도 여행 05. 참혹한 아씨 가트

2019. 1. 11.

인도에 오기 전부터 특별한 흥미를 느꼈던 바라나시에서 처음 맞는 아침이다. 호텔 옆의 푸쉬카르 연못 가트에서 수동식 펌프로 목욕하는 이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 옆 오두막 사원에서 사두로 보이는 이가 반가운 얼굴로 손짓을 한다. 어젯밤 지나갈 때 종교의식을 하고 있어 내심 궁금했는데 잘 되었다 싶어 손짓에 응한다. 사두냐고 물으니 그보다 높은 푸자리(Santosh Pujari)라고 소개하면서 악수도 반갑게 하며 여러 번 안기도 한다. 사진 포즈에 어설픈 요가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나가려고 하니 이마에 빈디를 찍어주고 시바를 상징하는 링가 앞에서 힌두식 인사를 요구하며 기부하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이다. 첫날부터 체험비를 주고 싶지 않아 저녁에 다시 와서 의식을 보겠다고 하며 자리를 떠난다.


돌연 촬영 자세를 취하다

큰길로 나왔지만 쉽게 느껴졌던 어제 그 길이 아니다. 둘러봐도 모르겠다. 더러운 냇물도 색다르게 보이는 아씨강의 다리 위에서 사진을 찍다 보니, 옆에서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세수를 멈추고 쳐다보고 있음이 느껴진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깊게 팬 큰 눈이 인상적이다. 

“하이”

라 인사하면서 움막 마루에 걸터앉았다. 초라한 행색의 어머니가 아이들을 부르더니 돌연 촬영 자세를 취한다. 

'아! 이 장면이 인터넷에서 보았던 생계형 촬영이구나!'

들어봤지만 전혀 생각하지 못한 갑작스러운 장면이다. 간식으로 가져갔던 소시지를 나눠주고, 막내 손에 50루피를 쥐여 주었다. 뭔가 부족해 보여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 초등학생 이름표 뒤에 끼워주니 주변의 인도인이 매직이라며 다들 신기해하고, 어머니와 아이들은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생색내고 싶지 않아 얼른 자리를 피한다.


천진난만하고 해맑은 눈을 가진 어린이

다시 찾은 아씨 가트는 밤보다 더 참혹했다.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보리수나무 밑에서 세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를 안은 엄마가 손을 내민다. 

'이래도 되나?'

20루피를 주고 셔터를 누른다. 

몇 명의 얼굴색과 때를 구분하기 힘든 사내아이들이 손을 내민다. 돈 달라는 뜻인 것을 뻔히 알면서도 주고 싶지 않은 마음에 그냥 아이들과 손짓을 섞어 이야기한다. 천진난만하고 해맑은 눈을 가진 어린이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즐겁다. 아직도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자말과 「행복까지 30일」에서 까마귀 알을 훔쳐 먹던 카카 무타이 형제의 눈빛을 기억하고 있다. 이야기에 집중하다 핸드폰을 놓아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는데 큰 아이들이 서로 눈짓하는 느낌이 이상하다. 

‘아차!’

하면서 핸드폰을 찾으려고 하니 작은 아이가 살짝 엉덩이를 들어 보여준다. 가져가려고 깔고 앉은 것이 아니라 핸드폰을 보호하려 했던 것 같다. 10루피를 주니 쳐다보면서 웃어 준다. 아씨 가트에는 몸에 묻은 때가 피부색보다 검어 보이는 거지 아이들이 많다. 우리 주변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장면이라 유독 그들에게 먼저 눈길이 간다. 너무 많아서 내미는 손을 그냥 회피하고 지나가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 


오늘이 놀랍고 믿기지 않는다

보리수나무 밑에서 물끄러미 갠지스강을 보고 있는 한국 청년 AN을 만났다. 두 달 동안 동유럽과 동남아시아를 여행하고 며칠 전 콜카타를 통해 바라나시에 온 건실한 청년이다. 함께 보트를 타러 가기로 했다. 판데이(Pandey) 가트 앞에는 철수 씨가 한국인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바라나시를 찾는 한국인에게 유명한 철수 씨를 만나니 인도에 있음이 다시 실감 난다. 스물다섯 명의 한국인들과 보트를 타고 건너편 모래펄로 이동하였다. 중년의 인도인들이 떨면서 아이들처럼 맑게 웃으면서 목욕을 한다. 물끄러미 쳐다봐도 어색해하지 않는다. 재미있다. 

검은 피부의 인도인 철수 씨의 입에서 나오는 유창한 한국말로 진행되는 해설은 힌두 풍습만큼이나 흥미롭다. 힌두교 신자는 교리에 따라 죽은 뒤 24시간 이내에 화장해야 하므로, 왕이나 부유층이 이곳에 가트와 별궁을 만들어 죽음을 기다렸으며, 지금도 화장터 뒤편의 몇 개의 호텔에는 그런 목적으로 갠지스강을 찾아온 이들이 많다고 한다. 

다시 보트를 타고 본격적인 가트 탐방을 시작한다. 석양도 아름답다. 함께 디아라 불리는 작은 꽃불을 띄우며 가족들의 건강을 기원해본다. 푸자 의식으로 유명한 화려한 조명의 다사스와메드 가트와 버닝 가트라 불리는 화장터 마니카르니카 가트에 제일 눈길이 간다. 관광객을 태운 십여 척의 배들이 그 앞에서 멈추어 있다. 힌두교 신자들은 갠지스강으로 그들의 업을 씻거나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찾아오지만, 여행자들은 그들의 일상과 죽음을 보기 위해 카메라와 함께 그들을 관광한다. 참 놀라운 곳이지만 몇 번인가 TV에서 보아온 그 신비스러운 갠지스강 위에서 한가롭게 보트 놀이를 하는 오늘이 더 놀랍고 믿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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