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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IMI Apr 13. 2019

인도 여행 02. 미세 먼지 속에서

2019. 1. 9.

혼탁한 새벽 공기 속에서 보는 새벽의 파하르간지는 어제와 사뭇 다르다. 곳곳에 모아놓은 쓰레기와 열심히 치우는 인부들, 꼬질꼬질한 담요를 푹 뒤집어쓰고 자고 있는 걸인들, 릭샤에서 잠자고 있는 왈라들, 장사를 시작하려고 분주하게 가게 문을 여는 이들이 보이고, 곳곳에 있는 짜이 행상이나 모닥불 앞에는 여러 명이 모여 있다. 거적을 둘러쓰고 앉아 있는 걸인과 눈이 마주쳤다. 내미는 손에 20루피를 주고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익숙한 설정 샷으로 포즈를 취한다. 개보다도 못한 처지의 걸인 모습이 안타깝다. 어디에 가냐고 묻는 릭샤왈라들이 많다. 가볍게 거부 의사를 밝히며 걸어가니 재차 묻지 않는다.

파하르간지의 입구의 짜이 가게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다. 짜이를 맛보니 어릴 때 먹었던 전지분유와 다름없다. 유리병에 든 서울우유를 먹지 못하는 대다수 사람이 따뜻한 물에 설탕과 함께 타 먹었던 바로 그 맛이다. 여행 중에 별로 즐길 것 같지 않다.

혼탁하고 지린내가 나는 새벽 공기지만 어제와 사뭇 다르다. 인부들이 열심히 청소하고 있고 군데군데 모여 있는 쓰레기가 보인다. 릭샤 왈라들이 어디를 가느냐고 묻지만, 가볍게 거부 의사를 밝히니 재차 묻지 않는다. 가게 문을 여는 상인들 그리고 짜이 행상이나 모닥불 앞에서 몸을 녹이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거적을 둘러쓰고 있는 걸인과 눈이 마주쳤다. 내미는 손에 20루피를 주니 사진을 찍으라고 자세를 취한다. 개보다도 못한 처지의 걸인이 안타깝다.

델리 최대의 홍등가, GB 로드 / GB Rd

다시 호텔에서 붉은 성을 목적지로 잡고 철길 한 편에 길게 늘어선 높다란 담벼락을 따라 4차선으로 만들어진 GB 로드를 걷기 시작했다. 왼편의 담벼락 밑에는 허술해 보이는 움막들이 곳곳에 있다. 열린 문틈 사이로 젊은 엄마가 딸을 정성스레 씻기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찰나의 시간이었지만 엄마의 사랑이 느껴진다. 옆집에서는 스무 살쯤의 청년이 다 떨어진 팬티만을 입고 씻고 있다. 인도영화에서 봄직한 건장하고 멋진 얼굴의 청년이지만, 그가 사는 곳은 짐승 우리보다도 초라한 한 평 정도의 움막이다.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인지라 음식 노점 주변에는 많은 남자가 모여 있다. 일거리 구하는 것을 포기한 듯 힘없는 얼굴로 반대편 길을 응시하는 이들이 쉴 새 없이 보인다.

오른편에는 3층 정도의 건물들이 쭉 이어져 있다. 철공소, 릭샤 탑승장, 곡물가게, 잡화수레, 옷가게, 음식점 등 다양한 모습들이 낯설지 않다. 홀로 혹은 두세 명씩 모여 있는 매춘부 사이로 지나간다. “아가씨”라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궁색해 보이는 늙은 매춘부들이 손짓한다. 한국인들이 많이 다녀간 모양이다.

달빛이 비치는 곳, 찬드니 초크 / Chandni Chowk 

어느새 찬드니 초크 로드를 만난다. 참, 사람들이 많다. 많아도 정말 많다. 거기에 자동차와 릭샤도 꽉 차 있어 정신이 없을 정도지만 매우 활기가 넘친다. 인구보다 부족한 인프라에서 나오는 당연한 결과다.

한참을 가다 보면 오른편으로 올드델리의 찬드니 초크가 나온다. 붉은 성이 세워질 때 형성된 이곳은 인도 서민의 소박한 일상을 볼 수 있는 재래시장이다. 매우 시끌벅적하고 걷기 힘들 정도로 복잡하며 엄청나게 넓은 시장이 미로 같은 골목길로 이어져 있다. 양편으로 상점이 가득한 폭이 두세 걸음에 불과한 골목길을 오토바이, 릭샤와 함께 걷다 보면 흥미보다는 걷는 자체가 어렵다. 마스크를 썼어도 혼탁한 공기로 입안이 불쾌하다. 「EBS 극한직업」에서 보았던 하수구 청소부가 맨손으로 막힌 구멍을 뚫고 있다.

혼돈 속의 평화, 자마 마스지드 / Jama Masjid

시장 한 가운데의 무슬림 사원 자마 마스지드를 찾았다. 무굴 시대 「샤 자한」에 의해 건축된 인도 최대의 모스크로 사각형의 높다란 담벼락에 세 개의 출입문이 있다. 주 출입구의 넓은 계단에는 두세 명씩 앉아 이야기를 나누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출입구에서 신발을 맡긴 후 입장권을 끊으니 일부러 100루피를 적게 준다. 그냥 세어보지 않고 들어갈 줄 알았나 보다. 하지만 속지 않는다.

안에는 두 개의 높은 첨탑과 세 개의 둥근 돔 지붕이 있는 예배실이 있다. 돔은 이슬람의 정신인 평화를 상징하며, 첨탑은 하루 다섯 차례의 예배 시간을 알리는 곳이다. 군데군데 앉아서 코란을 읽는 이들이 있긴 하지만 예배 시간이 아니어서 이슬람 사원의 느낌이 나지 않는다. 나오는 길에 아까 나를 속이려고 했던 관리인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니 미안했는지 성의 있게 찍어준다.

도시의 감추어진 뒷모습, 가도디아 마켓 / Gadodia Market

깔끔한 옷차림과 능숙한 영어를 쓰는 젊은 사이클 릭샤 왈라가 경관이 좋은 곳을 100루피에 안내해 줄 수 있다고 말을 걸어온다. 흔쾌히 수락하고 릭샤에 앉으니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사람의 힘으로 가는 릭샤라 타고 싶지 않았지만 스치며 지나가는 삶의 모습들이 다채롭다.

1920년대의 부유한 상인 가도디아에 의해 건설되었다는 무슬림 골목에 있는 「가도니아 마켓」의 루프탑에 오르니 몇 명의 관광객이 보인다. 건물의 가운데는 사각형으로 된 축구장만한 공간이 뚫려있다. 굳게 닫힌 창문, 난잡한 전기선으로 얽혀있는 언제 넘어질지 모르는 이 낡고 더러운 건물은 원숭이들의 놀이터이다. 상점은 앞에서는 반지르르하지만, 뒤에 감추어진 모습은 최악이다.

다시 붉은성을 방향을 잡고 배가 고파 좋은 레스토랑을 알려 달라고 하니 한참을 달려 안내해주고 밖에서 기다린다. 아침에 찾아 간 한국 식당이 열지 않아 3시가 되도록 아무것도 못 먹었지만 도저히 아무 식당이나 들어갈 자신이 없었는데, 그가 안내해 준 식당은 매우 훌륭하다. 점잖은 지배인의 설명을 들며 500루피에 치킨커리, 밥, 난을 맛있게 먹었다. 훌륭한 맛이다.

인도 독립의 상징, 붉은 요새 복합 건물 / Red Fort Complex

사이클 릭샤와의 투어는 붉은 요새 복합 건물 앞에서 마무리했다. 랄 킬라(Lal Quila)라고 불리는 붉은 성(Red Fort)은 무굴제국의 다섯 번째 황제 「샤 자한」이 수도를 아그라에서 올드델리로 옮기면서 건설한 왕궁으로, 「2007년 UNESCO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인도 국기가 게양된 돔과 첨탑으로 되어있는 정면의 건물이 먼저 눈에 띈다. 붉은 사암으로 건설된 높고 거대한 성벽 밑에는 깊게 해자가 설치되어 있다. 1947년 인도의 초대 총리였던 네루가 붉은 요새에서 독립 기념 연설과 국기게양식을 개최하였다고 한다.

학생, 연인, 가족, 노인 그리고 카메라를 든 여행자들이 보인다. 우람한 덩치의 경찰이 도와줄 것이 있냐고 물어온다. 인도에 관해 묻는 말에 인도의 문화와 역사가 대단하다고 하니, 인도가 철학, 종교의 중심지라고 자랑한다. 네팔은 한 형제이지만 파키스탄에 대한 적대감도 여과 없이 표현한다. 호응을 해주니 부하를 시켜 함께 사진을 찍게 한다.


마하트마 간디의 화장터, 라지가트 / Raj Ghat

간디 추모 공원으로 가는 길에는 공터가 쭉 이어져 있다. 인도처럼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나라들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스포츠인 크리켓을 즐기는 중년 남자들 옆에는 꼬질꼬질한 모포를 덮고 있는 걸인들이 유심히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야무나 강가에 있는 라지 가트는 1948년 1월 31일 간디가 힌두교 신자에게 암살당한 다음 날 만들어진 간디의 화장터이다. 국부로서 존경을 받는 그의 위상을 알게 해준다. 사각형의 검은 대리석 위엔 계속 이어지는 참배객의 꽃들로 덮여 있고, 정면에는 간디의 마지막 말인 हे राम “오, 라마여”라고 새겨져 있다. 의무적으로 신발을 맡겨야 하며, 보관료로 10루피를 받고 있다.

유럽풍의 쇼핑 거리, 코넛플레이스 / Connaught Place

4km 떨어진 영국식민지 시절에 영국인들을 위해 지어진 코넛 플레이스로 발걸음을 옮긴다. 라지 가트 앞의 도로는 큰 사거리임에도 보행자를 위한 신호등이 없어 길을 건너기가 부담스럽다. 차들이 잔뜩 정차된 또 다른 사거리에서는 열 두세 살쯤 되어 보이는 땟국이 줄줄 흐르는 여자아이가 기계체조 선수처럼 텀블링을 1분 정도 하더니 운전사에게 적선을 요구한다. 위험하긴 하지만 무작정 손 내미는 것보다 노동의 대가를 요구하는 모습이 더 당당하다. 애처로운 소녀의 공연을 구경한 값으로 20루피를 주었다. 새똥으로 얼룩진 동상이 있어 구경하고 있으려니 수라씽이란 거지 소년이 모하맛 앗씨 알리라고 설명해준다. 20루피를 주니 내 모습이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얼추 한 시간 걸려 도착한 코넛 플레이스는 여행자에게 쇼핑의 거리로 유명한 곳이다. 쇼핑에 관심이 없다 보니 엄청나게 큰 국기가 걸려있는 맞은편 공원으로 발걸음이 옮겨진다. 점잖게 생긴 중년의 남자가 말을 건넨다. 내 또래인 줄 알았는데 28살이라는 그는 낼모레 약혼하러 네팔로 간다고 한다. 여행에 대해 궁금해하는 그의 말을 듣다 보니 �이것이 전형적인 사기 수법일 수 있겠구나.�라는 느낌이 온다. 가볍게 맞대응하니 나를 떠나 여기저기 다른 먹잇감을 물색하는 듯이 돌아다닌다.

코넛 플레이스에서 나설 때에는 어느덧 어두워졌다. 어두운 낯선 길이라 부담스럽지만, 워낙 사람이 많고 큰길로만 다니다 보니 특별히 위험한 곳이 없어 보인다. 인도 친구 구글맵과 한 30분 정도를 걷다 보니 어느덧 파하르간지 바자르이다. 칼칼한 음식이 당겨 와우카페에 갔다. 아기자기하고 좌식으로 꾸며진 2층의 방은 오로지 한국인을 위한 공간으로 보인다. 하지만 바닥의 카펫은 언제 빨았는지 모를 정도로 더럽다. 네팔 트래킹을 다녀왔다는 옆 테이블 아가씨는 여유와 자신감이 넘친다. 250루피에 공깃밥이 곁들인 라면과 김치는 15km쯤 걷느라 지친 몸을 회복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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