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종로 1가 뒤편 지하에 '비앤비'라는 작은 Bar가 있었다. 좁은 계단을 내려서면서부터 희미하게 재즈 선율이 흘러나오던 곳이었다. 바의 문을 열면 긴 바와 작은 테이블 몇 개가 전부였다. 출입문 반대편에는 낡은 턴테이블과 재즈 앨범들이 가득했다. 칠이 벗겨진 벽에는 찰리 파커와 카운트 베이시, 그리고 듀크 앨링턴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칵테일을 처음 마셨던 곳도 그곳이고 쳇 베이커와 마일스 데이비스의 연주를 처음 들었던 곳도 그곳이었다. 재즈를 들으며 마시던 그때의 모든 것들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2016년 여름, 에단 호크가 쳇 베이커로 분한 영화 [본 투 비 블루]가 개봉했다.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만났던 그는 진짜 쳇 베이커였다. 미간에 깊게 파인 주름이 마치 쳇 베이커 내면에 새겨진 칼날자욱처럼 느껴졌다. 에단 호크의 처절한 연기 때문이었을까?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의 삶이지만 가슴 깊이 알고 지내던 자의 삶을 마주하는 것 같은 슬픔에 당황했다. 지독히도 고독했던 마약중독자. 제대로 교육받은 적은 없지만 천재적인 감각만으로 연주했던 외로운 존재의 음악. 하지만 사랑을 받은 만큼 그에겐 미움도 따랐다. 다른 연주자들에게 혹평을 듣는 순간에도 연주해야만 하는 고통이 더욱 약에 매달리게 했던 계기는 아니었을까. 망가질 데로 망가지고 호흡이 달리는 상태에서도 그는 기적처럼 My funny Valentine을 노래한다. 자신의 삶을 토해내듯 읊조리는 목소리. 어두운 영혼처럼 깊숙히 달라붙는 트럼펫 연주에 사람들은 탄식한다. 아무렇게나 부러진 앞니가 고스란히 자기 자신을 상징하는 것만 같다. 쳇 베이커의 앨범을 듣고 있으면 무너지는 건물 아래 오롯이 홀로 서 있는 그의 모습이 그려지는 건 어쩌면 그런 이유일지도.
내가 처음 bar에 갔던 건 20대 초반이었다. 친구들과 들어간 그곳에서 뭘 시켜야 하는지 몰라 서로 눈치만 보며 머뭇거리던 우리에게 바텐더는 마가리타, 스크류 드라이버와 피나콜라다 같은 달고 상큼한 칵테일들을 추천해 주었다. 아마도 촌스러웠던 나와 친구들을 단번에 파악했었나 보다. 우리는 주스처럼 달콤한 맛이 나는 그것들을 기분 좋게 마셨다. 한두 번 더 방문했을 땐 다른 걸 마셔보고 싶었다. 달콤한 맛이 아닌 좀 더 어른의 맛. 달지 않고 강한 어떤 것이 먹고 싶었다. 바텐더에게 물어볼까 하다가 어디선가 들어 봤던 '스팅거'라는 칵테일을 주문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굉장히 복잡한 맛이 났던 걸로 기억한다. 뭐라 말할 수 없는 처음 먹어 보는 맛. 그야말로 어른의 맛이었다. 한 모금씩 맛본 뒤에 뜨악한 표정을 짓는 우리에게 바텐더는 브랜디와 크림 드 민트로 만든 칵테일이라고 말했다. 스팅거라는 말의 뜻은 '찌르는 바늘'. 찌르는 것처럼 강렬함을 느낄 수 있는 칵테일이라고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던 우리는 서로에게 나머지를 떠넘기느라 바빴다.
영화 [007]에서 제임스 본드는 바에 들러 늘 같은 말을 한다. '보드카 마티니. 쉐이큰. 노 스터.' 그 간결한 주문과 낮은 목소리가 얼마나 멋있어 보이던지 다음에 가서는 꼭 보드카 마티니를 마셔보리라 다짐했다. 주문할 때는 제임스 본드처럼 말해야지. 쉐이큰. 노 스터. 하지만 아직 실행해 보진 못했다. 부끄러워서 할 수가 있어야지.
그 오래 전의 재즈바에서 위스키와 어울리는 음악들을 만났다면 나는 럼을 마시며 쿠바 음악을 들었다. 쿠바에 가지 못하는 대신에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을 화면 가득 틀어 놓고 쿠바의 클럽들을 전전했다. 꼼빠이 세군도의 신나는 노래를 들으며 어깨를 들썩였고, 일흔이 넘은 이브라임 페레르의 깊은 음색에는 할 말을 잃었다. 그가 부르는 '치자꽃 두 송이'를 들으면 누구라도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페레르의 보컬이 시작되기 전에 울려 퍼지는 애잔한 트럼펫 전주가 귓가에 선하다. 나도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만 좋은 음악을 듣고 있으면 사실 진정한 예술 중의 예술은 음악이 아닐까 생각한다. 음악이야 말로 인간의 가장 깊은 곳을 건드리는 힘을 갖고 있다. 아무도 모르게 꽁꽁 숨겨둔 마음속의 작은 씨앗을 툭 건드리면 종종 마법 같은 일들이 시작되곤 하니까.
[안경]이라는 영화에서는 이웃들과 함께 얼음을 갈아서 빙수를 먹는 장면이나온다. 하나둘 동네 사람들이 바닷가로 모여 말없이 각자의 시간을 누리며 새하얀 바닷가에 앉아서 빙수를 먹는 모습은 꽤 인상적이었다. 빙수엔 그 어떤 화려한 과일이나 장식도 없이 오직 정성 들여 고아 낸 단팥뿐이다. 한참 동안 그 고요하고 편안한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노년에는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다. 특별함이 없어도, 깊은 지식이 없어도 나만의 순리대로 꾸려가는 삶. 몫이 좋은 자리가 아니어도 세련된 거리가 아니어도 조용하고 아늑한 그런 동네라면 좋겠다. 머리가 하얗게 세어가는 동안에도 나는 조용히 글을 쓰고 은은한 위스키를 마시리라.
이런저런 생각 끝에 나는 가벼운 bar를 하기로 결정한다. 벽은 온통 책들로 채울것이다. 어느 날은 헤밍웨이의 자리를, 어느 날은 피츠 제럴드의 자리를 만들어야지. 조르바의 특별석과 필립말로의 지정석도 만들고. 책과 알코올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좋겠다. 중후하고 근사한 bar 보다는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는 bar. 술을 잘 몰라도 어려움 없이 다가설 수 있는 곳이면 어떨까. 나만의 추억을 남길 수 있는 곳이라면 더욱 좋겠지. 내가 처음 느꼈던 순간들처럼. 음악과 친구들과의 기억과 어른의 맛 같은 것. 누군가에게 무엇이 되는 장소. 문득 그런 곳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