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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에 앉아 있네

by Siho

9/21(일)

교회에서 점심을 먹고는 류, 정, 이 작가와 함께 마을 산책을 하며 걸었다.


어디선가 향긋한 흙내음이 나서 킁킁거리며 따라가 보니 당근을 솎고 계신 어머님이 계시다. 정 작가와 앉아서 당근을 뽑으며 일손을 조금 도왔다. 흙을 툭툭 털고 쌓아둔 당근 바구니 옆, 천대받으며 쌓여있는 싱싱한 당근청을 보고 있으려니 영국에 있을 때 이 당근청으로 페스토를 만들었던 기억이 문득 스쳤다.


"이거, 저희 가져가도 돼요?"

"그거 뭐 갖다 어디에 쓰게?"

"이걸로 페스토, 그러니까 스파게티나 파스타 소스 만들어 먹을 수 있어요!!"

어머님은 고개를 갸웃하며 해먹을 줄 알면 다 가져가라고 손짓을 하신다.

파마산 치즈를 좀 시켜서 페스토를 해 먹어봐야겠다. 알이 잘다고 버려진 당근을 주워 흙째 씹어먹는데 맛이 향긋+ 싱그럽다. 보니까 옆의 밭에서 대파도, 상추도, 부추도 웅장하고 빽빽이 자라고 있다.


"이거 좀 가져가든가~"

어머님은 내킨 김에 부추도 잔뜩, 그리고 당근 옆에 심기운 겹 봉선화도 한가득 따 주셨다. 엊그제 처음 봉선화물을 들여봤는데 여리여리 한 봉선화여서 그런지 물 드는 게 영 약했는데, 이건 제대로 된 물이 들 것 같다!


아주 실하구만!


감사인사를 하고 나와 몇 걸음이나 걸었을 까, 배나무에 배가 주렁주렁 달린 집 앞에서 한 할머님이

“더운데 커피 마시고 가요-” 라며 우리를 부르신다. 한 걸음을 떼기가 무섭구나!

감사해요, 마침 땀이 찔찔 흐르고 있었는데!


앞으로 이곳에서 한 달 여를 지내며 프로젝트를 하게 될 거라 우리를 소개했다.

"그래서, 앞으로 여기서 무엇을 하시려고?"

"저는 고성의 과일들을 이용해 명상을 할 거예요. 마인드풀 이팅이라고."


사과를 예쁘게 깎아 내 주신 며느님이 그 이야기를 듣더니 뒷마당에서 노랑 봉투에 예쁘게 싸진 배를 따 오셨다. 아직 이른 배라는데도 이렇게 달콤하고 물이 넘치다니!!

방금 나무에서 딴 맛은 이런 거구나. 그야말로 먹기 명상이 따로 없었다.


보글보글 물이 끓는가 싶더니 예의 그, 맥심 커피가 우리 앞에 놓였다.


이것으로 오늘 커피 두 잔 째. 어느새 기분이 좋아진 류 작가가 기타를 들고 뚱뚱 튜닝을 하더니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노래한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

그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열어둔 창문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와 코끝을 스친다. 어디선가 배 향이 나는 것도 같다.

산들바람과 기타 선율, 상큼하고 시원한 과일.



더없이 완벽한 일요일이 이렇게 뉘엿뉘엿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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