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금슬이 좋은 비결은 바로 이것이었다
‘명파마을결’로 명명된, 마을 주민과 함께하는 점심시간이었다.
나의 경우 (지금은 달라졌지만) 마음 챙김 식사 (Mindful Eating)라고 해서 고성에서 자란 농작물을 이용해 먹기 명상을 할 것이라고 발표했었기에 식당을 운영하신 경험이 있는 박봉여 할머니 댁에 매칭이 되었다.
-이 자리를 빌려 작가의 성향과 작업방향에 따라 어르신 댁을 세심하게 매칭해 준 현석 예술감독님에게 무한한 감사를 표한다. 현지에 머물며 한 분 한 분을 파악한 찐 ‘주민’이 아니고서는 만들어 낼 수가 없는 디테일이었다.
고성 아트케이션 기간 동안 사진/영상을 담당할 류 작가(편의상 ‘님’을 빼기로 한다)와 나 박시호가 한 팀으로 묶였다. 운영사 빛 나르고 가 아침부터 속초에서 공수해 준 닭강정, 떡볶이, 순대, 아이스크림 등 어르신들이 오랜만에 드셔보실 분식 메뉴들이 준비되었다. 할머니 댁에서 세 분의 어르신이 미리부터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저, 저희 왔어요- “
우려가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갑자기 먹을 것을 들고 들이닥쳐서는 무슨 이야기를 하지?
“아니, 뭘 또 이런 걸 굳이 사와 그래??”
한사코 우리의 접시에 닭강정을 덜어 주시며 먼저 먹으라 부추기시는 어르신들의 너스레 덕에 긴장이 한소끔 풀어진다. 한참을 맛있네, 바삭하네, 쫀득하네 하면서 품평회가 열린 뒤 아무래도 다소 기름진 음식이다 보니 김치가 당기셨는지 집주인인 박봉여 할머니께서 열무김치를 꺼내오신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하면서 인사치레의 필요도 흐려져 버렸는지 “그래, 다른 김치도 있으면 좀 가져와”라고 속 시원히말 하는 할머니의 친구분들이 좋았다.
그런데, 열무김치로 끝날 것 같았던 할머니의 곁반찬이 하나둘씩 늘기 시작했다. 아직 먹을 만하다며 무심한 듯 툭 던져두신 오이김치며 고추무침까지. 할머니는 반찬을 놓고 앉으시려다 말고 “아이고, 이것도 있네 참” 하고 대 여섯 번을 더 일어나셨다. 반찬이 생기니 이제는 쌀 밥도 한 공기씩 덜어오셨다.
“아니다, 가만있어봐. 국시도 먹을려?”
이쯤 되면 거의 그냥 서서 드시는 수준인 할머니는 아까 삶아두었다는 국수를 김치국물에 말기 시작하셨다.
“아니요, 할머니. 저희 지금도 음식이 많은데…”
우리의 '관두시지 마시지'는 안중에도 없이 할머니는 국수도 사람 수만큼 척척 만들어 내오셨다. 아이고야.
배가 터질 것 같았지만 반찬이 너무 맛있어 우리는 그 많은 음식을 어느새 다 먹어치워 버렸다.
“커피 먹어야지?” 할머님은 정확한 물 조절로 맥심 커피를 타셨다.
“무조건, 밥 먹은 다음에는 커-피야. 이걸 마셔야 돼”
옆에 앉은 할머님들은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셨다.
우리는 믹스커피를 마시면서, 잘 생기면 얼굴 값 한다는 (그럼에도 잘 생긴 게 중요하다는) 먼저 가신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외모도 빛이 나시는데 시인이기까지 하셨다고. 영감(남편) 이야기가 나오자 갑자기 시선이 다른 할머니께로 모두 쏠렸다.
“여기가 금슬이 그렇게 좋아. 여태 그렇게 잘 지내고 살어”
“그렇지. 그렇지. 여기가 사이가 좋지”
“아니 어떻게 아직도(?) 사이가 좋으셔요???” 비결을 묻자 할머니는 머쓱한 듯 툭 던지셨다.
아. 짧지만 거대한 깨달음. 서로에게 '친절'하기. 그거였구나. [참고할 것]
나중에 이 아이디어는 우리의 프로젝트에서 - 라테 네이밍에도 사용되었다.
이 밖에도 '한번 끓여낸 뒤 절이면 아작아작하게 보관할 수 있다'는 오이김치 만드는 법, 콩밥을 만들 때 콩의 비율을 맞추는 법 등 삶의 지혜를 전수받으며 어느새 우리는 종이컵을 비웠다.
배도, 마음도, 따뜻- 하니 불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