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이거죠 네
벌써 첫날이었다. 고성 명파마을의 주민센터에 삼삼오오 모여 앉자마자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되었다.
보통은 재단, 군 관계자, 주최팀, 그리고 작가들 정도가 모여있지 않나? 벌써 마을 어르신들과 이장님까지 빼곡히 자리를 메꾸고 계셔서 적잖이 놀랐다.
주최 측에서 준비한 간식에 또 한 번 놀랐다. 보통은 엄마손 파이나 오곡롤 정도가 (폄훼 아님) 수북이 쌓여 있는 것이 익숙한데, 샌드위치와 들기름 스파게티, 그리고 로컬 토마토와 햇 땅콩 등 고민을 많이 한 케이터링이 우선 마음에 쏙 들었다. - 여담이지만 사진에 보이는 로컬토마토와 햇땅콩이 들어있던 저 일회용 컵은 내가 알뜰히 챙겨가 씻어서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크림통으로, 소스통으로 다양하게 사용해 주었고, 위에 덮긴 끈적이(?) 스마트 랩은 손에 봉선화 물을 들일 때 요긴하게 사용했다. 뿌듯! -
오리엔테이션을 듣다 보니 명파에서는 어마어마하게 바쁜 공통스케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도 작년에 이미 아트케이션을 참가해 본 1기 출신 작가 두 분을 제외한 나머지는 대부분 고성이 첫 방문이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거의 패키지 투어처럼 빡빡 히 채워진 일정표를 보면서 '와우... 나 맞게 온 거겠지? 영국에서보다 더 숨 가쁜 건 아니겠지?' 하는 걱정과 불안이 교차했다.
숙소 제비 뽑기에서는 그래도 모두가 좋다고 손꼽는 해당화펜션을 뽑았다. 영국에서 셰어하우스에 오래 머물렀던지라 한동안 독립 공간에서 좀 쉬고 싶었는데 내 소원을 들어주셨나 보다. 감사해요! 2주일간 누려볼게요.
숙소에 짐을 풀고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다른 작가님들의 숙소도 한 번씩 들어가 보고 아 여긴 이렇구나, 음 여기는 생각보다 괜찮은데? 하며 서로 부러움과 안타까움을 나누는 새 조금씩 우리는 가까워졌다.
마을을 구석구석 둘러보았다. 따뜻한 햇볕을 가득 머금은 볓집, 장독대, 나무, 꽃, 풀 등을 만질 때마다 온기가 손에 묻어났다. 어쩐지, 이곳을 좋아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 불안한(?) 예감이 들어버렸다.
숙소로 돌아와 웰컴키트를 풀어보니, 이렇게나 다양한 것들이 들어있다. 주최 측인 빛나르고가 고민하고 고민해 담아 두었을 정성이 읽히는 듯하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분명히 택배 깨나 시켜댈 것을 예측한 택배박스 커터, 친환경 샴푸바, 바디바, 설거지 비누 세트. 고급 수건과 그날그날의 To-Do리스트 노트, 고성의 작가분들이 쓴 글을 모은 책(후에 엄청난 보물이 된다), 게다가 지역의 (유일한) 상권 - 금강산 슈퍼-을 고려한 5,000원 쿠폰과 아트카페 쿠폰까지. 배려가 뚝뚝 떨어지는 선물을 받아보면서 '아아. 설렁설렁하긴 글렀는걸?'이라고 헛웃음이 배어 나왔다.
그뿐인가,
앞으로 우리의 참새방앗간이자 메인아지트 역할을 하게 될 [우리 민박]에 갔더니 커피를 바로 갈아 프레스기로 내려주시는 류 작가님마저 있었다. 언제든지 커피가 먹고 싶으면 오라고.
아니, 이 정도 마음가짐들이라고?? 모두와 나누어 먹으려 커피를 직접 볶아오는 것도 모자라 매번 갈아서 내려준다? 음... 쉽지 않은 분들이 오셨구나. 알 것 같다.
좋아. 기합을 넣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