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드는 밤의 시작
우리 민박에 가면 언제나 류 작가가 곁문을 드르륵- 하고 열고 나오며 하는 말이 있다.
“커피 드실래요?”
아직 대답도 안 했는데, 벌써 포트에 물을 올리고 원두의 무게를 재고 있다.
"아니, 아직 대답도 안 했는데..." 나는 당황해서 어버버 했다.
"드실 것 같아서요."
"그..렇긴 하죠. 커피야 늘 땡큐죠. 그런데 매번 이렇게 오는 사람들 다 커피를 내려주시는 거예요?
보통일이 아닌데..."
“별 거 아니에요. 그냥 저 마시면서 같이 내리는 거죠 뭐. 저는 사람들에게 커피를 대접하는 게 좋아요.”
“생각해 보면… 작가님이 지금 하고 계신 것도 일종의 환대겠어요”
“제가요? 아뇨 아뇨 아니에요 ”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류 작가가 손사래를 친다.
“저는 그냥, 사람들이 아침에 일어나면 커피 한 잔 하고 싶을 것 같고. 밥 먹고 나면 또 먹고 싶을 수 있으니까 잘 준비했다가 모두가 커피 한 잔 즐길 수 있었음 하는 거죠.”
“음, 그거 인 것 같아요. “
반짝, 나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번뜩였다.
다음다음 날, 하루를 정리하는 저녁시간.
류 작가에게서 문자 연락이 왔다.
“시호님, 쉬시는데 죄송합니다. 기획 관련해서 제가 좀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제가 이런 이런 프로젝트를 하고 싶은데 이런 것도 프로젝트가 될 수 있을까요? 어르신들에게 받은 걸 돌려드리는, 그런 취지인데요...” 줄줄이 올라가는 아이디어들.
“물론이죠. 의도는 뭐예요? ”
한참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얼마 전 머릿속에서 번뜩였던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내 들었다.
“작가님, 실은 저 작가님이랑 커피배달 콜라보 해볼까 생각했었어요.”
뭐라고 대답하시려나? 아카이버로서 참여하고 있는 작가님인데 뭔가 같이 하자는 제안이 버거우시려나? 이미 자신이 기획해서 하려는 프로젝트조차 있는 분인데… 그래도 커피야 늘 내리시는 거니까 조금만 조언을 구해보자.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기도 전에 대답이 왔다.
“오, 같이 해요. 재밌겠어요. 저는 커피, 시호님은 주전부리 가능하나요?”
역시 쿨하시구나.
“네- 고런 느낌 생각 중이었어요. 할머님들이 매일 식사하시고 나서 믹스커피 드시는데, 그걸 조금 몸에 (그나마) 좋은 방식으로 만들어드리면 어떨까 하고…”
“가능할 것 같습니다! 저도 어르신들께 뭔가 몸에 좋은 걸 선물해 드리고 싶었는데…”
“생각해 봤는데 명파에서 많이 나는 작물이나 과일 같은 것으로 커피를 만들면 좋을 것 같아요. 이름은 … 우선 친절한 옥시시라테. 왜 '친절'인지는 기억 나시죠?”
“하하. 재밌어요! 커피는 안 그래도 이번에 서울에 가면 새로 볶아 올 생각이었으니까… ”
우리가 어르신 댁에서 받았던 환대를 다과의 형식으로 다시 돌려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일치하자 아이디어는 급속도로 진전되었다. 커피원두는 산미가 적은 브라질 세라도로. 그리고 밤에 말똥말똥하면 안 되니 디 카페인 원두로. 일반 아메리카노는 잘 안 드시니까 라테 종류여야 할 거고… 우유는 어디 브랜드 걸로 사야 하죠? 아마 유당 불내증 있는 어르신도 있을 테니까 아몬드유로, 아! 저 두유 제조기가 있네요. 오 좋아요.
정보를 주고받는 새 어느새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슬슬 잠이 온다 싶어 대화를 마무리하려는데 류 작가가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엄마야.
거진 두 시간에 걸친 토론이 끝나고 이제 무엇을 주문할 지로 넘어갈 순서인데, 지금 이 시점에 ‘소용’이요?…
잠깐 고민하다 대답했다.
“맛있는 거 같이 먹는 소용요. 음료를 만들고 대접하는 이 과정 자체가 의미이고 재미있는 거겠죠.”라고.
그런데 정말 무슨 소용일까? 우리의 일은…
“저는 아티스트로서의 자아를 주민분들께 주입시키고 싶진 않아서, 손녀뻘의 한 사람으로서 ‘맛있는 거 해주세요. 할머니가 해주신 강원도 음식이랑 이야기를 먹어보고 싶어요! 함께 먹어요.’ 까지가 오늘까지의 목표였어요. 그 과정에서 파생된 생각은 다시 챙기고 다듬어서 발표해야지요."
대답을 수긍하는 듯하던 류 작가는 다시 물어왔다.
“재단에서 이런 생각을 좋아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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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아무래도 대화가 빨리 끝날 것 같지 않다. 나는 폭삭하니 덥혀 둔 이불에서 스르르 빠져나와 서늘한 침대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어떨 것 같으세요. 류 작가님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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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은 못 자겠지. 오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