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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느리 Sep 08. 2020

내 기억 속 빨강머리앤

엄마, 앤이 되어보세요

<내가 생각하는 빨강머리앤 명장면 1>      


“아이스크림이 얼마나 맛있는지는 말로는 이루 다 표현할 수가 없었어요. 정말 뺨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어요. 숭고한 것이란 그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요?”     


브로치를 훔쳤다고 자백하면 소풍을 보내준다는 말에 거짓 자백을 한 앤, 


아이스크림을 먹지 못하게 될까 봐 안절부절못하던 앤이 오해가 풀리고 소풍에 가서 처음으로 아이스크림을 맛보고 한 말이다. 잔뜩 상기된 얼굴로 아이스크림을 맛 본 경험을 이야기하던 앤은 정말 사랑스러웠다.


그렇게 좋을까?

      

빨강머리앤이 처음 아이스크림을 맛보았듯, 아이가 초콜릿을 처음 맛보는 그 놀라운 순간을 기억하는 부모는 많지 않을 것이다. 


나도 언젠가 초콜릿을 처음 맛보았을 내 아이에게 


‘이제 그만 먹어. 단 거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돼’


라고 잔소리를 늘어놓진 않았는지, 


‘여기 봐. 사진 찍자’ 


하며 소중한 순간을 놓치고 단지 추억으로만 남기려고 하지 않았는지 기억이 없다.



아이의 새롭고 놀라운 감정을 온몸으로 함께 느껴주고 싶었는데, 밝게 웃으며 함께 나눠먹으며 그 달콤한 초콜릿이 얼마나 놀랍게도 맛있는지 공감해주고 싶었는데, 이미 어른이 되어 버린 나에게 초콜릿은 너무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 같다.


어느 날 운전을 할 때 뒤에 카시트에 혼자 앉은 션에게 해바라기씨라는 작은 초콜릿이 가득 들은 봉지 하나를 쥐어주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션을 봤는데 나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그 작은 봉지 안에 들은 초콜릿을 손으로 꺼내고 입에도 부어서 온 손, 입, 옷, 카시트, 창 정말 모든 곳들이 초콜릿으로 물들어 있었다. 


‘어쩐지 조용하더라.’ 


잠시 당황했다가 하하 웃어버렸다. 션이의 행복하고 천진난만한 얼굴에 문득 행복해졌다. 이가 썩을 거고, 단 거 먹으면 안 되고, 손이 지지되고 이런 것을 다 떠나서 이미 벌어진 일, 내 아이가 초콜릿과 함께 한 일탈에 행복했으면 그걸로 된 것이었다. 


아이의 함박웃음에 행복했지만, 카시크와 차를 닦느라 몇 시간 고생한 걸 생각하면, 앞으로는 조심하고 싶기는 하다.




<내가 생각하는 빨강머리앤 명장면 2>


다이아나에게 포도주를 대접하는 앤


친구 다이아나와 딸기주스를 나누어 마시고 싶었던 앤은 실수로 포도주를 다이아나에게 주고 만다. 잔뜩 취해 돌아온 딸을 보고 화가 난 다이아나의 엄마는 둘이 다시는 어울리지 못하게 만들어버린다. 두 친구의 절절함이 묻어나던 하루하루가 안타깝게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밤, 캐나다의 수상이 마을에 온 것을 보러 온 모든 마을 어른들이 시내로 나가버리고, 그때 다이아나의 여동생이 후두염에 걸려 끙끙 앓게 되는데, 앤이 아픈 동생을 살뜰히 보살펴주고 다이아나도 안심을 시켜준다. 새벽 늦게야 찾아온 의사는 앤의 행동을 칭찬한다. 그리고 다이아나의 엄마는 둘이 다시 사이좋게 지내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앤에게 전하고 저녁식사에 초대도 한다. 


어렸던 나는 앤이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 너무 자랑스럽고 둘이 다시 친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이 정말 다행이라 여기며 안도했었다. 즐거웠던 식사 후 함박눈을 맞으며 귀가하는 앤과 매튜 아저씨의 장면은 무척이나 아름다운 느낌으로 아직도 생생하다. 집에 돌아와 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멋진 다과회였어요. 베류 아주머니는 귀한 손님을 대접하듯 아껴두셨던 차를 내주셨어요. 그걸 보고 제가 얼마나 기뻤는지는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마치 제가 어른이 된 것 같았다니까요. 전 너무 행복해요. 그래요. 머리는 비록 빨간색이지만요. 이제 빨간머리 같은 건 상관없어요. 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에요. 마릴라 아주머니.” 


아이들은 당연히 실수를 한다. 어른들은 잘못을 저지른 아이에게 화를 내고 벌을 내린다. 하지만 언젠가는 서로 사과하고 용서를 하고 받고 다시 행복한 엄마와 아이의 관계로 돌아간다. 


앤도 자신에게 심하게 행동한 베류 아주머니에 대한 원망 보다는, 그녀가 자신을 잘 대접해준 것에 상기되어 행복했다. 가끔 일상에 지친 엄마의 짜증과 화를 다 받아도 결국은 엄마의 사랑에 품에 안겨 들어오는 우리 아이들이다.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깊은 감수성으로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에 감사한다. 빨강머리앤을 보면 그 작은 소녀의 상상력과 예쁜 마음에 눈물이 날 것 같다. 


어린 시절 TV에서 만나던 앤은 그냥 말괄량이 친구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 아름다운 소녀의 감성을 어른이 되니 더 절절히 느끼게 된다. 고아였던 빨강머리앤이 기쁨의 하얀 길을 마차를 타고 건너 반짝이는 호수를 지나 아름다운 초록색 지붕의 집에 와 지내며 겪는 성장통. 


빨강머리앤의 아름다운 장면


우리는 앤의 감성을 배워야 한다. 인생의 감흥을 찾아야 한다.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평범한 일상에도 의미를 부여하면 내 삶이 더 풍성해진다. 그리고 그런 행복한 부모에게서 자란 아이들도 행복하다. 



https://brunch.co.kr/@lilylala/113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0세부터 시작하는 참 쉬운 엄마 영어에 대한 주제로 연재합니다.


음에는 '빨강머리 앤의 감성 더하기 4가지 방법' 대한 주제로 포스팅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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