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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새눈 Aug 16. 2023

행복의 한 가운데서 독수리를 밀다

고집쟁이 우주인의 파란만장 지구생활 (적응기) 6

 


 내가 들어갔을 무렵에는 봄 시즌을 맞아 마스크 퍼레이드를 준비하고 있었다.(롯*월드는 무대공연, 거리공연, 퍼레이드가 시즌마다 새로 생기거나 콘셉트가 바뀌어 편성된다.) 마스크 퍼레이드는 베니스 가면 축제와 동화 속 주인공들 및 동물 친구들이 어우러진 콘셉트였다. 감독님들은 회의를 하고, 시안을 만들고, 소품이나 차량을 주문하고, 음악과 안무를 의뢰하고, 역할을 구성하였으며, 의상팀과 분장팀은 역할에 맞는 메이크업과 의상의 콘셉트를 구상하는 등의 일들로 한동안 바빴다. 연기자들은 일찍 출근해서 새로 시작될 공연을 준비하고 퍼레이드의 안무를 익혔다. 나도 벽면이 거울로 이루어진 연습실에 불려 가서 안무 지도를 받았다.


  캡틴 언니가 동갑내기 여자 아르바이트생과 나에게 천천히 시범을 보이면서 동작을 알려주었다. 여자 아르바이트생은 무용 관련학과 출신 이어서 곧잘 따라 했는데 나는 바로 몇 초 전에 알려준 동작도 기억이 나지 않아서 처음 동작과 끝 동작만을 따라 하는 식이 되어 버렸다.


“자, 그럼 이렇게 해 봐. 한 손씩, 한 손씩, 주세요, 주세요, 왼쪽, 오른쪽, 찌르고, 찌르고, 당겨, 당겨. 옳지.”


  캡틴 언니는 동작에 박자를 세는 숫자 대신 추임새를 붙여가며 친절하게 알려주었지만, 언니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금붕어럼 방금 배운 것을 돌아서면 까먹었다. 동작을 잘 보고 있다고 생각했는 데 따라 하려고만 하면 머릿속이 하얗게 비었다. 몸의 한 곳(예를 들면 손)에 정신을 집중하고 있으면 다른 곳(예를 들면 다리)은 움직일 수 없었다.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한 동작이 아니라 율동 수준의 동작이었는데도 몸이 생각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 율동을 하는 것은 엄정화의 포이즌에 맞춰 에어로빅을 했던 중학교 무용시간 이후 10년 만이었다. 10년 사이에 머리로 생각한 것을 몸으로 전달하는 연결고리 같은 것이 끊어져 버린 것 같았다. 결국 동갑내기 아르바이트생에게 나를 따로 가르치라는 말을 남기고 캡틴 언니의 지도가 끝났다.


  다른 연기자들은 동작을 한 번만 봐도 잘 따라 하고 금방 외웠는데 나는 따라 하는 것도 어렵고 외우는 건 더더욱 힘들었다. 아르바이트생 친구가 틈나는 대로 알려줬지만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눈을 부릅뜨고 동작들을 머리에 담으려고 해 봐도 눈 깜빡하는 사이에 기억은 휘발되어 사라졌다. 그 당시 핸드폰에는 동영상을 촬영하는 기능도 없었다. (있었어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을 것 같지만…)


'어떡하지? 아무리 해도 모르겠어. 어릴 땐 율동하는 거 좋아하고 곧잘 했는데. 나한테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흑.'


 
 

  며칠 정도 풀이 죽어 고민을 했다. 공부하는 것은 그냥 책을 보고 쓰고 이해하면 되었는데, 안무를 익히는 것은 뭔가 다른 영역의 일이었다. 무언가를 이렇게 못한다는 사실이 답답하기도 하고 자괴감이 들었다. 고민을 하다 보니 연기자들과 나와의 차이가 뭔가를 학습하는 방식의 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동작을 눈으로 보면서 줄곧 학습을 해온 사람들이고, 나는 글자나 그림을 통해 학습을 한 사람이니 나에게 맞는 방법으로 배우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퍼레이드 주제곡을 엠피쓰리에 녹음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지나가는 연기자들을 붙잡고 이 부분 다음에는 어떤 동작인지 알려달라고 부탁해서 종이에 하나하나 그림을 그리고 설명을 적었다. 선으로 된 팔다리를 가진 졸라맨이 이런저런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 같은 그림에 화살표와 숫자를 덧붙여 방향이나 횟수도 표시했다. 완성된 종이를 매일 지니고 다니며 틈틈이 연습하고, 퇴근 후 집에 가서도 노래에 맞추어 연습을 했다. 그렇게 2주 정도 연습한 끝에 3분 남짓한 안무를 간신히 다 외울 수 있었다.






  마스크 퍼레이드 시작 2주 전, 오후 11시.

  놀이공원 내 다른 직원들이 모두 퇴근하고 놀이기구의 조명들이 하나씩 꺼진 후에도 공연팀 직원들은 퇴근하지 않고 남아 있었다. 공식적으로 퍼레이드를 시작하기 전 최종 리허설을 하는 날이었다. 연기자들은 각자 퍼레이드 의상을 갈아입고 야외공연 무대 앞 광장에 모였다. 연기자들은 감독님들의 지휘에 따라 대열과 동선을 맞춰보고, 각자 역할에 해당하는 포인트 동작들을 확인받았으며, 그 후에는 주제곡이 흐르는 가운데 퍼레이드 시연을 했다. 중세시대 풍의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여인, 중세시대 귀족 남자, 피에로, 피노키오, 제페토 할아버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카드병정, 팅커벨, 후크 선장, 피터팬, 호박여인, 신데렐라, 얼룩말, 사자, 공작새, 홍학, 잠자리, 나비 등 동화 속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존재들이 밤늦은 시간 드문드문 불이 켜진 놀이공원에 모여 있는 것을 보고 있으니 마치 꿈을 꾸는 듯 몽롱하고 환상적이었다. 연기자들 중 반 정도가 우즈베키스탄이나 러시아 등지에서 온 하얀 얼굴에 밝은 머리색을 가진 외국인들이라는 점도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비현실적인 기분이 들게 하는데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


  내가 마스크 퍼레이드에서 홍학 역할을 맡게 될 거라는 얘기를 주워 들었는데, 내 수행능력을 파악하신 감독님들이 쉬운 역할로 조정을 한 건지 리허설 때 나는 아무 지시를 듣지 못했다. 홍학 역할은 분홍색 타이즈와 커다란 깃털이 달린 의상을 입고 서너 명이 무리를 지어 다니며 우아하게 걷거나 날갯짓을 하는 홍학의 모습을 표현하는 안무를 반복해야 했는데, 안무와 더불어 동선이 있는 역할이라 감독님들이 내가 하기엔 무리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나는 운동복을 입고 연기자들을 구경하며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안무도 다 외웠던 터라 홍학 역할이 조금 탐이 나는 마음이 들어 부러운 눈초리로 홍학 언니들을 바라보았다.


  퍼레이드에서 내가 맡게 된 역할은 기린이었다. 기린은 높이가 3m 가까이 되는 큰 구조물로 네 발아래에 바퀴가 달려있고 몸체 안으로 사람이 들어가서 밀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나는 헐렁한 까만색 전신 타이즈를 입고(원래 헐렁한 것은 아니고 내가 입으면 헐렁한) 기린 안으로 들어가서 방충망이 붙어있는 조그만 창으로 바깥을 내다보며 기린을 밀었다. 밖에서 보면 상반신은 기린의 몸 안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고 기린의 배 아래쪽으로 그림자 같은 다리 한 쌍이 뻗어 나와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런 기린의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관람객들 뿐만 아니라 감독님이나 연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기린을 미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기린을 밀다가 기린 뒷발에 내 발이 걸리는 바람에 신발 한쪽을 떨어트리고 온 적도 있고 (신발은 K 감독님이 주워 오셨다.), 관람객들이 창을 찾을 수 없도록 작은 창에 방충망을 여러 겹 덧댄 탓에 안에서도 밖이 잘 보이지 않아 잘못된 방향으로 가기도 했다. 또 기린이 크고 무거워서 미는 힘이 부족했던 나는 행렬에서 뒤처지기 일쑤여서 퍼레이드 막바지에 감독님들의 재촉(음악 끝나간다, 빨리빨리 가자~)과 도움을 받아 대기장소로 돌아오는 일이 반복되었다. 결국 나는 독수리로 역할이 바뀌게 되었다.


  독수리도 사람들에게 ()웃음을 사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린이들만이 순수하게 독수리를 반겨주었고, 청소년 이상의 사람들 대부분의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푸하하, 기린이랑 독수리 좀 봐. 안에서 사람이 밀고 있어. 큭큭큭큭. 쫄쫄이 입었어. 큭큭큭. 쫄쫄이 헐렁해. 큭큭큭.”


  독수리는 날개를 뒤쪽으로 펼친 형태의 구조물로 기린보다 키가 작고 가벼웠다. 기린과 다른 점은 기린은 네 다리 사이 사람의 다리가 있었다면, 독수리는 내밀어진 배 아래쪽으로 타이즈를 입은 사람의 다리가 드러나 얼핏 봐서는 사람 다리가 독수리 다리 같아 보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독수리는 내가 밀기에 좀 더 가벼웠고, 안쪽에 설치된 막대를 잡고 흔들면 독수리가 날갯짓하는 것처럼 몸체가 흔들리기도 해서 관객들과 소통하기 좋았다. 나는 주로 커플이나 아이들에게 다가가 몸체를 흔들었다. 그러면 사람들은 웃으며 좋아했고 손을 흔들거나 말을 건네며 인사를 해주기도 했다.


"우와, 독수리가 ○○에게 인사해주네? ○○이도 인사할까? 안녕~?반가워."


   나는 독수리 안에서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얼굴을 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여러분, 독수리예요, 그땐 만나서 반가웠어요 :) )






  나는 지적받은 부분들을 고쳐 나갔다. 북을 치는 것도,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것도 틈틈이 연습하여 퍼레이드의 뮤지션 역할에 적응해 갔고, 시간이 지날수록  공연 가이드를 하는 것도 능숙해져 갔다.


   두 달 정도 지나자 퍼레이드를 위해 화장을 하고 머리를 묶고 옷을 갈아입으면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이 자신감이 생겼다. 시작할 때면 늘 긴장이 되긴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퍼레이드를 즐기게 되었다. 음악에 몸을 맡겨 엉덩이를 흔들고 관람객들과 눈을 맞추며 손인사를 하거나 손키스를 날리기도 하고, 빵긋빵긋 웃음도 잘 지었다. 퍼레이드를 다녀오면 스트레스가 풀려서 개운해지는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처음과는 다른 기분으로 정신없이 퍼레이드가 끝났다. 퍼레이드 차량을 운전하던 또래 친구 말로는 내가 평소에는 말수도 적고 수줍어하고 조용조용한데 오두막에만 올라가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것 같 신기하다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독수리를 미는 역할 대신, 차량을 타고 이동하는 두더지역할을 하게 되었다. 얼룩무늬가 있는 황토색 계열의 하늘거리는 민소매 점프 슈트와 날개 옷 같은 망토를 입고, 큐빅으로 테두리가 장식된 눈을 가리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동물 머리 모양의 헬멧을 썼다. 그리고 빨간 립스틱을 발랐다. 두더지였다고 기억하는데 생각해 보면 두더지 치고는 몸의 얼룩무늬가 화려했던 것 같다. 암튼 독수리를 벗어난 나는 드디어 애써 연습한 안무를 선보일 수 있었다. 쫄쫄이를 입은 다리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나 전체를 드러내고 안무도 선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약간 승진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즈음 어느 오후, 개인적인 대화를 거의 나눠본 적 없던  A 감독님이 지나가던 나를 불러 앉혀 놓고 안경을 반짝이며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새눈씨라고 했나?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들어. 나는 새눈씨가 처음에 백치인줄 알았어. '백치'가 뭔 지 알지? ‘백치 아다다’ 할 때 백치 말이야. 요즘에도 이런 사람이 있나 싶었다니까. 맹한 건지 생각이 많은 건지… 가이드하라고 내보내 놨더니 아무것도 안 하고 멀뚱히 서있기나 하고, 퍼레이드 올려 보냈더니 삐걱거리질 않나, 펑크를 내기도 하고 말이야. 여러 가지로 답답했지 처음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발전하더니 요샌 잘하더라고. 전공 뭐 했어? 천문학~? 근데 여길 왜 왔대? 아~ 공연예술 아카데미에 가려고? 그럼 잘 왔네. 잘 배워봐. 하나 알려주자면, 공연은 관객을 가르치려고 해선 절대 안 돼. 암튼 칭찬해 주려고 불렀어. 계속 수고해. 이만 가봐.”


   칭찬이라고 말했지만 잘한다는 말보다는 백치라는 말이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던 기억이 난다. 객관적으로 연기자들만큼 잘하진 못 했겠지만, 처음에 유난히 눈에 띄게 못했기 때문에 열심히 하고 발전하는 모습이 기특해 보였던 모양이다.





  일에 요령이 붙자 주변을 살피고 느낄 여유가 생겼다. 하루하루 즐거운 감상에 빠져 모든 것이 핑크빛으로 보이는 나날이었다. 사람들의 웃음(즐거움, 또는 행복)을 섭취하며 늙지 않는 마법에 걸린 듯한 연기자들과 지내는 것도 즐거웠고, 신새눈으로는 줄 수 없었을 즐거움을 기린이나 독수리, 두더지, 뮤지션이 되어 전해줄 수 있는 것도 뿌듯했다. 사람들과 눈을 맞추면서 손을 흔들 때, 나에게 응답하며 손을 흔드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면,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를 마주친 듯 반가웠다. 물론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기억하진 못하고, 그 사람들도 나의 얼굴을 기억하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기쁨의 순간 함께했던 사람들인 것이다. 사람들의 행복한 순간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 사람들의 기쁨에 동조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뻤으며, 이곳에서는 끊이지 않는 샘물처럼 기쁨이 넘쳐날 거라는 변함없는 사실도 좋았다.


  또 직원으로서 쇼와 함께 서 있을 때, 쇼를 관람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는 일도 참으로 흐뭇했다. 해맑은 표정으로 나에게 달려와 안기던 아기의 감촉과, 나의 손을 잡아당기며 같이 집에 가자아기의 발걸음과, 단체로 관광을 오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모습(머리를 가지런하게 빗어 넘기고 어린아이들처럼 줄지어 앉아, 환하게 웃으면서 가락지가 끼워진 주름진 손을 흔들거나 박수를 치시던 모습과 세월이 깊게 패인 얼굴 웃음 피어나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객석 중간중간에 흔들리며 떠있는 너구리나 나비모양의 풍선들, 같은 옷을 입고 꼭 붙어 앉아 있는 커플들의 모습, 공연이 끝난 후 환한 얼굴로 나에게 와서 공연이 너무 멋있었다고 말을 남겨주던 어떤 여자손님, 또 소풍 온 유치원생들의 해맑은 웃음소리와 귀여운 손짓. 아무 대가 없이 그들의 행복을 지켜볼 수 있고 더불어 나눠가질 수 있어서 참 좋았다.


  그곳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곳이 아니면 해볼 수 없는 일들을 하고, 그곳이 아니면 배울 수 없는 것을 배우고, 그곳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것을 느끼는, 배움과 알음과 깨달음의 생활이 나날이 즐거운, 고마운 날들이 지나갔다.



  

  언젠가부터 하루의 마지막 일과인 퍼레이드를 마치고 세수를 하고 짐을 챙겨 나오면, 츄러스를 하나 사 들고 객석에 앉아 무대공연을 관람하고 집에 가는 것이 정해진 일과가 되었다. 같지만 매일 새로운 쇼를 한 사람의 관객이 되어 관람하면서 웃고, 박수를 쳤다. 하루의 마지막 쇼가 끝나고 막이 내린 무대의 모습을 사람들이 떠나버린 텅 빈 객석에서 홀로 바라보는 일은 의외로 설레는 일이었다. 언젠가 나도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할 수 있는 공연을 무대에 올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 보면 마음이 부풀었다. 그러던 어느 날은 매일 쇼를 보고 돌아가는 나를 알아챈 조명팀의 또래 친구가 조명탑 조정실 지붕위에서 쇼를 관람할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을 해준 적도 있었다.






  본격적인 여름이 되기 전에 롯*월드를 그만두었다. 마지막 퍼레이드를 마치고 따뜻해져 있는 나를 사샤가 다정하게 안아주었다. 짧은 시간, 그의 체온에서 나는 많은 말을 읽었다. 그의 품이 포근해서 눈물이 날 뻔했다. 언어의 장벽 때문이기도 했지만, 말수가 적은 성격 탓에 그들과 많은 이야기나 감정을 나누진 못했지만, 오늘이 내 마지막 출근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들이 전해온 따뜻한 말들은 내 마음을 말랑말랑하고 촉촉하게 만들었다. 알렉산드르 B가 양 갈래로 땋은 내 머리끝을 살짝 잡아당기며 했던 말 "you  are  beautiful.” , 콘스탄틴이 부드럽게 손짓을 하며 했던 말 “you're an angel.”, 데니스가 진중한 눈빛으로 건넨 말 “I (will) miss you.”, 그리고 까짜의 볼 뽀뽀. 또 여러 연기자들과 감독님들의 수고했다는 말들과 격려.


  오늘이 멀어지는 것은 슬프지만 오늘은 오늘에서 멀어질수록 더욱 반짝일 거라는 걸 알았으므로 씩씩하게 그곳을 나섰다.





  그곳에서의 추억들과 전하지 못한 말들이 며칠 동안 마음을 무겁게 했다. 얼마 전까지 매일 보던 사람들을 이제 전처럼 만나기 어려울 거라는 사실과 어쩌면 앞으로의 인생에서 그들과 나는 더 이상의 접점이 없는 채로 살아가게 될 거라는 짐작은, 내가 지금 그들에게 느끼는 다정한 감정과 고마움을 제대로 전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흘렀다.


  나는 색지와 우표를 사고, 가위질과 풀칠을 해서 직접 카드를 만들었다. 빈 카드를 앞에 두고 카드를 쓸 대상을 한 명씩 떠올리면 추억과 그리움이 밀물처럼 스르륵 차올랐다가, 글자를 써내려 가면 썰물처럼 쏴아아 빠져나갔다. 50번에 가까운 파도가 밀려왔다가 밀려갔다. 며칠에 걸친 대 작업이었다. 얼마 후, 몇몇 사람들이 카드를 잘 받았다고 연락을 해왔다. 누군가를 대신해 인사를 전해주기도 했고, 내 카드를 화장대 거울에 잘 붙여 놓았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나는 따뜻한 마음으로 그 시절에게 안녕을 고할 수 있었다.


(다들 잘 지내고 있으리라 믿어요.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멀리서 항상 응원할게요! 스빠시바!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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