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연말, 나는 신승훈 콘서트에서 AD 이름표를 목에 걸고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을 종종거리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7월로 거슬러 올라가면, 서울아트스쿨 공연기획자 과정에 예정대로 등록한 나는 일주일에 이틀은 저녁에 수업을 듣고, 사나흘은 낮에 영화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즈음엔 영화관 직원 혜택으로 공짜 영화를 보고, 영화관 아르바이트 면접에서 만난 언니 찬스로 공짜 연극을 보기도 하고, 서울아트스쿨 조교언니를 통해 남는 좌석에서 공짜 뮤지컬이나 연극을 보기도 했다. 공연과 가까이 지낸 행복한 날들이었다. 또 의사를 그만두고 왔다던 마흔에 가까운 오빠, 피아노 전공생, 대학교 신입생, 회사를 그만두고 왔던 언니들, 미국에서 살다 온 오빠, 호주에서 토마토를 땄다던 동갑내기 등 다양한 연령과 이력을 가진 사람들을 동기로 만나 친구가 되었다.
수업에서는 공연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전문가들(조명감독, 무대감독, 연출자, 콘서트 PD 등)의 강연을 듣고, 실제로 공연을 기획해 보는 조별 과제를 했다. 우리 조가 기획했던 것은 신라시대 화랑들이 주인공인 뮤지컬이었다. 화랑은 삼국통일에 일조한 신라의 청소년 수련 시스템 중에 하나로 교육과 선발이 하나로 합치된 관료 양성 시스템인데, 내면의 수련뿐 아니라 외면을 가꾸는 것도 중요하게 여겨서 외모가 수려한 남자들이 많았다는 기록이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나무위키 참조). 외모가 수려한 젊은 남자 가수나 배우들을 섭외한다면 그들의 춤과 노래로 볼거리도 풍부할 것이고, 역사적인 배경을 약간 가져와서 가공한다면 그들의 경쟁과 우정, 애국심을 아우르는 감동적인 서사도 가능할 것 같았다.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만드는 단계까지는 가지 못했지만, 우리 조의 기획과는 별개로 한참 후에(7년 후쯤) 비슷한 소재로 뮤지컬과 드라마가 제작되었고 꽤 흥행했으므로 우리 조의 기획이 썩 괜찮긴 했던 것 같다(흐뭇). (같은 수업의 다른 조는 예산을 모아 인디 밴드 공연을 실제로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암튼 수업을 했던 전문가 중에서 졸업생 출신의 콘서트 PD가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AD 모집공고를 냈는데, 실제로 현장에서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에 지원을 했다. 그래서 11월부터 연말로 예정된 신승훈 콘서트를 준비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신승훈 님을 처음 만났던 날 밤은 별이 참 많았다. 처음으로 신승훈 님과 연출회의를 했던 날, 조금 어둑한 조명의 사케 가게에서 가수, 연출자, PD 등 몇 명이서 술을 곁들인 밥을 먹었다. 나는 신승훈 님이 따라준 술도 수줍게 한잔 했고, 신승훈 님이 발라준 메로구이 살도 맛있게 먹었다. 기름진 생선이 아주 부드럽고 고소해서 입에서 살살 녹았다. 거기서 나이가 제일 어렸던, 메로구이를 처음 먹어보는 나에게 신승훈 님은 참 상냥하고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신승훈 님은 처음으로 가까이에서 본 연예인이었는데, 연예인은 까칠할거라는 예상과 달리 누구에게나 편안하게 대해주었으며 친근하고 소탈했다. 같이 치킨을 먹을 일도 있었는데 신승훈 님 앞에서 손과 입에 양념을 묻혀가며 살을 뜯기가 부끄러웠던 내가 오히려 그 자리에서 도망을 쳤다.;)
콘서트 AD를 하는 동안에 신승훈 님에 대한 가장 인상적인 기억을 꼽자면 첫 만남도 첫 만남이지만, 연습실에서 신승훈 님의 노래 첫 소절을 들었을 때를 들 수 있다.
♩ 너는 장미보다 아름답진 않지만 ~ 그보다 더 진한 향기가 ~♪
신승훈 님의 목소리가 적막을 가르며 내 귀에 파고든 순간, 사막에서 꽃이 피어나는 영상이 머릿속을 스쳤고, 순식간에 주변의 공기가 산뜻하고 부드럽게 바뀌었다. 지하에 위치해 있어서 환기가 잘 되지 않았기 때문에 공기가 답답하게 느껴졌던 연습실이었기에 짧은 순간에 피부로 와닿던 그 감각의 변화는 아주 극적이었다. 한마디로 반할 뻔했다. 역시 가수는 괜히 가수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약간은 황홀한 기분으로 구석에서 노래를 들었다. 나는 쉬는 시간에 조연출 언니들과 수다를 떨거나, 매니저님과 차(이때 고급 외제차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타봤다. 승차감이 아주 좋았다.)를 타고 홍대에 가서 간식으로 먹을 떡볶이를 사 오거나,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사 오는 등의 자잘한 심부름을 했다. 연습은 저녁 9시쯤 시작해서 새벽 1~2시가 지나서야 끝났던 것 같다.
콘서트 PD란, 콘서트를 준비하는데 필요한 돈, 시간, 사람을 관리하는 일, 그러니까 정해진 예산을 효율적으로 분배해서 지출하고, 스케줄을 관리하고, 인력을 충당하고 조정하는 일이라고PD님이 말했다. 그리고 AD는 PD의 일을 보조하는 역할이라고 알려주었다.
콘서트를 하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필요했다. PD와 AD가 콘서트 준비와 진행에 관한 모든 것을 관리하며 틀을 갖춘다면, 연출과 조연출은 콘서트의 콘셉트와 흐름을 구상하고, 작가는 흐름 안에서 세부적인 내용을 채웠다. 영상팀은 콘서트에 사용될 노래들에 알맞은 배경 영상을 제작했고, 애니메이션 팀은 신승훈 캐릭터가 등장해서 관객들에게 안무를 알려주는 짧은 영상을 만들었다. 그 외 공연을 함께 꾸려가는 출연진들ㅡ밴드 세션이랄지(드럼, 기타. 베이스, 키보드 등), 코러스, 댄서, 특별출연(발레리나)ㅡ이 있고, 콘서트 무대를 만드는 여러 분야의 작업 팀들ㅡ무대 골조를 세우는 트러스팀, 무대 바닥팀, 조명팀, 조명감독, 발전기 차량, 음향팀, 특수효과팀, 무대미술팀, 무대감독 등이 있으며, 콘서트 현장에는 현장 운영에 필요한 인력들ㅡ진행요원, 안내요원, 경호원 등ㅡ이 있다.
나는 사람들에게 연락해 일정을 조율하거나, 회의를 잡고, 공지사항을 전달하거나, 정보를 취합하였으며, 자료를 조사하거나, 심부름을 다녔다. PD님과 함께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에 가서 대관과 관련해서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무대소품이 쌓여있는 커다란 창고에 가서 스툴이나 바테이블, 가로등 같은 큰 소품을 고르기도 하고, 그곳에 없는 것을 사러 동묘 시장이나 대학로에 가기도 했다. 여기서도 나의 뚝딱거림은 계속되었다.
업무적인 전화를 자주 해야 했는데 중국집에 짜장면을 주문하는 전화를 거는 것도 어려워하던 나는, 두서없이 장황하게 말을 해서 상대방이 재차 질문을 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어느 날은 그중 한 사람이 PD님께 전화를 걸어서 조금 전에 자신에게 전화를 건 친구가 누구냐고, 목소리가 작아서 잘 들리지도 않고,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겠다고 투덜거렸다고 했다. 그 얘기를 전해 들은 날은 하루종일 풀이 죽어 있었다.
연습실에서 새벽에 퇴근할 때는 잠이 부족해 자주 지각을 했고, 회의 전에 미리 챙겨야 할 것을 잊어 PD님으로부터 질책을 당하기도 했다. PD님은 매사에 부드럽고 신사답게 말하는 분이었고, 새벽에 연습실에서 퇴근하는 날은 집 근처까지 차로 데려다주시는 자상한 분이었다. 하지만 내가 실수를 할 때는 부드러운 말투와는 다른 눈빛일 때도 있었다....;
어느 날 회의장소로 향하던 차 안에서 PD님이 이런 말을 해주었다.
“새눈씨, 내가 중요한 것을 하나 알려 줄게요. 들어봐요. 일을 할 때는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머릿속으로 한번 생각을 해봐요. 회의를 해야 하는 경우를 예로 들어 볼게요. 회의는 시간, 장소, 사람이 필요하죠. 먼저 사람들과 연락을 해서 시간과 장소를 정해요. 그 시간에 그 장소를 사용할 수 있으려면 미리 예약을 해야겠죠. 회의의 내용에 따라 자료가 필요할 수도 있어요. 미리 공유해서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자료라면 미리 공유를 하고, 미리 받아서 인쇄를 해야 한다면 미리 받아서 인쇄를 해야겠죠. 자, 그럼 회의 당일이에요. 회의가 순조롭게 진행이 되려면 장소 컨디션이 좋아야겠죠. 춥거나 덥진 않은지, 더럽진 않은지, 자리가 부족하진 않은지, 컴퓨터나 빔프로젝트, 스피커등을 사용해야 한다면 작동은 잘 되는지 등을 미리 파악해서 준비하는 거예요. 이런 식으로 앞으로 있을 일을 순차적으로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그 일이 잘 진행될 수 있으려면 그에 앞서서 뭐가 필요할지 새눈씨가 무엇을 준비하면 좋을지 생각해 보세요. 회의가 아닌 다른 일들도 다 똑같아요. 누가 시키는 것만 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생각해서 행동하면 일 잘한다 소리 들을 수 있을 거예요. 이게 앞으로 다른 일 할 때에도 분명히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잘 알겠죠?”
(PD님의 그 말은 정말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 )
자잘한 신부름들을 제외하면 연출회의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 청담동 쪽에 있었던 콘서트 회사, 신승훈 님의 소속사건물, 동대문운동장역 근처의 충무아트홀 등을 오가며 여러 차례 연출팀, 가수, 작가 등과 만났다. 연출 회의에서 내가 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 따지자면 회의를 하기 전에 할 일이 있었고 회의를 할 때는 가만히 앉아서 듣거나 메모를 하는 게 전부였다. 가끔 아이디어를 내는 것에 동참하기도 했지만 이렇다 할 결과로 이어진 것은 없었다. 하지만 관객들에게 더 큰 기쁨과 즐거움과 감동을 주기 위해 여러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궁리를 한다는 사실에 종종 가슴이 뛰었다. 기승전결을 고려해서 음악이 선곡되면 거기에 맞춰서 스토리를 만들고, 스토리가 만들어지면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짜내고, 거기에 맞도록 무대 디자인과 무대연출을 고민하는 시간. 관객들이 어떤 타이밍에 무엇을 어떻게 보았으면 좋겠는지, 거기서 어떤 생각 어떤 감정을 느꼈으면 좋겠는지를 세세하게 고민하는 모습이 참 따뜻하게 느껴졌다. 어떻게 보면 결국 돈으로 귀결되는 문제지만,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일한다는 사실이 무척 보람찼다.
콘서트 날.
무대 세팅이 완료되고, 출연진들도 도착해서 리허설을 앞두고 있는 상황. 뭔가 어수선하고,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뭔가 잘 돌아가고 있으며, 나만 빼고 다들 바쁜 듯했던 분위기. 혼자 있기가 어색했던 나는 조연출 언니들을 따라다녔다. 그러다 마주친 PD님이 나를 조용히 불렀다. 콘서트 당일이고 이제 준비는 거의 다 됐다고 생각해서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여느 때와 다르게 PD님의 표정이 안 좋았다. PD님은 짧게 한숨을 내쉬고, 다소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새눈씨, 연출팀이에요? 왜 조연출들 옆에 계속 붙어 다니면서 일을 같이 하고 있지? 언니들 따라 놀러 온 거 아니잖아요. 새눈씨는 새눈씨 일을 해야죠. 오늘은 돌발 상황이 생길 수도 있고 급하게 확인하고 전달해야 할 것들도 생길 수 있으니 계속 살피면서 대비하고 있어야 해요. 콘서트가 끝날 때까지 우리 일이 끝난 게 아니에요. 이제 어디 가지 말고 내 옆에 붙어 있도록 하세요.”
“죄송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리허설이 끝나고, 관객들이 입장하고, 무대의 막이 오르고, 콘서트가 시작되었다. 나는 콘솔 근처 객석에 앉았다. 콘솔 근처에 서서 헤드셋을 착용한 채 긴장된 표정으로 무대를 주시하다가 누군가와 대화를 하기도 하고 고개를 젓거나 끄덕이거나 손짓을 하기도 하는 PD님을 흘끗흘끗 보며 눈치를 살폈지만, 콘서트가 시작되고 나니 내가 할 일은 없는 것 같았다. 이내 관객의 마음이 되어 공연을 관람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회의하고 준비했던 것들이 무대에서 실현되는 것을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고 신나기도 했다.
콘서트 중간에 내가 출연한 짧은 콩트의 데모 영상이 그대로 사용되어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그 영상은 신승훈 님이 활동을 많이 안 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팬을 인터뷰하는 콘셉트였는데, 몇 초에 불과했지만 내가 팬의 역할을 맡아 볼멘소리를 하며 감정을 표현하는 손짓을 하거나 팔짱을 끼거나 하는 행동을 했다. (음성은 덧씌워졌던 것 같다.) 탁자 위에 카메라를 놓아서 화면에 얼굴을 제외한 상반신만 나왔지만 나는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그 장면을 보고 관객들이 웃었다. 콘서트에 내가 출연했다는 사실이 쑥스럽기도 했지만 짜릿했고, 웃음을 줬다는 사실이 내심 뿌듯하기도 했다.
콘서트는 분위기가 점점 무르익어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달았고, 몇 곡의 앙코르를 하고서야 끝이 났다. 벅차오르는 감정과 후련함이 교차하는 가운데 무대의 막이 내리고, 막을 스크린 삼아엔딩 크레딧이 띄워졌다.
“AD 신새눈”
엔딩 크레딧이 있는 줄은 몰랐기 때문에 화면에서 내 이름을 발견했을 때 깜짝 놀라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내 이름은 두둥실 떠올라순식간에 사라져 버렸지만, 내가 콘서트를 만든 사람들 중에 한 명이고, 분명히 어떤 역할을 해냈다는 사실을, 화면에 각인된 내 이름을 보는 순간 확실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콘서트를 준비하며 보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별을 좇기를 포기하고 살기로 했는데 뜻밖에 은하를 마주하게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공연과 무대가 은하 같았고, 이 공연을 만들기 위해 애쓴 모든 사람들이 별 같았다. 무대 위에는 모든 사람들의 노력이 별이 되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각자의 궤도를 돌고 있고 다른 방식으로 반짝이고 있는 상태들이지만 서로 다른 반짝임들이 모여서 더욱 반짝이는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거대하고 큰 하나의 반짝임 보다 의미 있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새눈씨, 고생 많았어요. 엔딩 크레딧 봤죠?"
피디님은 그제야 나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긴장이 되어서 식사도 안 했다는 PD님의 얼굴이 해쓱했지만 평온해 보였다. 이 콘서트의 총책임자로서 짊어져야 했던 무게가 다른 사람들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컸음이 그제야 짐작되었다. 남은 기간 동안에는 더 잘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서울 공연이 끝나고 회사 식구들끼리 가진 간단한 뒤풀이 자리에서 PD님은 뜻밖에도 내가 가진 의외의 장점에 대해 얘기해 주었다.
“새눈씨는 전화 통화는 좀 젬병인데, 맨투맨으로 사람을 대하는 건 잘하나 봐요. 새눈씨가 사람들 이름과 얼굴을 잘 기억한다면서요? 인사도 잘하고요. 현장에서 사람들과 얘기를 하다 보니 다들 새눈씨를 잘 알고 친근하게 여기고 있더라고요. 언제 그렇게 친분을 쌓은 거예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에 대해 칭찬 비슷한 것을 들으니 얼떨떨했고, 사람들이 나를 친근하게 여기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니 또 더욱 얼떨떨하면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마음이 따뜻한 채로 PD님의 이야기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즈음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경험에서 밝은 에너지를 많이 받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립을 시작했고, 새로운 사람들과 목표에 다가가는 중이며, 덕분에 좋은 경험들을 하고 있었다. 새로운 기회에는 새로운 사람들이 자연스레 따라왔기 때문에 마치 기회가 아니라 사람들이 나에게 좋은 것들을 가득 가져다준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누군가와의 만남이 일종의 화학반응 같다고 생각되었다. (이와 꼭 같은 의미로 케미스트리, 케미라는 말이 있다는 것은 한참 후에 알았다. 나는 그 케미 이후에 나에게 남겨지는 것들에 대해 더 주목했지만. 암튼.) 그것이 열렬하든 그렇지 않든 사람과의 교류에서 쌓인 기억 또는 그 기억에서 비롯된 어떤 결론이나 생각들이 시간과 결합하여 나를 조금씩 변화시키거나 성장시키고, 어느 날은 나를 전혀 새로운 곳으로 데려다 놓기도 한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앞으로의 내 인생에 존재할 수많은 사람들, 아주 많은 경우의 수에 해당하는 만남들이 내게 남길 의미들이 설렘으로 다가왔다.
PD님이 봐준 나의 장점은 어쩌면 단순히 내가 콘서트를 준비하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어린 데다가 순해 보이는 인상의 여자애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편하게 여겼고, 사람들이 편하게 대해주니 나 또한 그들과 친근하게 지낼 수 있었던 그런 단순한 이해관계속에서 나타난 긍정적인 결과였을지도 모르지만.
꿈꾸는 소녀의 마음이었던 나는 PD님의 칭찬에 두둥실 날아올라 꿈속으로 계속해서 빠져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