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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지희 Sep 30. 2022

6화. 여기가 정말 내 집이라고?

(장편소설) 저주 딜리버리 프로젝트

"옷장."


눈을 뜨자마자 처음 내뱉은 말이었다. 내 움직임을 감지하고 서둘러 내 앞으로 몸을 내밀던 한 사람이 뭐라 말을 하려다 움찔하는 게 느껴졌다. 누구지. 누군진 몰라도 말해봐요. 내 옷장. 옷장 어떻게 됐어요.


"노... 노 선생님. 저... 정신... 정신이 드세요?"


아이고. 오늘따라 말을 더 더듬으시네. 내가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김 선생님이 재빨리 침대 옆 버튼을 눌러주었다. 말은 더듬어도 행동 하나는 재빠른 모습이 영락없이 다람쥐를 떠오르게 했다. 오늘은 조금 슬픈 얼굴의 다람쥐지만.


"김 서... 선생님. 크흠. 제 옷장. 옷장은 무사한가요?"


아까부터 도대체 무슨 소리냐는 듯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커다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자세히 보니 얼굴에 눈물자국이 가득이다.


"무슨 옷장이요. 지금 옷장이 문젭니까? 지금 여기가 어딘지는 아시겠어요? 병원이에요 병원. 노 선생님 정말 큰일 날 뻔하셨다고요. 이틀 넘게 사경을 헤매시다가 이제 깨어나셔서는 갑자기 무슨 옷장을 찾으시는 겁니까. 도대체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이 멍은 다 뭐고요."


얼른 병원복 소매로 팔을 가려보려 했지만 그럴 힘도 없거니와 이 병원복은 내게 좀 작았다. 링거 바늘이 꽂힌 왼쪽 팔에 여러 멍자국이 고스란히 보였다. 한여름에도 긴소매를 입어서 나름 비밀유지를 잘 해왔는데 이렇게 들켜버리네. 그런 얼굴 안 하셔도 되는데. 이건 그냥... 물건이 사람보다 더 많은 집에 살면 이렇게 돼요. 그나저나 김 선생님은 화가 나면 말을 잘하시는구나. 기억해둬야겠어. 다음에 같이 살다가 말을 똑바로 하시면 나한테 화가 났다는 신호로 보면 되겠군. 


"별거 아니에요. 그런데 제가 이틀이나 누워있었다고요? 태풍은 지나갔습니까? 아니, 제 집은 어떻게 됐어요? 큰 문제는 없죠?"


"흥분하시는 거 보니까 이제 괜찮으신 것 같네요. 태... 태풍은 지... 지나갔어요. 이... 동네엔 다... 다행히 큰 피해는 별로 없었어요."


"네. 괜찮아요. 이제. 별 피해 없었다니 다행이네요. 제 집은요?"


어느새 다시 내 눈치를 보는 김 선생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내게 화가 풀렸다는 건 좋은 신호지만 평소보다 더 말을 더듬는 건 좀 불안한데. 김 선생님의 무릎 앞에 살짝 튀어나온 이불자락을 구멍이라도 낼 듯 한참을 만지작거렸다. 대답 없이 눈물을 다시 가득 쏟는 김 선생님의 얼굴을 확인하곤 곧장 이불을 걷고 침대에서 뛰어내렸다.



 "노 씨! 안된다니까! 좀 말려봐요!"


"이러다 뭔 일 나겠네 진짜!  들어가서 뭘 어쩌려고 그래!"


병원복을 입고 택시에서 뛰어내리자 나를 알아본 이웃들이 순식간에 나를 에워쌌다. 내 시선은 오로지 사람들 너머 검은 형체로 변해버린 내 집에 집중되어 있었다.


"비켜요... 들어가야 돼... 집에 가야 해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사람들을 헤치고 대문으로 향하자 하나둘 나를 붙잡기 시작했다. 비록 이제 막 병원을 탈출하긴 했지만 아직 힘으로 나를 붙잡아 둘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수풀을 헤쳐나가듯 사람들을 떼어가며 대문 앞에 도착했다. 내 눈높이보다 조금 낮은 위치에 '위험구역'이라는 딱지가 붙어있었다. 저 스티커 나중에 잘 떨어지는 거겠지. 벌금딱지처럼 떼기 힘든 게 또 없는데. 대문을 밀자 평소보다 더 요란한 소리를 내며 힘겹게 열렸다. 그 소리가 신호탄이라도 되는 듯 나를 붙잡던 사람들이 모든 동작을 멈췄다. 뒤에서 누군가가 '정 순경님 불러요. 진짜 큰일 나겠어'라고 소곤거리는 게 들렸다. 내가 내 집에 들어간다는 데 왜 경찰을 부른다는 건지.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안으로 들어서자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칠 뻔했다. 어. 여긴 내 집이 아닌데. 뭔가 잘못됐어. 집의 지붕이고 벽이고 검은 형체만 겨우 알아볼 수 있었다. 창문이란 창문은 모두 깨져있고 대낮인데도 안은 컴컴해서 잘 보이지 않았다. 마당이었던 곳엔 진흙으로 뒤범벅된 온갖 물건들이 토사물처럼 뒹굴고 있었다. 여기가 정말 내 집이라고? 집에 작은 불이 났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된다고? 


옷장. 번뜩 정신이 들었다. 옷장부터 확인해야 해. 어디로 들어가야 하지. 열쇠가 없으니 현관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창문은 선택지가 많았다. 제일 큰 거실 창으로 향하는데 뒤에서 지켜보던 이웃들이 비명을 질렀다. 깨진 유리 조각들을 밟고 거실로 들어서서 본모습은 생각보다 더 처참했다. 거실의 절반 이상은 검게 타버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복도였던 공간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엔 타거나 물에 젖은 물건들이 무너져내려 있었다. 결국 진짜 산사태가 나고야 말았구나. 내 티브이! 아직 할부도 다 못 갚았는데! 내 전집들! 제일 밑에 깔려있는 것들은 잘하면 살릴 수 있겠지? 내 만화책 컬렉션! 설마 저기 검은 벽돌 같은 무덤들이 만화책 상자는 아니겠지! 검고 축축한 형체 안에서 익숙한 내 물건들이 보이자 점점 더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내 집이다. 내 물건들. 내 보물들이다. 다 끌어안을 수 있을 것처럼 긴 팔을 허우적거렸다. 그런데 손에 잡히는 거라곤 닿자마자 바스스 부서지는 종이조각들과 축축한 검은 물체들 그리고 뾰족한 유리 조각뿐이었다.


"당장 나오십시오! 위험합니다!"


누군가가 내게 소리쳤다. 내가 천천히 뒤를 돌아보자 사람들이 괴성을 지르고 대문 안으로 들어서던 정 순경님이 헉하고 숨을 삼켰다. 하긴. 손이 검고 붉게 물든 거대한 인간이 잿더미 속에서 얼빠진 얼굴로 쳐다보면 오줌을 지리고 싶겠지. 그런데 경찰은 언제 온 거지. 사이렌 소리도 못 들었는데. 그러고 보니 저렇게 가까이서 내게 소리치는데도 꽤 멀리서 들려오는 것만 같다. 그때 번쩍하고 눈앞에서 빛이 났다. 지붕이라도 무너져내려 내가 죽어버린 걸까. 슬며시 다시 눈을 뜨니 내 앞엔 명부를 든 저승사자가 아니라 커다란 카메라를 든 기자가 서 있었다.


 00시 00동 주택서 화재... "태풍이 만들고 태풍이 살렸다"


수우호 태풍이 경남 남부를 휩쓸고 있던 지난 7일 새벽 00동의 한 주택에 화재가 발생했다. 소방청이 배포한 자료를 보면, 화재 신고는 주택에서 자고 있던 노 모씨에 의해 직접 접수됐다. 노 모씨는 현장에 출동한 소방대원에게 구출돼 이틀간 혼수상태로 입원해있다 큰 부상 없이 현재 퇴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구출 현장에서 구급대원 한 명이 집 안의 물건들에 깔려 경상을 입고 치료 중이다.


화재 원인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태풍으로 주택 근처의 전신주가 넘어가며 합선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집 안으로의 소방 호스 진입이 어려워 불은 집안 전체로 퍼졌지만, 새벽 2시경 내려앉은 한쪽 지붕 쪽으로 폭우가 쏟아지며 인근 주택으로 번지기 전 불은 자연 진화되었다. 인근의 한 주민은 "태풍이 우릴 살렸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음 날 지역 신문의 1면엔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은 배경 속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 내 옆모습이 대문짝만 하게 실렸다. 할머니. 나 신문에 나왔어. 이럴 줄 알았으면 작게 미소라도 지어줄 걸 그랬나 봐.  '노 모씨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자신의 집 앞에서 망연자실한 채 서 있다'라는 문구와 너무 찰떡인 표정이라서 누가 보면 연출이라도 한 줄 알겠어. 신문을 서랍장 위로 던져버리고 다시 먹던 밥에 집중했다.


"그... 그러게 보지 않는 게 조... 좋다고 했잖아요."


병원 밥은 너무 싱겁다. 마지막으로 집에서 시켜 먹었던 마라탕 생각이 간절하다.


"그 기자가 나에 대해서 뭐라고 썼는지 직접 확인은 해야죠. 마음대로 남의 사진을 찍어다 이렇게 크게 올리다니. 게다가 정말 다들 너무하네. 태풍이 우릴 살렸다니. 내가 무슨 꼴을 당했는데."


"그... 그래도 크게 다치신 곳은 없으니 어... 얼마나 다행이에요."


"집이 다쳤잖아요. 내 집이. 얼른 가서 최대한 구할 수 있는 것들은 구하고, 당장 생활 가능한 장소를 조금이라도 복구해야겠어요. 또 사람을 불러야 하나. 이번 달엔 그럴 돈이 없는데. 하아. 주택 보험이 만료가 됐을 줄이야."


두 손으로 물병을 잡고 컵에 물을 따르던 김 선생님의 동작이 멈췄다. 뭔가 할 말이 있는 얼굴이었다. 김 선생님은 평소엔 생각을 쉽게 읽을 수 있는 사람 같은데 이따금 저렇게 무서운 얼굴을 한다. 목이 탄다. 김 선생님의 손에서 물병을 다시 받아 반만 찬 컵에 마저 물을 따랐다. 힘차게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이내 큰 결심이라도 한 듯 두 주먹을 꽉 쥐고 내게 통보하듯 말했다.


"내... 내일 저희 집으로 오세요. 그 집은 아직 위험해요. 대... 대신 조건이 있어요."


다람쥐 선생님의 툭 튀어나온 앞니가 순간 번쩍하고 날이 선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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