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인(人) 자는, 사람이란 마땅히 서로 의지하며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럴 듯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공감하는 듯하다.
실제로 우리는 서로 의지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물질적인 도움을 주고 받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서로의 얘기를 들어줄 수 있다는 면에서 큰 의지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 대꾸도 없이 목석처럼 앉아만 있는 사람에게도 자기 얘기를 하고 싶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실제로 목석을 앞에 두고 자기 얘기를 하면, 우리 속은 전혀 후련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은 ‘목석’이 아니라 다른 ‘인간’을 자기화하려는 본성을 타고났기 때문이다. 가능한 한 많은 인간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그들이 자기 통제 아래 놓이기를 원하는 본성을 타고났기 때문이다. (목석이든 인간이든 그가 내 이야기에 정말로 공감하는지를 확인할 길은 없다. 우리가 아이들 이야기를 공감하지 못해도, 잘 들어주는 것처럼, 나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은 열심히는 들어주지만 공감은 못할 수 있다. 확실한 것은 내가 목석이 아니라 인간에게 이야기함으로써 어떤 인간을 자기화하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는, 목석처럼 아무 대꾸가 없는 사람이라도 내 얘기를 잘 들어준다고 생각되면, 열심히 자기 얘기를 한다. 듣는다는 건, 말하는 사람의 영향을 받는다는 뜻이다. 말하는 사람은 목석같은 상대방이 자기화될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는다.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공감과 위로를 받기 위해서다. 하지만, 공감과 위로는 우리 마음에 있어서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자기 세계 확장 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인간이 홀로, 오로지 혼자 힘으로 자기 세계를 확장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따른다. 일단 다른 인간들과 힘을 합친 다음에 공동의 우리 세계를 확장하는 것이 보다 쉬운 길이다. 공동의 세계를 확장한 다음에, 그 안에서 나만의 세계를 확장할 방법을 찾으면 되는 것이다
함께 할 사람, 연합할 사람이 없으면, 세계 확장은 매우 어려워지고, 확장 가능성이 희박해지면, 우리는 미래를 기대할 수 없기에 절망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연합할 사람을 절실히 필요로 하며, 연합하려면 다른 사람과 일단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공감할 수 있으면 다른 사람과의 연합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뜻이며, 연합할 사람이 생기면, 세계 확장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기에 마음의 위로를 받는다.
역시, 그렇다. 인간은 가능성에 의해 움직인다. 인생은 희망과 절망이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