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아름다운 무인도
사람은 혼자 못 산다. 자기화할 사람이 없으면 못 산다.
자기화를 시도할 수 있는 타인이 없다는 것은 미래가 없다는 뜻이다. 희망이, 가능성이 없다는 뜻이다. 인간의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또 다른 인간 존재다. 주위에 자기화할 가능성이 있는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다른 인간을 지배하든가, 감화시키든가, 연합의 일원으로 삼아야 한다. 자기 외에 다른 인간이 없다면, 어떤 의지를 가지고 무언가를 열망하는 동물이라도 곁에 있어야 한다. 인간은 돌무더기를 보면서 미래를 꿈꿀 수 없다. 시간의 고문을 견뎌 나갈 수 없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무인도에 살게 된 톰 행크스가 배구공을 ‘윌슨’이라고 부르며 친구로 삼은 것은, 외로워서라기보다는 연합하고 자기화할 수 있는 대상이 곁에 있다고 생각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친구는 처음에는 연합의 대상이지만, 타인이기 때문에 결국은 자기화의 대상이 되어 간다.)
우리는 낯선 타인들 뿐만 아니라, 친구와 배우자까지도 모두 자기화의 대상으로 삼는다. 사람들은 친구들과 논쟁하며 자기 세계관을 납득시키려고 열변을 토한다. 감동적으로 봤던 영화를 비웃는 친구의 명치는 세게 한번 가격하고 싶어진다. (결국 자기화가 순탄치 않아서, 미래가 완전히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면, 폭력이 발생할 위험이 높아질 것이다.) 배우자의 습관은 결코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면서 자기 습관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인간은 결국 온 세상과, 여기에 속한 모든 인간을 자기화하려는 궁극적인 목표를 지향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연합했던 자들, 즉 친구와 배우자까지도 자기화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래서 결국 혼자가 된다. 크고 아름다운 무인도가 된다. 거기에는 윌슨밖에 없다.
영화 ‘어바웃 어 보이’에서는 사람들이 모두 하나의 섬처럼 서로 떨어져 있다고 설명한다. 결국 타인은 자기화의 대상이다. 그래서 섬처럼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다. 단지 연합이 필요할 때만 서로 다리를 놓아 둘 뿐이다.
인간은 자기 외의 모든 인간들을 자기화하려 한다. 하지만, 자기화에는 한계가 있다. 머리와 심장을 뿌리째 뽑아 이식한다 해도 우리는 그 어떤 누구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섬이 된다. 그리고 결국에는 마음속에서 온 세상의 자기화를 실현하고, 혼자가 된다.